제주해군기지 설계과정에서 정부가 '15만 톤 크루즈 입출항 시뮬레이션 데이터' 조작을 요구한 정황이 포착돼 파문이 예상된다. 애초 '민군복합항 건설'이라는 명분이 힘을 잃게 되는 대목이다.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월 26일부터 4차례에 걸쳐 진행된 총리실 주재 '15만톤 크루즈 선박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위원장 전준수)의 회의록을 공개했다. 이 회의록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애초부터 군항만을 목적으로 설계하려 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발언이 다수 확인됐다. 회의록에 따르면 정부는 설계변경이나 선박조종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지 않고도 공사를 강행할 수 있도록 기술검증위원들에게 자료 조작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기술검증위원회는 지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관광미항 기능을 갖춘 제주 해군항은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2척이 접안할 수 있는 해양공원으로 개발될 예정"이라고 밝힌 것에 이를 중립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올해 총리실 산하에 설치됐다. 위원회는 국회와 정부, 제주도가 추천한 인사 6인으로 구성돼 있다.
"해군기지로 건설하려다 복합항으로 갔다"지난 2월 14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4차 기술검증위에서 한 위원은 "정부가 그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고 바로 공사를 할 수 있는 그런 데이터를 우리 보고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데, 제가 봤을 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비공식적인 경로로 시뮬레이션을 건너뛰려는 등의 데이터 조작을 요구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에 앞서 1월 26일 열린 1차 회의에서는 제주 해군기지가 처음부터 군사기지로 설계됐다는 발언이 잇따랐다. 이날 회의에서 한 위원은 "함정을 위한 해군기지로 항만설계가 이미 되어 있는 상태에서 민항 기능 보장차원에서 설계 변경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 다른 위원은 "해군이 미리 설계를 다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그 다음 크루즈선을 민군복합항으로 하니까 이 크루즈선이 과연 들어갈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검증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1월 30일 열린 2차 회의에서도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한 위원은 "배의 규모를 줄여야지 그 지역에 맞지도 않는데 억지로 15만 톤을 갖다가 두 척이나 넣어서 거기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또 "크루즈 부두를 하면 거기에 맞게 가장 먼저 해야 될 게 수역시설인데, 그 배(15만t 크루즈선)가 들어오는 데도 바뀐 게 (설계) 평면 쪽은 하나도 없다"며 "(군항설계를) 안 바꾼다는 전제가 다 깔려 있다"라고 말했다.
15만 톤 크루즈 2척의 동시 접안은 처음부터 경제성 근거가 명확하게 드러난 게 아니라 이 대통령이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화끈하게 지른" 것이라는 내용도 확인됐다. 회의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그런데 하여튼 15만 톤이라고 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자 다른 위원이 "그 때 왜 화끈하게 15만 톤을 불렀는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위원들은 "애초부터 15만 톤이라고 한 것이 잘못"이라며 "15만 톤 한 대만 대고 8만 톤 대고 그래도 나았을 텐데 15만 톤을 두 대 댄다고 그래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원은 "정부에서 해군기지로 건설하다가 복합항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하던 설계에 대한 검토 없이 정부에서 선약을 했다"며 "충분한 검토를 하고 했으면 아마 15만 톤, 이것은 안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제주해군기지는 당초부터 군항으로만 계획됐고, 민군복합항은 설득 논리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으려 했다는 의혹이 실체로 드러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장하나 의원은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입출입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기술검증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결과"라며 "특히 2007년 국회가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의결한 민군복합형 기항지라는 조건을 이행하겠다는 해군 측의 의지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입증됐다"고 비판했다.
장 의원은 이어 "검증위원회 내부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정부 예산을 최대한 세이브도 시키고 잘되는 방향으로 검토를 하고 싶었지만 데이터로 봤을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는 발언도 나온다"며 "백번 양보해 민군복합항이 가능하다고 해도, 거기에 걸맞은 용역과 설계가 나오기 전에는 해군기지 공사와 예산집행을 즉각적으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