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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 친환경 쌀 작목반과 한살림 서울 북부지부 소비자들 간의 도농교류 한마당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 친환경 쌀 작목반과 한살림 서울 북부지부 소비자들 간의 도농교류 한마당 ⓒ 오창경

시골 마을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푸른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았던 논들이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때이다. 노랗고, 누런, 노르스름한... 세상의 모든 노란색을 동원한 듯한 벼들이 펼치는 향연이야 말로 시골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이다.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여름의 태양은 시골 마을의 들녘에 더 선명한 유채색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 들녘은 친환경으로 벼를 재배하는 곳이다. 지난 6일 만지리에는 도시 사람들을 초청해서 시골 마을의 자원인 친환경 논에서 메뚜기도 잡고 농사 체험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지리가 친환경 논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1999년부터 혼자서 외로이 친환경 농업을 실천한 신승길(52세)씨 덕분이다. 3년 전부터는 만지리의 거의 모든 논들이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면서 만지리는 친환경 마을이 되어버렸다. 만지리에서는 한 살림 공동체와 손을 잡고 생산하는 모든 쌀을 납품하면서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돈독한 관계를 쌓아왔다.

자외선을 충분히 쐬지 못해 창백해 보이는 서울 아이들이 포충망을 손에 들고 버스에 내리자 만지 마을도 황금빛 들녘처럼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만지 마을 부녀회원들이 준비한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어느 새 논으로 들어가 메뚜기를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메뚜기인지 메뚜기가 아이들인지 모를 정도로 도시 아이들은 메뚜기 잡기에 푹 빠져버렸다. 메뚜기 잡기 체험이 너무 재미있어서 벌써 세번째 참여하면서 친구들까지 데리고 왔다는 한 아이는 순식간에 서너 마리를 잡아서 메뚜기 잡기 고수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시골에 사는 우리 아이들도 논에서 메뚜기를 직접 잡는 일을 해보지 않았다. 그 것은 도시 출신인 우리가 메뚜기를 잡아서 간식으로 먹는 '정글의 법칙'에 나올법한 일을 해봤던 어린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병만이 머나먼 정글에 까지 찾아가서 생존 체험을 해내는 원동력은 아마도 시골에서 메뚜기를 잡고, 다람쥐를 쫓고, 진달래를 따먹고 놀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농촌 체험 행사에 참가한 도시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고 덤으로 청개구리와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을 직접 만지고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자연을 즐기는 법을 터득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온, 시골을 글로 배웠을 도시내기 엄마들이 오히려 청개구리 한 마리에 소리를 지르며 피해 다녀서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벼에서 쌀이 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벼 수확 체험이 진행되자 마을 어르신들이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논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일을 자제시키자 아이들이 더 해보겠다고 떼를 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고, 어릴 적 농촌에서 살았던 노부부는 추억의 낫질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도 했다.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법한 농기구들인 홀태, 수동 탈곡기, 풍구가 어느 집 뒤뜰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만지 마을 광장으로 불려 나와 있었다. 홀태라는 농기구는 벼의 열매를 줄기로부터 훑어 내는 기구이며 좀 더 발전된 형태의 농기구가 수동 탈곡기이다. 아이들이 농기구를 체험하는 동안 구경을 하던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들더니 추억의 한 마당이 펼쳐졌다.

 만지리 들녘에서 메뚜기를 잡으며 시골 체험을 하는 도시 사람들
만지리 들녘에서 메뚜기를 잡으며 시골 체험을 하는 도시 사람들 ⓒ 오창경

수동 탈곡기의 부여 공식 명칭은 '호롱기' 또는 '와릉꽈릉' 이라는 것이었다. 수동 탈곡기가 와릉꽈릉 이라는 소리를 내며 돌기 때문에 이런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홀태로 벼를 훑어서 쌀을 생산하다가 수동 탈곡기의 등장으로 벼농사의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짓던 농가에서 머슴들이 고기가 먹고 싶을 때 수동 탈곡기에 일부러 닭을 던져서 넣어서 고기 먹을 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동 탈곡기가 돌아갈 때 벼를 살며시 넣지 않으면 벼가 소리를 내며 튀게 된다. 이럴 때 머슴들은 '닭 잡았다' 소리를 내며 노동의 고달픔을 달래고 주인에게 고기를 먹여달라는 투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농기구 체험은 어느새 마을 어르신들의 추억담으로 더 풍성해지고 있었다.

한바탕 농사 체험이 끝나고 기다리던 새참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양파망에 한 가득 잡아 온 메뚜기가 샛거리(새참)의 재료가 되어 프라이팬에 볶아졌다.

"메뚜기를 어떻게 먹어?"
"우리 정글의 법칙에 온 것 같아, 그치?"

이렇게 말하던 아이들은 메뚜기 볶음을 꺼려하지 않고 잘도 먹었다. 도시 사람들은 추억을 만들고 시골 사람들은 추억을 되새기며 만지 마을 들녘을 뜨겁게 달군 하루였다.

비대해진 도시와 상대적으로 위축된 농촌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요즘 이런 농촌 체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만지 마을 사람들이 올해 처음 농촌 체험 행사를 기획하면서도 도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시험 삼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모아졌을 뿐이었는데 부여군의 친환경 먹거리에 관심이 있는 농민들과 옆 동네 사람들까지 찾아와 만지 마을의 농촌 체험 행사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어릴 적 경험은 추억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게 한다. 아이들을 정글에 보낼 수 없다면 추억과 이야기가 있는 시골 마을로 보내자.


#메뚜기 잡기#도농 교류#만지리 #부여군#정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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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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