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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매번 선거 때가 되면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투표율이다. 유난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그만큼의 정치 냉소주의도 만연해 있는 한국. 투표율에 따라 어느 후보가 당선될지를 점치는 것은 소위 선거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투표율이 낮다면 촘촘한 조직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보수정당의 후보가 유리하고, 투표율이 높다면 조직력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진보·개혁정당의 후보가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낮은 투표율에 당선 기대를 거는 이들이 우리사회의 주류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이런 해석은 이번 대선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터널 디도스'와 투표시간 연장 캠페인

지난해 10월 26일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투표율. 18시부터 20시까지 투표율이 8.7%p상승했다. 만약 18시에 투표가 끝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26일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투표율. 18시부터 20시까지 투표율이 8.7%p상승했다. 만약 18시에 투표가 끝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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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류들 중 누군가는 낮은 투표율을 단지 바라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은 투표소 확인을 방해해 투표율을 낮추려는 조직적 '공작'이었다. 경찰은 디도스 공격을 지시한 혐의로 최구식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의 비서를 구속했지만,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냥 음모론쯤으로 치부되었을 사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4.27 재·보선에서도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새누리당의 공작이 있었다는 증언이 핵심 당직자에게서 나오기도 했다. 지난 9월 24일 새누리당 전 청년위원장인 손인석씨는 경남 김해을에 출마한 김태호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창원터널에서 거짓 공사와 차량동원으로 교통체증을 일으켰다고 증언했다. 이 공작을 위한 자금 1억원을 자신이 제공했다는 것이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사건은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에 빗대어 '터널 디도스'라 불린다.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특정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공단지역에는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표를 막기 위해 투표 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휴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거 때만 되면 특정 기업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 단지 등에서 기업 간부들이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펼치고 야당성향의 조합원에게 밤새 설득작업을 벌이기도 하며, 투표를 막기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꼼수도 흔히 벌어진다. 그나마 노조가 강한 곳에서는 투표시간을 보장받기도 하지만,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2011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를 진행한 한국정치학회(연구책임자 가상준)의 연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체로 일용직이나 임시직, 파견·용역·도급직, 그리고 회사규모가 작을수록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일반 유권자의 투표 불참이 주로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이뤄짐에 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65%가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답했다.

공직선거법 제6조 3항에는 "공무원·학생 또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가 선거인명부를 열람하거나 투표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휴무 또는 휴업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에는 별반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투표일에 쉬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없듯이 정상근무는 물론 회사 차원의 단체 야유회나 수련회 일정을 잡아 투표를 어렵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총선 당시 인천·경기지역에서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강제자율학습을 실시한 중고등학교는 14곳이나 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투표시간을 연장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의 투표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투표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한국과 달리 영국과 이탈리아는 투표시간이 오후10시까지이고, 캐나다는 오후 8시 30분까지, 러시아와 스웨덴, 일본은 오후 8시까지, 미국 뉴욕 등 대부분의 주도 오후7시 ~ 오후 9시까지 투표가 보장된다.

이 때문에 각종 유권자 운동단체는 투표시간 연장 캠페인을 펼치고 있으며, 민변은 지난 9일 투표시간을 제한한 공직선거법 제155조 제1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여당은 차기 지방선거에서나 투표시간 연장을 추진해보자는 입장이다.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디도스 공격이나 터널봉쇄까지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당이 투표시간 연장에 찬성할 리 만무하다.

정치적 무관심이나 자발적인 거부로 인해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투표의지를 가진 이들의 참여까지 보장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비용이 문제될 순 없다. 민주주의를 더욱 풍부화하라고 국민들이 낸 세금을,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디에 쓰란 말인가? 투표참여 의지를 가진 이들이 제대로 권리를 행사했다면, 수십조원을 강바닥 헤집는 데 낭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투표시간 연장은 필요하지만...선거판도 달라져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여당의 논리에도 일말의 교훈은 있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지난 10일, MBC라디오<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현해 대선에서 투표시간 연장에는 반대하면서도 낮은 투표율이 "정치불신에 대한 국민의 표현"이라고 진단했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정치불신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투표를 거부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가 정치답지 못하고 선거가 선거답지 못한 상황이 적극적인 투표참여의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과학기술나눔 마라톤 축제에 나란히 참석,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과학기술나눔 마라톤 축제에 나란히 참석,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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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 역시 아쉬운 점이 많아 보인다. 총선 전만 해도 올해 있을 두 거대 선거가 새로운 2013년 체제를 만들 계기가 될 것이라는,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희망 섞인 주장이 넘쳐났다. 1987년 6월항쟁과 6.29선언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문을 열었지만,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낡은 체제가 쇠락해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체제, 새로운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에 대한 열망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새로운 체제를 부르짖던 수많은 목소리는 상당부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오히려 각 후보 진영을 지배하는 선거 전략은 새로운 체제를 둘러싼 패러다임 경쟁이라기보다 중간층을 확보하기 위한 '중도화' 전략이다. 새로운 전환적 시각보다 기존 체계에 머문 채, 자신의 이미지와 차별화된 영향력 있는 인사를 영입하는 데에만 공을 들이고 있다. 

문제는 중도화 전략을 추구할수록, 패러다임 수준의 전환논쟁을 기대할 가능성도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다. 각 후보진영에서 경제민주화나 정치개혁 등의 의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당 부분 정치권 내로 제한된 정책적 수준의 주장일뿐더러 논쟁이 필요한 많은 의제들이 상당부분 누락되어 있다. 대신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과 같은 핵심을 벗어난 이슈가 논란이 될 뿐이다. 모두가 중도화 전략을 추구한 결과, 정책적 차이점이 모호해지는 것은 부수효과다.

선거 때가 되면 유력 후보에게 모여드는 사람들이 그 후보의 가치와 지향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 후보의 '캠프'에 선을 대려 시도하며, 각 캠프 역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캠프로 모이기를 원한다. 다양성이 많을수록 캠프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진보에서 보수를 망라하는 다양한 가치를 모아내고자 하는 후보일수록 슬로건은 추상적인 선언으로만 흐르며, 내용은 정책 수준에서만 조율된 채 상당 부분을 비워놓게 된다.

이런 빈 구석을 채우는 것은 '각기 해석된 열망'이거나 정치적 이익에 대한 기대다. 제각기 해석되고 자의적으로 투영된 이질적인 열망 간의 결합을 유지하기 위해 패러다임 수준의 논쟁은 자제된다. 대체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후보가 자신이 기대하는 구체적인 패러다임을 선명하게 제기하지 않는 것은 선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전술이라고 이해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동시에 차를 몰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점에서, 열망의 환상이 깨지는 것은 주로 선거 때가 아니라 당선 이후다.

새로운 의제 던져야할 진보정당·시민사회 역할 미비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퇴근시간과 함께 끝나는 투표시간은 투표참여를 방해하는 한 원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거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다양한 국민의 열망이 소통되고, 경쟁하며, 요구되는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

인주가 없는 '투표용기'이지만,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하는 '권리와 의무' 기구다.
 인주가 없는 '투표용기'이지만,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하는 '권리와 의무' 기구다.
ⓒ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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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위 유력후보의 노력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비슷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력후보일수록 모험을 피하고 안정적인 승리를 보장하는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존의 각축구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는 것은 주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가 해온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역할을 수행할 주체가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황이다. 진보정당은 총선 직후의 한바탕 자해소동으로 인해 정치적 영향력이나 국민적 신뢰를 상당부분 상실했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준), 진보신당에서는 각기 대선후보를 내세울 계획이지만, 작은 세력이 더 잘게 찢어진 상황에서 얼마나 큰 울림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진영 내부에서 지속되는 갈등과 반목은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민사회와 지식인들 역시 자기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가 선거 지형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보다 후보 캠프에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시민운동의 상징적 인물들이 이미 정치권에 자리를 잡았거나 후보 캠프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며,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던 지도급 인사들 역시 노동 의제를 운동화하기보다 각 후보에게 은밀하게 선을 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지식인 사회는 오래 전부터 '누가 누가 어느 어느 캠프에 줄을 섰더라'는 소리가 흉흉하게 퍼졌다.  

선거를 둘러싼 지형을 만들어야할 진보정당과 시민사회가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는 상황은 이번 대선을 유력후보들만의 지지율 경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선거판은 대중의 열망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음은 물론, 후보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도 제약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최근 보수진영이 주도하고 있는 NLL논쟁은 평화체제를 수립해 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합리적으로 토론해 봐야할 의제이지만, 이성적 토론을 할 수 있을 만한 지형이 만들어지지 못해 진실공방만이 지루하게 전개되고 있다. 합리적 논쟁의 지형이 만들어지지 못할 때, 그것을 돌파할 역할을 후보 개인에게만 맡겨놓는 것은 무리다.

투표참여, 민주주의 역동성과 함께 고민돼야

선거가 다가올수록 대선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그러나 투표참여를 단지 선거 승리의 가능성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역동적 측면으로 이해한다면, 그 가열이 후보단일화나 선거의 기술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대선은 단지 청와대 주인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어떤 미래로 바꿀 것인지를 논쟁하는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여론조사 몇 %가 언론에 도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들이 마음껏 던져지고,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어떤 후보가 자신에게 유리할 것인지를 소극적으로 계산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국민의 요구와 다양한 대안을 드러내는 자기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대선후보만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에 휩싸인 국민들이 했어야할 이야기를 떠들어 주는 것, 후보 간의 논쟁이 더 넓은 지평에서 진행되도록 개입하는 것, 그것이 지금 시민사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투표참여 운동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식어버린 2013년 체제의 열망이 국민 사이에서 다시 살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태그:#투표참여, #터널디도스, #2013년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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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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