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 청도는 씨없는 감, 청도 반시로 온통 주홍빛이다.
 지금 청도는 씨없는 감, 청도 반시로 온통 주홍빛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하늘과 물이 맑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맑고 푸르다 해서 붙은 동네 이름 '청도'. 경상북도의 남단, 대구광역시 아래에 자리한 청도는 지금 가을이 오는 골목에 놓여 있다. 경북 청도의 가을은 온통 탐스러운 주홍빛이다. 감나무가 산기슭과 마을과 거리를 가득 메우고 나무마다 탐스러운 청도 반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청도 전체가 황톳빛 감물이 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매년 10월 중순 청도에서는 반시 축제도 열린다(올해는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청도 감은 생김새가 동글납작해서 반시(盤枾)라고 불리며 씨가 없는 게 특징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감나무를 뽑아 다른 지역에 심어도 씨가 생긴다는 점이다.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지형에다 유독 안개가 많이 끼는 청도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특성은 청도에서 곶감보다 감말랭이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감말랭이는 감을 서너 조각 내 말린 것인데 젤리처럼 쫄깃하고 달달하다. 들고 다니면서 한두 개 집어먹다 보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만다.

안개 같은 구름이 흘러다녀서인지 청도의 최고 자랑은 뭔가 몽환적인 이름을 지닌 절, 운문사(雲門寺)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청정도량 운문사는 과거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이었으며, 1277년 운문사 주지가 된 일연 스님이 5년 동안 머물면서 겨레의 위대한 유산인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곳이기도 하다. 새로 냈다는 '솔바람길'을 따라 구름이 머무는 절 운문사에 닿아 바위 절벽 아래 암자까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걸어봤다.

운문사의 숨은 비경을 기대하며 걷는 길

 운문사는 일주문이 아닌 누구나 걷기좋은 소나무길이 맨먼저 반긴다.
 운문사는 일주문이 아닌 누구나 걷기좋은 소나무길이 맨먼저 반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절안에는 다양한 표정과 모양의 석상들이 많아 흥미롭다.
 절안에는 다양한 표정과 모양의 석상들이 많아 흥미롭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절 매표소에서 사람들을 맞은 것은 신성한 가람으로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일주문이 아니었다.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찬 솔숲길이 여행자를 반긴다. 운문사 입구까지 연결된 이 길(약 1km)은 '솔바람길'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시작된다. 남녀노소, 유모차까지 대동해 갈 수 있는 편안하고 예쁜 솔숲길 '솔바람길'은 운문사의 자랑이기도 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솔바람길 나무 이정표에 쓰여 있는 불경의 한 구절이 마치 멋진 시구 같다. 수백 년 묵은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길 양옆에서 나름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느 나무 하나 똑같이 생긴 게 없다. 소나무 숲을 걷는 발걸음은 무척 가볍다. 청정한 개천 운문천이 함께 흘러서일까, 아니면 세상을 초탈한 비구니들이 공부하는 곳이어서 그런 것일까.

빨리 걸으면 절까지 15분이면 닿겠지만 이 길은 느릿느릿 걷는 게 제맛이다. 그윽하게 번지는 솔향과 청아한 새들의 지저귐 소리 덕분인지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맑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모녀의 모습도, 아이를 번쩍 안고 걷는 아버지의 모습도 솔숲길만큼 예뻐 보인다. 길 오른쪽으로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올 즈음이면 절 입구인 범종각 앞에 닿게 된다. 천 년 세월을 인고해온 절집이 여행자를 반긴다. 구름으로 들어가는 산문이라는 운문사(雲門寺)다.

맑고 밝은 기운속에 애잔함이 숨어있는 절 

 비구니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 같은 애잔함이 숨어 있는 운문사.
 비구니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 같은 애잔함이 숨어 있는 운문사.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운문사에 찾아온 사람들을 팔벌려 맞이해 주는 4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 '처진 소나무'
 운문사에 찾아온 사람들을 팔벌려 맞이해 주는 4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 '처진 소나무'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인 동시에 수백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4년제 승가대학이다. 그래서인지 여승들의 수도 도량답게 깔끔하면서도 화사하다. 절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니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비구니 스님이다. 비록 스님이지만 젊은 여성 특유의 맑고 밝은 기운을 발한다. 가게에 활기가 넘친다. 파르라니 깎은 젊은 여승의 머리를 목도하노라면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세속의 일을 뜬구름처럼 여기고 불문에 들어섰기에 운문사(雲門寺)로구나, 깨닫게 되기도.

입구의 범종루를 지나면 수령 400년이 넘었다는 '처진 소나무'가 팔 벌려 사람들을 맞이한다. 높이 6m의 소나무는 사방으로 나뭇가지를 뻗었다. 곳곳에 나뭇가지를 지탱하는 지지대가 세워져 있다. 겉에서 볼 때는 넓은 우산처럼 생긴 독특한 자태를 지닌 소나무인가 싶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이 나무가 왜 처진 소나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온몸으로 오체투지를 하는 양 모든 가지가 땅으로 치내려 있다. 천연기념물 180호로 지정된 이 소나무는 매년 봄이면 뿌리가 땅에 잘 밀착될 수 있도록 열두 말의 막걸리를 부어준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557년(신라 진흥왕 18년), 한 신승(神僧)이 동·서·남·북과 중앙에 다섯 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남은 것은 서쪽 대비갑사(현 대비사)와 남쪽 천문갑사 (현 운문사)뿐. 4년 뒤인 561년 원광국사가 중창했고 그는 일생의 좌우명을 묻고자 찾아온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내려준다. 운문(雲門)이라는 멋진 이름은 그로부터 343년이 지난 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도왔던 보양국사에게 보답하며 내린 이름이라고 한다.

 구원을 받고 싶은 중생의 모습인 '악착보살'이 상단의 '반야용선'에 익살스럽게 매달려 있다.
 구원을 받고 싶은 중생의 모습인 '악착보살'이 상단의 '반야용선'에 익살스럽게 매달려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운문사 경내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특히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로전 천장의 '반야용선'에 매달린 '악착보살'의 익살스러운 모습이다. 이 보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온다.

'어느 옛날 신앙심 깊은 이들을 서방의 극락정토로 인도해 가는 반야용선이 도착했을 때 이 배를 타야 할 어떤 보살이 자식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다가 너무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이미 용선이 떠나가고 있었기에 보살은 용선의 밧줄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서방극락 정토로 갔다.'

반야용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줄에라도 매달려 가고 싶어하는 애처로운 중생의 모습, 바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아닐까.

운문사, 지룡산성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멋진 풍광의 암자

 절벽아래의 암자 북대암에 가까이 올라 갈수록 아스라히 펼쳐지는 운문사
 절벽아래의 암자 북대암에 가까이 올라 갈수록 아스라히 펼쳐지는 운문사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멋들어진 주변 풍광에 올라온 노고를 잊게 하는 북대암, 사진 위쪽의 암봉이 지룡산성이다.
 멋들어진 주변 풍광에 올라온 노고를 잊게 하는 북대암, 사진 위쪽의 암봉이 지룡산성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운문사를 제대로 보려면 우뚝 솟은 지룡산 암봉아래 매달리듯 들어서 있는 암자 북대암에 올라야 한다. 가파르지만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고, 좌우로 꺾어진 길 모양이 제법 걸을 만한 멋을 풍긴다. 요즘 절 길이 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콘크리트로 포장해 버려 암자 가는 길 맛을 잃어 버렸다. 설렁설렁 천천히 오르다가 만난 극락교를 건널 즈음에는 발 아래로 반듯반듯한 전각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 있는 운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여 분을 걸어올라 암자 초입에 들어서면 주홍빛 감이 예쁘게 달린 감나무가 여행자를 맞는다. 운문산에 최초(서기 557년)로 세워진 암자인 북대암. 이곳에 오르면 산세 그윽한 곳에 있는 명당 중의 명당 운문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지룡산성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기가 막히는 풍광. 운문사를 세운 스님 역시 이곳에서 운문사 터를 바라보며 위치를 결정했을 듯하다.

 빨간 고추들, 항아리와 감들이 가을 햇볕아래 익어가는 아담하고 정겨운 암자
 빨간 고추들, 항아리와 감들이 가을 햇볕아래 익어가는 아담하고 정겨운 암자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북대암은 운문산에 최초(557년)에 세워진 절이다. 뒤편에 보이는 우람한 바위봉은 지룡산성으로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계기를 만든 곳이다. 산성을 쌓았던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 수도 금성을 공략하자 신라는 고려에 항복했다. 그 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했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은 북대암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북대암에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탄생 설화가 내려온다는 지룡산성으로 연결된 산행길을 따라서 말이다.

시원한 약수를 몇 모금 마시고 평상에 털썩 앉아 있으니 북대암까지 올라오느라 흠뻑 젖은 땀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어느새 날아간다. 사방은 고요한데 산새들이 맑게 우짖는다. 경내 마당에는 빨간 고추들이 가을볕을 쬐고 있고, 스님에게 허락을 받은 아이들이 감나무 밑에서 깡총 거리며 감을 따고 있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와중에 만난 다리의 이름이 왜 '극락교'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운문사에는 지난 13일에 다녀왔습니다.



#운문사#솔바람길#북대암#청도#청도반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