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
'정말 부럽다.'<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들은 시민기자들이 보낸 기사를 검토하면서 가끔 이렇게 메모를 남기기도 합니다. 특히 여행 기사를 볼 때면 이런 생각이 정말 많이 듭니다. 그리곤 갑갑한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지요. 언젠간 나도 세계여행을 하리라, 굳게 다짐하지만 그때는 오지 않지요.
최근도 이렇게 편집부 기자들의 속을 긁어 놓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라오스 여행학교'를 연재하는 양학용 기자님인데요. 부인 김향미씨와 세계여행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엔 '여행학교'라는 아이템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작년 겨울 청소년 11명과 대학생 2명과 함께 라오스를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지요. 여행하면서 세상을 배운다는 의미겠지만 편집기자들 눈에는 배움보다는 '여행'이라는 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너무너무 부러운 그분, 양학용 시민기자를 이메일로 만났습니다.
☞ 양학용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 '여행학교'라... 이렇게 특이한 아이템을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요?"2003년에 아내(김향미)와 함께 세계일주를 할 때 석 달 정도 조카랑 같이 여행했거든요. 여행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조카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여행이 참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에도 여행의 경험이 그 녀석에게 어떤 힘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맘 놓고 놀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생각하게 됐어요."
-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허락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아니에요. 세계일주를 기록한 저희 책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날개글에 여행학교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썼는데요, 그걸 보고 오히려 부모님들이 저희가 여행 계획도 세우기 전에 먼저 연락을 해왔어요. 여행학교를 시작하면 자기 아이는 꼭 데려가야 한다고 예약까지 했고요. 저희 부부가 믿을 만했나 봐요. 아무튼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인 것은 맞아요. 라오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고, 또 편안한 여행도 아니니까요."
잔소리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아이들의 솔직함 배웠다- 여행 가면 친구나 부부끼리도 싸우는데 펄펄 뛰는 10대 무리와 여행이라... 대단함을 넘어 존경스럽습니다. 기사에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는 식으로(^^) 쓴 것 같은데 정말 그랬나요? "제가 그렇게 썼나요? 당연히 많이 힘들었죠. 저희 부부 둘이서 여행할 때처럼 그냥 발 닿는 대로 다니던 것과는 다르니까요. 매일매일 상황에 맞게 뭔가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을 믿는 거였어요. 놀기만 하는 이 아이들이 뭘 배우기나 하는 걸까,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죠. 잔소리하지 말자, 그러면서도 자꾸 잔소리하게 되는 상황들이 싫었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 아이들에게 배우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자신에게 솔직한 거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마 난 앞으로도 그들처럼 솔직해질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 기사 나가고 나서 아이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을 것 같아요. 무슨 얘기를 많이 하던가요? "라오스 다시 가고 싶다고요. 그리고 자기가 진짜 그랬었냐고 묻기도 하죠. 또 사진에 자기 얼굴이 안 예쁘다고 투덜거리는 녀석도 있고요."
- 여행 후 아이들이 정말 많이 변했나요?"부모님들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라오스 갔다 온 걸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고 하더라고요. 좀 힘든 일이 있으면 '내가 라오스에서는 뭐 OOO 이런 일도 했는데...' 하는 식이죠.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 결혼 10년째 되던 2003년에 부인 김향미씨와 2년 8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했어요. 다들 너무 부러워했을 것 같아요. "해외여행은 1994년에 신혼여행으로 태국, 말레이시아를 짧게 갔다 왔던 게 처음이었고 2003년 떠난 게 두 번째였어요. 다들 부러워하시더라고요. 떠날 때보다 갔다 오니까 더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세계여행도 세계여행이지만 부부가 뜻을 맞추어 그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했다는 것 자체를 부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 한 기사에서 이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그랬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아야 할 그 나이에, 도무지 현실을 현실로 살아갈 수가 없어 길을 잃고 세상과 세상 밖 그 사이 어디쯤에서 부유하고 방황했다. 그 방황의 끝에서 발견한 깨달음이 '오늘을 살자'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었나요? 그래서 여행을 떠난 건가요?"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나요? 그때 내가 지금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 혹시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거죠.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꼭 방황의 끝을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힘드니까, 쉬고 싶으니까, 더는 못 견디겠으니까 떠났다고 해야죠."
- 그래서 세계여행에서 길을 찾은 건가요? 여행학교, 혹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글쎄요, 길을 찾았다기보다는,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솔직해지자, 뭐 그런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됐나요. "행복하더라고요. 숨 가쁘게 살았거든요. 나 아니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요. 그런데 한 번 벗어나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갈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그것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꼭 그렇지 않더라고요.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길도 다양하다는 걸 느끼게 된 거죠."
10분만 나가면 바다... 제주도를 선택한 것, 만족해요- 지금은 제주에서 살고 있고 그 전에는 괴산에서도 사셨죠? 전국을 옮겨 다닌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장기 여행 이후에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여행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할까 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우선 예전처럼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게 안 돼요. 아내랑 귀농·귀촌 같은 걸 고민하다 잠깐 괴산에 살았고요, 그러다 교사를 하겠다는 어릴 때 꿈을 떠올린 거죠. 그래서 어쩌다 보니 제주교대를 선택하게 됐는데, 서울에서 제일 먼 섬이라는 것, 그래서 삶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 그런 것들이 지금 우리 부부가 제주에 살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민주노총(인천 지역)에서 10년 정도 일했어요."
- 도시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로망이에요. 살아보니 어떤가요? "저희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10분만 나가면 바다도 볼 수 있고, 산도 오를 수 있어요. 그러면 답답하던 마음이 그냥 풀려요.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이렇게 파란 하늘에 예쁜 바다에 시원한 바람에, 더 바랄 것이 뭐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 떠남을 동경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글쎄요. 그냥 자기 안의 목소리에 솔직하면 좋지 않을까요?"
- <오마이뉴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오마이뉴스>같이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뉴스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소통창구가 되었으면 해요. 깊이 있는 기획기사들도 늘어났으면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