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생명평화대행진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바로 강정마을의 내 친구들 때문이다. 매일같이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어떻게라도 공사를 막아보겠다고 가녀린 팔에 피멍자국을 새겨가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내 친구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그녀들의 절규. 그 처절한 호소를 강정에서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5일 강정을 출발한 생명평화대행진단은 목포, 광주, 순천, 보성, 벌교, 공주, 대전, 마산, 창원, 밀양, 김해, 울산, 구미, 대구, 부산을 지나 경상도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전라북도를 향해 가고 있다. 2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닌다.
이 버스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강정 주민들과 정리해고로 23명의 안타까운 목숨들이 죽어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폭력적인 진압으로 희생된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다. 아파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고 했던가.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고통에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강정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목포의 해고 노동자들을 만났다. 민주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람들. 법원에서 복직판결을 받고도 되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보워터코리아 해고 노동자들이다. '내 고향 남쪽바다' 순천만과 마산만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파괴되는 현장도 만날 수 있었다. 벼가 익어가는 황금 들녘에선 태풍피해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해 걱정인데 수입쌀까지 들어와 걱정이 가득한 농민들의 한숨 섞인 탄식이 있었다.
억새풀이 만발한 반짝이는 강물은 거대한 보에 막혀버렸다. 평생 노동으로 단련된 할머니가 밤새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운명이 되어버린 밀양과 청도의 눈물은 우리 모두의 눈물이 되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고 복직되는 것이 당연함에도 아직도 공장에 돌아가지 못한 현대차 노동자들. 아직도 싸우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 하루아침에 회사가 매각되어 일자리를 잃어버린 풍산의 노동자들은 또 어떠한가.
대기업의 횡포는 골목상권까지 위협하며 유통업을 장악하고 있었고 영세상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발길 닿는 곳곳이 강정이었고, 쌍용이었고, 용산이었다. 그곳에선 정치도 법도 없었다. 단지 잔인한 폭력의 시간들만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리 도와달라 소리쳐도 메아리가 울리지 않는 목소리들만이 현장을 지킬 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약자', '서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이 자판기 커피처럼 널려 있는 이 시기에 이 처절한 호소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표가 아쉬워 부득부득 애를 쓰는 이 시기에도 외면당하는 이 현장의 목소리들은 그 누가 대통령이 된다한들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누구를 뽑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들이 원하는 사회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실종되면 인권이고 평화고 생명이고 그 고귀한 가치들은 한낱 책속에 존재하는 단어일 뿐이었다. 시골의 할머니부터 강남의 부자에게까지 고루 적용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고 싶다면 지금 당장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보장 되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70~80년대의 구호가 아니다.
2012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당면한 과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른 사람의 피눈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임을 알아채야 한다. 끝없이 전기를 쓰며 살아가는 하루 속에서도 우리들이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덕분에 새로운 원전이 지어지고 이 때문에 벌어지는 밀양과 청도의 할머니들이 당하는 아픔과 눈물을 알아야 한다.
생명평화 대행진은 이 얼음 같은 세상에 사람들의 눈물과 절규를 전하는 메아리가 될 것이다. 전국을 돌아 휘몰아치는 이 메아리를 듣고 어떻게 할지는 철저히 개인들의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씩만 더 고민하고 연대한다면 적어도 소리 없는 이 절규들을 큰 목소리로 만드는 증폭기가 될 것이다. 20일 지리산 실상사에서 민회가 열린다. 우리들이 만난 목소리들을 함께 듣고 그 목소리에 화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목소리들을 만나 함께 손을 잡자.
덧붙이는 글 | 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에도 송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