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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8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창조경제 스마트 뉴딜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8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창조경제 스마트 뉴딜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기다렸다, 한국의 보수와 박근혜 후보가 어떤 성장론을 들고 나올 것인지. 원래 성장론은 보수의 단골 메뉴 아니던가? 그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그런데 그들이 주장했던 성장모델, 다시 말해 중국이나 독일식으로 국내 저임금과 해외수출로 성장 동력을 삼던 수출 의존형 모델이나 미국과 남유럽처럼 부진한 소득을 부채로 충당하여 소비하는 부채 의존형 성장 모델은 금융위기로 무너져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정부가 재정자극 정책을 사용하여 경기부양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이제 보수는 성장이 아니라 균형재정과 긴축을 들고 나왔다. 증세 대신에 노동자와 국민들의 내핍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진보 세력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자극정책과 사회안전망 강화로 성장 동력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보수는 긴축협약을 하자고 하고, 진보는 성장협약을 하자는 것이 지금의 유럽이 다. 공화당은 재정삭감을 주장하고 민주당은 버핏세를 주장하는 것이 지금의 미국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경선에 나섰던 손학규 전 의원이 '진보적 성장론'을 그리고 문재인 대선 후보가 '포용적 성장론'을 들고 나오면서 민주통합당 쪽에서 새로운 성장전략에 불을 지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도 대선정책을 담은 단행본 <리셋 코리아>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대안적 성장론으로 '소득주도 성장전략(income-led growth)'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이는 이미 세계노동기구(ILO)와 국제연합(UN)의 각종 포럼에서 대안적 성장전략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을 한국에 선도적으로 적용한 시도였다.

더구나 하반기로 들어오면서 한국경제의 위축은 더 이상이 가정이 아니라 확정적 현실이 되었다.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 성장률을 2.4%로 대폭 낮췄다. 그렇다면 당장의 위기관리 대책과 함께, 침체로부터 어떻게 탈출하고 어떻게 회복 동력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대선후보들은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침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드디어 나온 박근혜 후보의 성장론! 그런데...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지금까지 시종 성장론에 대해 말문을 닫고 있었다. 내용이 모호한 '박근혜 표 경제 민주화'만 반복할 뿐이었다. 성장론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창조 경제론'이라 이름 붙인 박근혜 후보의 성장 정책이 나왔다!

18일 박근혜 캠프는 '창조경제 스마트 뉴딜'이라는 성장 정책, 일자리 정책을 발표했다.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운영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정책"이 창조경제론이라고 박근혜 후보는 정의했다. 그리고 이어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7대 전략'을 제시했다.

1. 국민행복 기술을 전 산업에  적용하여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스마트 뉴딜 정책 시행)
2. 소프트웨어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
3. 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통해 창조 정부 만들기
4. 창업국가 코리아를 만들기, 대학을 창업기지로 만들기
5. 스펙초월 채용시스템 만들기(정부가 인재양성)
6. 청년들의 해외취업기회 확대(K-move 시작)
7. 미래 창조 과학부 신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 봐도 성장전략은 없다. 위기 탈출전략도 없다. 7대 과제 중 앞의 네 가지는 IT산업에 대한 일상적인 정부지원 전략, 즉 IT산업 정책이고, 5번과 6번 둘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등장했던 청년 취업대책의 일부이다. 마지막은 모든 후보들이 얘기하는 정보통신부 부활과 이름만 다르지 맥락은 같은 얘기니 차별될 것도 없다.

10년 전 나왔던 IT산업 정책의 재탕?

아무리 요즈음 스마트 기기가 유행이라지만 IT산업을 다시 중심육성 산업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상당히 뜬금없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 동안 우리 산업의 무게 중심은 일련의 변화를 겪어왔다. '1990년대 말 IT산업→ 2000년대 금융 산업→ 2008년 녹색 에너지 산업'을 거쳐 다시 2013년 IT산업으로 회귀하는 것은 당황스런 산업정책이다. 차라리 이명박 정부가 말로만 추진해왔던 녹색, 에너지 산업정책에 대해 내실을 채워 미래지향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하는 편이 훨씬 진취적이고 의미가 있었을 법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후보는 추격모델에서 선도모델로의 전환, 정보통신과 여타 산업의 융합,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 재벌 SI 중심의 공공 입찰 폐해, 왜곡된 소프트웨어 생태계 문제, 정보통신 벤처 창업 환경의 열악함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해결방안들이 나와 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실 여기에도 삼성과 LG를 포함한 재벌계열 SI(시스템 통합) 기업들의 시장 독식과 이에 대한 정부의 방조가 문제의 해결의 큰 암초로 작용해왔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가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이들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IT산업이 발전하고,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이 애플과 구글을 선두기업으로 하여 정보통신분야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해서 미국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소프트웨어 기반이 거의 없는 삼성이 의외로 스마트폰 하드웨어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더욱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금 한국경제를 회복시켜주고 일자리를 확충해주고 있지도 않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스마트 뉴딜이나 추격모델에서 선도모델로의 전환, 정보통신과 여타 산업의 융합, 창업환경 개선 등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주제들이지만 국가경영 정책으로 제시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삼성 스타일'일 수는 있어도 '대선후보 스타일'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망한' 청년 일자리 정책 계승

그렇다면 일자리 측면에서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도 나을 것이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은 위험하기조차 하다. 일자리 정책은 7대 전략 곳곳에 산만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대표적인 문제 두 가지만 지적해두자.

우선 박근혜 후보는 '스마트 뉴딜'이란 정책에서 정보통신 기술과 여타 기술의 융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근무형태가 가능하고, 다양한 고용형태가 가능한 스마트워크(smart work)를 범국가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더욱이 "전 공무원과 전체 근로자가 대거 스마트 워크에 동참하여 업무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유연형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주장했다.

스마트 기술 덕분에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스마트 워크는 상당히 민감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원격 의료, 원격 회의처럼 현대기술의 장점을 살려 시공간의 제약을 돌파한다는 긍정성이 있다. 이는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기업들이 일련의 실험과 검증을 거쳐 자발적으로 도입할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워크는 재택근무, 원격근무, 유연근무, 모바일 오피스라는 초현대적인 이름의 비정규직을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모든 기술적 성과를 인력비용절감으로 연결시키려는 신자유주의 개념에서는 틀림없이 그렇게 갈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이런 사안의 민감성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스마트를 앞에 붙인다고 무조건 첨단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취업 박람회에서 업체 부스에서 상담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
한 취업 박람회에서 업체 부스에서 상담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 ⓒ 연합뉴스

둘째, 이른바 청년 일자리 문제다. 박근혜 후보는 요즘 유행하는 'K-pop' 개념을 차용한 'K-move'를 제안했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글로벌 인재 양성'을 이름만 바꾼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해외취업을 추진했으며, 언론 보도에 의하면 3년 동안 776억 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중동 건설인력 파견 2000여 명 등 실제 글로벌 인재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직종인 경우가 다수였다. 인턴까지 모두 포함하여 1만5000명의 취업실적이 있다고 발표했으나 <동아일보>에 의하면 이는 절반 가까이 부풀려진 수치였다. 겨우 이 정도 규모와 이 정도 질의 취업을 하자고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민망할 정도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하필 이명박 정부 청년 일자리 중에서 비용대비 효과가 가장 형편없는 대책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차라리 진보의 '성장론'을 따라하는 게 낫겠다

흔히 기업이나 보수세력은 많은 것을 기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미지의 새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여긴다. 박근혜 후보의 창조 경제론도 이런 경향을 매우 강하게 반영한다. 그러나 부가가치 창출은 경제의 공정성 혁신, 제도 혁신, 작업 방식 혁신, 관점 혁신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또한 혁신이 일어나는 분야는 정보통신뿐 아니라 농업을 포함하여 모든 산업이 다 가능하다. 최근 일자리가 가장 많이 늘고 있는 사회서비스도 서비스의 질과 고용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분야다. IT기술 혁신만을 내세우면서 인력비용을 줄이고 해외생산기지는 늘려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삼성 스타일'은 해당 산업에서도 문제이며, 국가 전체로 확대해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집무실 한켠에 '희망소원'이라고 이름 붙인 친환경텃밭을 보여주며 토마토가 열린 것을 자랑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집무실 한켠에 '희망소원'이라고 이름 붙인 친환경텃밭을 보여주며 토마토가 열린 것을 자랑하고 있다. ⓒ 유성호

만약에 혁신에 대해 그래도 관심이 있다면, 차라리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조하고 있는 '사회혁신'을 공부하길 권고한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16일 아시아 미래포럼에서 "사회혁신이야말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회 혁신을 위해서는 국가와 시장, 사회의 경계를 넘어선 협력이 필수적"이라면서, 시민과 함께하는 정책 워크숍, 주민참여예산제, 1000인 원탁회의 등을 통해 "시민과 서울시 사이에서 서로 소통과 신뢰가 증가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며, 삶의 질을 높아지게"되는 전망을 했다.

또 하나 짚자면, 지금 경제 침체는 기술혁신이나 부가가치 창출이 약해서가 아니라 수요가 약해진 것이 문제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상품이 발명되고 시판되어도 국민들이 그것을 살 돈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진보가 소득주도 성장전략을 내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쩌면 박근혜 후보는 지금 경제 위기의 원인 자체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어차피 박근혜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보편 복지나 경제 민주화는 모두 진보에게서 차용해 간 정책이니, 차라리 소득주도 성장론도 그냥 차용해가는 것이 덜 위험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2012 대선#박근혜 #스마트 뉴딜#창조경제#스마트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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