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목표로 한 테러의 역사는 2001년에 벌어진 '9·11 테러'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9·11 테러 이전에만 하더라도 테러는 미국 본토와는 크게 관계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 이전에도 미국 영토 밖에서는 미국 국적의 항공기가 운항 도중 폭발하고, 미국 대사관이 습격당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국민들은 슬퍼하고 분노했겠지만, 미국 본토 안에 있는 이상 자신들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9·11은 그런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도시의 상징과도 같았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은 미국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평범한 민간인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죽고 부상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본토라고 해서 안전한 것만은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느꼈을 게다.
그런 불안감은 미국 내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애국법'의 제정으로 이어졌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불필요하고 명분없는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보면 9·11 테러는 참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다.
이슬람 전사들을 추적하는 특수 요원테러 같은 대형범죄를 소재로 하는 소설에서도 작품 속 인물들은 9·11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빈스 플린의 2004년 작품 <전몰자의 날> 도입부에서 CIA 국장으로 등장하는 아이린 케네디는 대통령에게 그런 보고를 한다.
9·11이 터진 이후에 자신들은 일정한 경제 지표를 추적하는 상당히 정교한 통계모델을 개발해 왔다는 것이다. 테러와 연관됐다고 믿는 돈을 다루는 은행·증권사·금융 서비스 기관 등을 항상 주시해왔다. 이들 기관에서 움직이는 돈의 흐름을 분석하면 테러와 관련된 동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동시에 아이린 케네디는 CIA 대테러 특수요원이자 주인공인 미치 랩으로 부터 심각한 정보를 듣게 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 마을에 9·11 테러와 연관된 세 명의 테러리스트가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작은 마을은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아지트이자 작전본부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치 랩은 특수요원들과 함께 대통령의 묵인하에 그 지역으로 파견된다. 랩은 파키스탄의 마을에서 전투를 벌이고 그 결과로 테러리스트들이 핵폭탄으로 워싱턴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계획을 알아내고 만다. 랩은 제한된 시간 안에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저지해야 하는 엄청난 임무를 떠맡게 된다.
미치 랩이 벌이는 끝없는 싸움<전몰자의 날>은 '미치 랩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이다. 첫 번째 편인 <권력의 이동>(
관련기사)에서부터 미치 랩은 줄곳 테러리스트들과 싸워왔다. 랩도 9·11에 관한 생각을 한다. 자신은 대테러 특수요원이지만 사실은 암살자에 가깝다. 랩의 나이는 서른 넷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다.
랩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9·11이 터진 이유도 자신이 테러리스트들을 충분히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하나의 작전이 끝나면 그의 머릿속은 또다른 공격계획으로 가득하다. 그는 상상 속에서 중동과 서남아시아를 넘나들며 누굴 먼저 죽일지 부지런히 작전을 세운다.
애국심도 이 정도면 거의 병적이라고 할만하다. 연쇄살인범들이 살인계획을 세우듯이 랩은 테러리스트들을 사냥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연쇄살인범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그의 살인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미국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여야하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그렇듯이, 랩도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랩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건 알바 아니지만, 문제는 이런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CIA 요원의 입장에 독자들이 공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숨겨진 의도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전몰자의 날> (빈스 플린 씀 | 이영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012.09 |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