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를 둘러싼다. 그의 얼굴을 보려 까치발을 들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경호원과 취재진을 뚫고 그의 눈 앞에 서는 사람도 많다. 그가 쓴 책이나 종이를 가져와 사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 19일 안철수 후보가 방문한 강원도 강릉시 성남동 중앙시장의 풍경이다. 대개 유명인사들을 대하는 민심이 그렇듯 안 후보를 대하는 국민의 마음도 비슷해보였다. 안 후보가 모습을 드러내면 널찍한 시장 통로가 취재진과 그를 보려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른 대선 후보 캠프를 취재한 바 있는 한 기자는 "다른 후보와 비교해볼 때 호응이 뜨거운 편"이라고 말했다. 정당의 후보들처럼 지지자들을 동원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18일부터 1박2일 동안 안 후보가 방문한 강원도 곳곳에서는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를 겨냥해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장삼이사들이 모이는 시장 한복판에선 전혀 다른 흐름이 펼쳐졌다. 왜 대중은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시민들은 대개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 반대 급부로 기성 정치와 한 발 떨어진 안 후보에 대한 호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안 후보가 신중하게 공약을 내놓는다는 점을 주요한 지지 이유로 꼽는 시민들도 많았다. 기성 정치인들처럼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식의 설익은 공약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안 후보가 정책을 빨리 내놓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언론 보도 태도와는 다르다. 민심은 늦은 공약보다 설익은 공약에 대한 반감이 컸다.
강원도는 지난 4·11 총선 때 9명의 국회의원을 모두 새누리당으로 뽑아준 곳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시민이 많다. 이날 안 후보가 방문한 곳에서도 "귀찮게 하지 말라"며 항의를 한 시민도 있었다.
하지만 안 후보에 환호하는 시민이 더 많았다. 한 강릉시민은 "아직도 습관적으로 '1번'을 찍는 사람들이 많지만, 하지만 안 후보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무조건 '1번'을 찍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는 안 후보의 1박 2일 강원 방문을 동행 취재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 안 후보를 향한 언론의 비판과는 달리, 오히려 환호를 보내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안철수 후보를 보기 위해 30분을 기다렸다"
안철수 후보가 강릉 중앙시장을 방문한 19일 오후 12시 50분. 안 후보가 시장 들머리에 도착하자, 중년 여성 3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은 안 후보와 악수를 하며 "꼭 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들은 안 후보가 지나간 다음에도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장 상인인 이들은 "안 후보를 보기 위해 가게를 옆 가게 주인에게 맡기고 30분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반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초희(59)씨는 안 후보 지지자다. 박씨는 "강릉사람, 특히 기성세대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좋아한다, 정치경력 있지 않느냐"면서도 "하지만 안 후보는 때 묻지 않은 느낌이 든다는 게 큰 강점인 것 같다"고 전했다.
"때 묻지 않은 느낌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른 정치인들은 정치경력이 있지만, 지금까지 나라를 잘 이끌었느냐"고 반문하며 "안철수 후보는 기성 정치인과는 다르게,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안 후보가 지나가는 골목 2층의 창문이 하나씩 열렸다. 시민들은 휴대전화를 들어 안 후보의 모습을 찍었다. '중앙 한성식당', '동의보감 한의원' 등 2층에 있는 주민들이 안 후보를 향해 "안녕"이라고 외치자, 안 후보는 "2층에 계시네, 반갑습니다"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 후보의 인기는 성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강소희(18)양은 안 후보를 보자 "우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낑낑대며 취재진 너머의 안 후보를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강소희양은 "청렴한 이미지"라며 "반에서도 안철수 후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많은 시민들은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그가 기성 정치권과 한 발 떨어져있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일부 보수적 성향의 시민들은 "안철수 후보를 믿을 수 없다"면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명박에 실망... "'신중한 공약' 안철수 지지"
안 후보는 일일이 가게에 들려 인사를 나눴다. 20년째 잡화가게를 하는 김순옥(55)씨는 안 후보의 손을 꼭 잡았다. 김씨는 기자에게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찍은 김씨는 안 후보에게 마음이 기울었다고 귀띔했다.
"지난 대선 때 경제를 살려주겠다는 이명박 후보를 뽑았지만,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다. 크게 실망했다. 반면, 안 후보는 허투루 공약을 내놓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식으로 많은 개발 공약을 내놓는다. 하지만 안 후보는 정말 신중하게 공약을 내놓는다. 믿을만 하다."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양대 정당 후보에 대한 비토와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인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안영남(42)씨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안철수 후보의 '광팬'이라고 밝힌 안씨는 "모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공약을 내놓았다, 다른 후보의 거창한 말보다 출발선을 공정하게 만들겠다는 안 후보의 말이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다"며 "안 후보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안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많은 상인·시민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이들은 안 후보가 기성 정치인처럼 허투루 공약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안 후보의 강조점과 같은 맥락이다. 안 후보는 지역 방문 일정 첫날인 지난 4일 광주 조선대 강연에서 "확실하게 약속드리는 것은 표를 의식해서 설익은 개발 공약 하나 덜렁 내놓고 가지는 않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지난 8일 안 후보는 대구대 강연에서 "치밀하게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 중 현실과의 접점에 있는 것(공약)을 순서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18일 춘천시 후평동 호반초등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학부모가 홈스쿨 활성화를 주문하자, "공교육이 정상화 된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홈스쿨 관련 대책을 내놓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안 후보의 지지 이유로 '진심'을 꼽는 이들도 많다. 안 후보는 1박 2일 동안 강원 일정을 소화했다. 이틀간 800여 km를 이동하며 12개의 일정을 진행했다. 고성군 현내면 마찬진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1박 2일 동안 강원도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원도에 큰 표도 없을 텐데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