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밤 9시 20분경 천의봉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사무장과 최병승 대법판결 승소자 2명이 현대자동차 3공장(명촌문) 철탑 25미터 위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비정규직 노조에서 문자로 보내왔었습니다.
이 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공농성에 돌입하며'라는 글을 비정규직 노조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들은 첫머리에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어 "우리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법을 지키라는 것"이라며 "불법파견 판정 이후 8년, 대법원 판결 2년, 십년 동안 현대차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현대차가 "오히려 정당한 요구를 걸고 투쟁하는 조합원을 무자비한 폭력과 징계,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등 탄압으로 일관해 왔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또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불법파견을 인정하기는커녕 3000명 신규채용이라는 기만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다"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을 현대차 자신들의 기준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투쟁했던 조합원들에게 징계로 협박하고 업체장 추천 등 미끼를 던지며 현장을 유린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철탑에 오르기 전에 쓴 내용을 본 저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그곳에 가볼 수 없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자꾸 일이 생겨 19일 금요일 오후에야 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철탑 농성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매일 오후 6시 30분부터 철탑 농성장 지키기 촛불문화제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저도 현대차를 10년 다니다 2년 전 정리해고 당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움직임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현대차에 맺힌 게 많은 저로서는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대법원에서 최종판결 난 것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다니는 일용직 일을 마치자 마자 바로 버스를 타고 그리로 갔습니다. 명촌에서 내려 현대차 쪽으로 300미터쯤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다시 300미터쯤 가면 철탑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가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500여 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날은 도착 전에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으로 주변이 잘 보였습니다. 옆엔 철길이 나있어 간혹 열차가 철커덕하고 달렸습니다. 철탑엔 현대차에서 친 것으로 보이는 철조망이 몇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두 비정규직 노동자는 철조망을 뚫고 철탑 위로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철탑 사이에 얇은 나무판으로 깔개를 깔았습니다. 낮이면 햇살이 뜨겁고 밤이면 많이 추울 겁니다. 그곳은 앉아 있기도 누워 있기도 불편할 겁니다. 자칫 누워 자다 떨어지면 큰일이니 몸을 밧줄로 꽁꽁 묶고 있다고 다른 조합원이 말했습니다. 밤이라 위에 있는 두 사람 얼굴도 잘 안 보였습니다. 마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저 불편한 곳에, 저 위험한 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각하니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애처롭기만 했습니다.
철탑 위는 농성장이 아니라 또다른 감옥이었습니다저는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집으로 와서 잠시 쉬다 야간 알바를 나갔습니다. 일용직 벌이만으론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라서 금요일, 토요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24시 마트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일을 합니다. 밤엔 별로 손님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청소도 하고 물품도 채워넣으라 했습니다. 시급 4000원. 최저시급에 못 미칩니다. 알아 보니 야간할증도 되어야 한다는데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4000원을 시간으로 곱해서 받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통하지 않는 곳이 대한민국엔 너무도 많습니다.
"20일 오후 2시부터 울산, 아산, 전주 3지회 결의대회가 있으니 전 조합원은 명촌문 철탑 앞으로 모여주세요."다음날 오전 8시 알바 마치고 퇴근해서 잠들려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저는 오후 1시로 알람을 맞춰놓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많이 피곤했지만 철탑 위에서 고생하는 두 노동자를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1시에 일어나 철탑 농성장으로 갔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3지회 결의대회도 했습니다. 철탑 위에 있는 두 노동자도 손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최병승씨는 힘차게 발언을 했는데 천의봉씨는 다리가 아파 일어날 수가 없다면서 앉아서 발언을 했습니다.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농성장이 아니라 철탑 위 감옥처럼 느껴졌습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집회는 오후 5시쯤 마무리되었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철탑 위에서 고생하는 두 노동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밤 11시 알바를 나가 밤을 새야 하기 때문에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오후 6시경 도착해서 눈을 붙이다 밤 10경 집을 나섰습니다. 야간 알바를 하고 21일 일요일 오전 8시 퇴근해 잠들었습니다.
"현대차 경비대가 다시 농성장 침탈 중. 모든 조합원은 명촌문 철탑 앞으로 집결 요망."잠결에 문자 오는 소리에 깨보니 그런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그때가 21일 오후 5시경이었습니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너무 무리를 했더니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22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일용직 일을 나갔다가 오후 퇴근하면서 철탑 농성장으로 갔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많이 모였습니다. 철탑농성일자 간판엔 '6일차'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일요일 현대차 경비대 침탈 사건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 상집간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제(21일, 일요일) 오후 5시경 비 소식이 있어서 비닐 깔개를 올려주려고 했었어요. 합판이라 비 맞으면 힘이 없어 부서질 우려가 있어 미리 방지하자는 차원이었어요. 올려 주려는데 경비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못 올리게 했어요. 저기 보세요. 천막도 다 부숴 버리고 행패를 부렸어요. 경찰도 올려 보내라고 한 물품을 현대차가 경비대를 시켜 막는다는 게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요."천둥, 번개도 쳤습니다. 비가 갈수록 많이 퍼부어 간략하게 집회를 끝냈습니다. 사회자가 밤 8시에 야간조랑 교대한다면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오후 7시경 집회는 끝났으나 저는 철탑 주변을 서성거리며 밤 8시까지 머물다 집에 왔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다음날 다시 일터로 출근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습니다. 비온 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질 터인데요. 철탑에 올라간 두 사람은 추운 비바람을 어찌 견딜까요?
비정규직 문제 외면하는 현대차노조, 후회할 겁니다
저는 2000년 7월 초에 현대차 울산공장 수동변속기부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차는 1998년 IMF를 겪으며 1만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그 자리에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투입시켰다지요. 당시 현대차 노조와 회사는 16.9% 선에서 사내하청업체로 노동자를 쓰자고 노사합의했다는 것입니다. 2년 후인 2000년 초부터 100여 개가 넘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교차로 같은 무료신문에도 모집광고를 낼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많이 모집했습니다.
저는 2000년 6월에 울산으로 내려와 7월 초에 하청업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 들어가 일하게 됐습니다. 주야간이 힘들었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생겼기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었습니다. 저는 정규직이 휴가를 내면 '땜빵'도 하면서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당시 최저시급인 2100원 받고 일했습니다.
어느 달엔 580시간이나 했습니다. 10여 년간 그렇게 열심히 일해 주었는데 2010년 3월 공장합리화 공사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그때는 대법원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권고사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0년 7월 22일에서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났고 저는 9월경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억울해서 그냥 물러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철탑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립'이었습니다. 철탑농성은 '고립이 만든 투쟁'이라고 제 나름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난 2010년에 대법원 1차 판결에서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 주식회사'라고 했고, '최병승은 이미 정규직'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는 항소한 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에서 같은 내용으로 최종판결이 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회사 측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도 최병승씨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임단협 자리에서 '최병승 조합원을 조합원으로 인정한다'는 안건이 있었음에도 회사 측은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 문제만 거론하고 끝내 버렸습니다. 그래서 최병승씨는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었습니다. 말로만 정규직 조합원이지 실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현대차노조는 송전탑에서 멀찍히 떨어진 곳에 천막을 하나 쳐두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머무는 곳 가까이에 천막을 치면 누가 뭐라나요? 왜 그렇게 멀찌감치 천막을 쳐두었을까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지난해 25일간 점거파업을 했음에도 불법파견 문제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정치인들이 내려와 해결해 주겠다 했으나 아직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습니다. 금속노조 위원장이 어느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는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현대차는 신규채용 3000명 안만 내던지고 불법파견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법파견 문제는 정규직만의 노조운동에서도 열외였고, 정치계에서도 외면받으며 점점 고립 상태가 됐습니다. 오죽 했으면 대법원 승소자인 최병승씨와 비정규직 노조 사무국장인 천의봉씨가 철탑 농성을 시작했을까요? 고립이 만든 농성이라고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말하니 "맞다, 일리있다"고 말하더군요.
누구는 정규직 노동자 더러 배부른 돼지라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 노조운동은 정규직 위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현 노조운동의 대승적 결단이 없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계속 많아질 겁니다. 그러다 나중엔 정규직 노동자마저 무너지고 말 겁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법원에서 최종판결로 "당신은 이미 정규직"이라는 법적 지위를 받았음에도 아직도 무늬만 정규직이고 실제로는 비정규직인 최병승씨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언제 내려 올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회사 측이 8년 동안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고요. 회사 측이 파견법과 대법원 판결에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태도를 보이면 언제든지 저는 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이 지금과 같이 어떠한 태도도 보이지 않고 완강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탄압한다면 저희는 여기서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최병승씨는 수배 중입니다. 내려오는 대로 경찰은 연행하고 구속시킬 것입니다. 천의봉씨는 수배 중은 아니지만 내려오는 대로 잡혀 갈 것입니다. "현대차는 법을 지켜라"는 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는 사라지고 두 노동자만 범법자가 되겠지요. 두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 전환을 확답 받기 전까진 내려올수 없다고 합니다. 고립은 또 다른 길과 방식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지혜를 지닌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