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8일 국가정보원 산하 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선임연구위원(박사)이 작성한 '2차 정상회담 시 NLL 등 평화정착방안 보고'를 토대로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열었다.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주재로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백종천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은 NLL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지난 14일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이 'NLL논란'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이미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준비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새누리당이 구성한 '민주당 정부의 영토포기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는 "정상회담 이전에 NLL 포기를 전제로 대책방안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도 했다.
새누리당이 정상회담 직전 열린 이날 회의에 주목한 것은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록' 공개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의 대화록이 공개된 경우도 없고, 이후 정상의 외교활동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는 회담 전에 노무현 정부가 어떤 준비를 했는가를 살펴보는 게 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청와대 회의의 결과 "NLL 무력화, 또는 양보 방안으로 서해 NLL 주변 평화 수역화, 공동어로구역이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의 근거로는 조성렬 박사가 작성한 '2차 정상회담 시 NLL 등 평화정착방안 보고'라는 문건을 거론했다.
그렇다면 조 박사가 작성한 문건에는 실제로 그런 내용이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인 지난 6월 조 박사가 쓴 <뉴한반도 비전>이라는 책에 그 내용이 담겨있다.
NLL무력화 방안 논의?... 거꾸로 "NLL 공식적인 경계선으로 만들자"는 보고서
조성렬 박사가 2007년 8월 18일 회의에 제출한 <서해 평화, 번영벨트>라는 문건에는 '서해 해상경계선 획정을 위한 3단계 로드맵'이 제시됐다. 새누리당이 주장한 것처럼 '평화수역화', '공동어로구역을' 추진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2단계에 해당한다. 조 박사는 이후 최종적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NLL문제도 언급됐다. 서해상에 경계선을 획정하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1단계에서 'NLL 불거론'을 말한다. NLL 자체를 언급하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까지 보면 새누리당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하지만, '(NLL) 묵시적 인정'이라는 토가 달렸고, 2단계와 3단계로 넘어가는 로드맵에서는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2단계에서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전체에 포괄적 군사보장조치를 취하고, NLL을 묵시적으로 인정', 3단계에 가서는 '한반도평화협정 체결 시 NLL을 남북 해상경계선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자는 게 조 박사의 결론이다. 결국 헌법에 반하는 '영토선' 주장이나 일방적으로 그은 경계선이라는 한계를 넘어 NLL을 공식적인 경계선으로 만들자는 말이다. 새누리당이 주장한 'NLL 무력화'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조 박사의 이러한 주장은 군사평론가 김종대씨가 지난 2010년 2월에 출간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종대씨는 '8월 18일 청와대 회의'에 대해 소개한 뒤 조 박사가 자신에게 "국제법적으로 본다면 NLL은 경계선이라고 보기에 석연치 않다, 논란의 소지도 있으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실적으로 NLL이 경계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국제정치적 관점"이라며 "현 경계선을 인정한다는 전제 위에서 평화적 관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김 평론가의 책에는 이날 회의 정황이 조금 더 자세히 서술됐다. 회의에는 앞서 언급된 인물들 말고도 서주석 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고유환 동국대 교수 등 민간 전문가들 등 관련 부처 관계자 포함 총 17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조 박사의 주장과 다른 발제를 한 것은 서 연구위원이다.
이재정 전 장관은 "남북간의 어떤 협상, 어떤 회담에서라도 NLL 경계선 재설정 문제는 일절 없다"고 못 박으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고 1992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도 이 문제를 계속 논의한다고 했다, 정상회담 문제와 관련 없이 우리 내부에서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관련한 전략과 국내 여론수렴을 분리해야 한다는 '투트랙'이다. 책에는 노 전 대통령도 이를 수용한 것으로 나온다.
"의제화 않는 게 지키는 것, 누구도 '양보' 말 없었다"정리해보면,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하거나 무력화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조성렬 박사의 발제에서는 NLL을 공식적인 해상경계선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 제시돼 있다. 이 전 장관도 내부적 여론수렴을 말하기는 했지만 "재설정은 없다"는 말로 NLL을 확고히 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회의 때 여러 사람들이 NLL과 관련한 의견을 밝혔지만, 정상회담에서 의제화 할 경우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직접 의제화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제화 하지 않는다는 것과 'NLL을 포기한다'는 완전히 다른 얘기"라며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니까 북측과 협상에 그것을 꺼내지 않는 게 NLL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그날 회의에서 누구도 NLL을 양보한다거나 정상회담 의제화에 찬성한다는 사람이 없었다"며 "노 전 대통령도 경제적 실익차원에서 회담을 풀고 군사적 신뢰구축이 된 다음에 NLL을 논의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