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부서진다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세월은 가고 오는 것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등대에....불이 보이지 않아도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는 하늘에 있고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박인환 '목마와 숙녀' 모두가을이 깊어간다. 산이 울긋불긋 불타고, 들이 울긋불긋 불타고, 물이 울긋불긋 불탄다. 하늘이 울긋불긋 불타고, 나도 울긋불긋 불탄다. 너도 울긋불긋 불타고 우리들 사랑도 울긋불긋 불탄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울긋불긋 불타는 가을을 맞아 산사나 계곡 혹은 공원 등지에서 열리는 문학예술행사도 울긋불긋 불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이 가을 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박인환 낙엽문학제'다.
인터넷문예뉴스 "문학in"(대표 이소리)이 24일(수) (사)한국작가회의 회보편집위원회와 인터넷종합일간지 프레스바이플, 서울문화투데이와 손을 잡고 펼치는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문학, 사색의 길을 걷다'가 그 행사다.
10월 27(토) 서울시 중랑구 망우리공원에서 열리는 이번 문학제는 27일(토) 오전 12시 박인환 추모행사를 시작으로 망우리공원 내 '사색의 길' 곳곳에서 문인과 예술인들이 일반시민과 함께 하는 '시낭송 및 시노래 콘서트' '낙엽백일장' '낙엽사생대회' '작가와의 산책'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 추진부위원장 박희호 시인은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문학, 사색의 길을 걷다'라는 행사는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말에 망우동 추모공원에서 열 예정"이라며 "이 행사를 통해 망우리에 있는 '사색의 길'을 문화의 길로 특화 발전시키고, 배움과 재미와 감성이 살아 숨 쉬는 시민들 휴식처로 만들어가는 시민축제로 나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둡게 느껴졌던 망우리공원 그 이미지 바꾸다'박인환 낙엽문학제'는 크게 여섯 마당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마당은 이날 낮 12시부터 12시 45분까지 시인 박인환 묘소에서 열리는 박인환 추모제다. 이 추모제에는 박희호 시인과 유시연 소설가가 제를 올린다. 이 자리에서 박설희 시인은 박인환 시 '목마와 숙녀'를, 정동용 시인은 시인 이소리가 쓴 추모시 '가을저녁에 쓰는 시'를 낭송한다.
둘째 마당은 낮 1시부터 1시 55분까지 망우리공원 관리사무소 앞 무대에서 열리는 개회 행사다. 고산돌 시인이 사회를 맡은 이 개회 행사는 이소리 시인이 나와 문학제 시작을 알린다. 인사말은 공광규(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시인과 김종철 프레스바이플 회장,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대표가 맡았다. 축사는 정소성 소설가. 시낭송에는 최소연 시인이 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을, 이산하 시인이 자작시 '단풍'을 낭송한다. 문학강좌에는 맹문재(안양대 교수) 시인이 '박인환과 김수영 그 차이'에 대한 강연을 한다.
셋째 마당은 낮 2시부터 행사가 마무리되는 낮 4시 30분까지 망우리공원 관리사무소 앞 무대에서 열리는 시 노래공연이다. 한국실용음악협회가 돕고 있는 이번 노래공연에는 초대가수 최병선이 나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을 부른다.
넷째 마당은 낮 2시부터 낮 4시 30분까지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낙엽백일장이다. 백일장 심사는 시인 박희호, 이소리, 이산하, 소설가 유시연. 응모용지는 현장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다섯째 마당은 백일장과 같은 시간에 열리는 낙엽사생대회다. 사생대회 심사는 화가 김성혜, 영희, 홍형표. 응모용지는 현장에서 무료로 나눠주며, 그림도구는 개인이 가지고 와야 한다.
여섯째 마당은 낮 4시 30분부터 5시30분까지 1시간 동안 망우리공원 안에 있는 '사색의 길'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산책이다. 시인 정동용과 시인 박재웅이 이끄는 이 행사는 박인환 묘소에서 첫 발걸음을 뗀 뒤 화가 이중섭, 만해 한용운, 아동문학가 방정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종두법을 펼친 지석영 선생 묘소를 거쳐 사가정공원에서 마무리 짓는다.
이번 문학제를 기획한 고산돌 시인은 "'박인환 낙엽문학제'를 통해 독립운동가, 문인, 화가 등 망우리공원에 흐르는 역사와 감성적 특성을 살린 상상력과 이야기를 정제해 문화체험과 감성 충전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그동안 어둡게 느껴졌던 망우리공원의 이미지를 시민과 문인, 예술인 등 참여 주체가 신나게 상상력을 펼치는 휴식처로 탈바꿈하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색의 길' 걸으며 가을에 포옥 빠져보자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그래.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늘 글쓴이 마음에 못 견디게 아픈 사랑을 닮은 낙엽을 투둑투둑 떨구며 다가오는 시가 있다. 시인 박인환이 쓴 '세월이 가면'이 그 시다. 이 시는 노래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 그 지독한 사랑, 그 아픈 사랑은 지금 투둑투둑 떨어지는 나뭇잎따라 흙이 되고 그 흙이 된 나뭇잎에 덮여서 영원한 그리움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래. 박인환 낙엽문학제가 열리는 27일에도 그 망우리공원에 그 여자 쌍꺼풀진 까만 눈동자가 낙엽배를 타고 이리저리 헤매며 그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하는 그 이름... "그 눈동자 입술"이 내 가슴 깊숙이 박혀 갈바람이 불 때마다 '보고파~ 보고파~' 가슴을 찡하게 울리고 있을까. 저만치 눈물빛 가을하늘에도 그 눈동자 입술이 날 자꾸 부른다. 그래. 이번 주말에는 '박인환 낙엽문학제'에 가서 '사색의 길'을 걸으며 가을에 깊이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