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속된 말로 가장 '섹시한' 대선 후보인 안철수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아마도 그가 대선출마를 결심한 이후 가장 전방위적이고 공세적인 비난에 직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23일 인하대에서 진행된 초청강연에서 국회의원수와 정당보조금을 축소하고 중앙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가 여·야 정치인은 물론 학계의 집중 난타를 당하고 있다. 마치 순식간에 반(反)안철수 단일화가 이루어진 모양새다.
이런 비난의 핵심 이유는 '현실정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일본의 국회의원 1명당 국민 수를 비교한 셈법도 잘못되었고, 정당보조금을 축소하면 재벌의 입김만 더 세질 것이라는 비판이다. 게다가 중앙당을 없애면, 대통령에 당선된들 누구와 협의할 것이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타당한 반론이다. 이미 많은 정치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실제 의원 1명 당 국민수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숫자가 결코 많은 것은 아닐 뿐더러, 전문가들 사이에는 오히려 국회의원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했다. 정당보조금이 줄면, 오히려 재벌의 은밀한 마수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보조금을 주고 투명하게 감시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안철수의 정치개혁안이 현실을 너무 모르는 철부지 같은 소리일지는 몰라도, 지금 정치권이 쏟아내는 반응에 마냥 수긍하기에는 뭔가 불편하다.
국회의원 줄이기, 왜 나왔을까 안철수 후보가 그동안 내놓은 정책이나 주요 의제에 대한 언급을 보노라면, 뭔가 뛰어난 안목이나 기발한 착상, 혹은 특출한 통찰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위 '안철수 바람'은 그의 뛰어난 통찰과 대안마련 능력에서 나온 건 아니다. 그의 발언은 전혀 놀랍거나 기발하지도, 심지어 문제의 핵심을 잘 짚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정확하게 국민의 상식 수준에 근거하고 있었다.
어떤 국민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어떤 국민이라도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국민 위에 붕 뜬 채로 존재해온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 된 안철수의 강점이었다. 그동안 그의 발언은 썩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어도 일반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에 존재했다.
이번 정치개혁안 역시 수많은 정치전문가들이 쏟아내는 것처럼 여러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민이 현실 정치세력에게 느끼고 있는 불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회의원 숫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 국회가 국민 속에 두 발 튼튼히 딛고 있기보다는 붕 떠 있는 존재라는 것은 쉽사리 부정하기 어렵다. 많은 부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각 정당의 계파 보스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과연 개별적인 표결권을 줄 필요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매번 중요한 의제를 둘러싼 여야간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토론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자주 목격된다.
게다가 선거 때가 다가오면 본회의 참석은 뒷일이고 지역으로 내려가 지역구 관리에만 공을 들이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오히려 일반적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가 이리 저리 바뀌는 일도 벌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국회가 선거 때 표출된 국민의 의사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구성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단순다수투표제를 혼합하는 혼합형을 채택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적은 비례대표 의석수로 인해 단순다수제의 특성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는 항상 소수정당이 얻은 표를 기성 정당이 가로채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정당정치가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갈등과 불만 요구를 정당으로 집약시켜 표출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소수정당의 등장을 가로막는 여러 유무형의 제약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저발전을 만들어 내는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기성 정당들만의 갈등으로, 그것도 단 한 석이라도 많은 정당이 토론과 협상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는 구조에서 300명이 아니라 200명이면, 아니 심지어 국회의원이 100명인들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회의원 1명당 국민수가 몇 명이든,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쓸 데 없는 숫자 놀음일 뿐이다.
의원 축소로 나타나는 전문성의 취약성 역시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300명과 그에 따르는 수천 명의 보좌인력을 생각하면, 그 수의 절반만 전문연구위원을 더 채용해도 더 좋은 전문적 결과를 생산할 수 있다. 물론 국회의 역할은 단지 전문적인 내용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주요 의제에 대해 사회적 균열을 반영한 결단에 강조점이 있다. 그러나 국민 위에 국회가 붕 떠 있는 상황에서 그 결단이 누구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문재인 발언 반갑다, 그러나 부족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이 국회의원이나 보조금을 없애거나 줄이자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자동차 엔진에 문제가 있다고 엔진을 끄고 밀면서 다니자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정치개혁안은 이제까지 안철수 후보 대부분의 발언이 그러했듯, 국민의 인식을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는 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책비판을 업으로 삼는 정치전문가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 정치인들은 비난에 앞서 자기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 쏟아지는 비난의 낱말 속에서 자신들이 일구어 온 정치현실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안철수 후보에게는 '지도자가 되기에는 현실감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할 수는 있겠지만, 안철수 후보처럼 생각하는 수많은 국민들에게는 해답을 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대안 제시가 없지는 않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지난 22일 오전 민주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새로운 정치 위원회' 1차 회의에서 "정치권 기득권의 핵심이 고질적 지역주의 구조"라고 진단하면서 이의 해소를 위해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해서 지역구 의석을 대폭 줄이는 등 지역주의의 기득권을 깨야한다. 적어도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의석배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사회적 균열과 갈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 선거체제를, 국민의사를 보다 비례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확하고 반가운 발언이다. 그렇지만 이런 제안에 대해 "아쉬운 것은 민주당이 4·11 총선 때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며 "기득권을 줄이겠다, 진짜 개혁한다는 약속은 4·11 총선 때 했어야 한다, 때를 놓친 뒤 수세에 몰려서 하는 모양이 돼 버렸다"고 평가한 조국 교수의 주장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이런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원탁회의 등 주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2012년 3월 10일 '4.11 총선, 국민 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을 채택했는데, 이 중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제도 및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항목에서 "우리는 19대 국회에서 국민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치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을 포함한 선거제도의 혁신을 추진 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제19대 국회, 공동정책 핵심의제' 분야에 들어가는 대신, '향후 추진 방안'에만 포함되었다. 이것은 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 하에서 소수정당의 표를 잠식하는 수혜정당 중 하나인 민주통합당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수 있는 제도개선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의심을 가능케 한다.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식 정치개혁안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의석배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공약으로 제시하고 관철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회의원, 제어할 방법 고민해야 조국 교수는 문재인 후보의 정치쇄신 방안이 "정치권 밖에서 요구했던 것들을 거의 다 수용한 것 같다"고 평가했지만, 거기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로써, 선거가 끝나면 국민 위에 붕 뜬 존재가 되어버리는 국회의원을 지속적인 국민통제 아래 두기 위해 국회의원도 지방의원처럼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2008년 촛불시위에서부터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우리 1987년 헌법은 제46조 제2항에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여 선거구민을 대표하지 않고 국가전체를 대표한다는 자유위임원칙에 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의원을 선출한 선거구민이 의원을 소환할 수 있게 하는 국민소환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회의 특권을 포기하겠다면,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이처럼 선출한 국민으로부터 자유로운 국회의원을 활동을 다시 유권자에게 종속시킬 필요가 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투입하는 것은 안철수 후보의 주장처럼 국민참여경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선 후의 의원 활동을 국민의 통제 아래에 두는 형태여야 맞지 않을까?
또한, 대통령 탄핵 권한이 국민에겐 없고 국회에만 있기 때문에 국민이 아무리 반대해도 국회가 보란 듯이 대통령 탄핵을 성사시킨 것이 불과 지난 정권 때 일이다. 게다가 한미FTA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등 국가차원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국민이 개입할 제도적 수단은 거의 전무하다. 국민투표는 오직 대통령만이 제안할 수 있지만, 그 조차도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런 내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문제나 통치형태에 대한 개헌 논의가 줄기차게 나오고 있는 반면, 국민의 주권을 보장하는 개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정치권의 관심이 국민의 관심과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 좋은 정치상품을 고르고 싶다 정치개혁과 정치쇄신을 단지 문제 있는 권력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줄이는 것 정도로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가 국민 속에 뿌리 박혀 있지 못한 정치체계에 있다면, 정치를 국민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는 방안을 모색할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에 국민의 의사가 최대한 왜곡되지 않게 반영되어야 하며, 선출된 정치권력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통제 아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방향의 정치개혁 논의는 불붙지 않은 채, 핵심을 비껴선 채 변죽만 울리는 모양새다.
누군가가 의제를 던지면 비난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얻어지는 반사이익에 목을 매는 정치를 너무 오랫동안 보아왔다. 덜 나쁜 상품을 골라야 하는 소비자의 심정만큼 씁쓸한 일은 없다. 이번 대선 역시 미래에 대한 비전이 각축하기보다 정치공학이나 후보의 주변잡기에나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아직은, 더 좋은 정치상품을 골라볼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