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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시민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곤 했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해서 명예훼손죄, 모욕죄, 허위사실유포죄 같은 법률에도 익숙해졌다. 그것은 자연스런 학습의 결과물이라 부를 만하다. 현 정권이 '표현의 자유'에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사건을 필두로 G20 포스터 쥐그림, 천안함 문자메시지, 장자연 리스트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지적되는 사례들이 이어졌다.

우리 표현의 자유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도 우려는 상당하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을 '인터넷 감시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검·경찰의 수사나,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기관에 의한 삭제가 빈번하다는 이유다. 2011년,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도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격하했다. 온라인상에서 친북적이거나 반정부적인 표현이 삭제되고 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되었다. 또 정부가 뉴스전달에 영향력을 미치고, 공영 언론사 요직에 측근들을 앉혔다는 비판도 덧붙여졌다.

물론 표현의 자유가 만능은 아니다. 우리 사회를 향한 이른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존재한다면, 그 표현은 법률에 의해서 제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론의 장에 의견을 개진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시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권리를 행사하면서 거리낌이 뒤따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게시물을 작성하거나, SNS를 활용할 때조차도 시민들은 머뭇거리기 일쑤다.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 억압받고 있는가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책표지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책표지 ⓒ 스토리플래너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구영식·김준현·류제성·박주민·이재정·한명옥·황희석 지음, 스토리플래너 펴냄)는 MB정권 아래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 그 최전선에 섰던 사람들의 증언을 담았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가 지난 5년 동안, 표현의 자유 관련 사건에서 변호인으로 활약했던 민변 변호사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우리시대 표현의 자유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새롭게 법을 만들어 탄압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있는 법률의 적용폭을 확대했다. 공안적 통치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가 보안법 적용이 많아졌다. 국보법과 무관하게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법 적용도 많았다. - 본문, 36~37쪽(김준현 변호사)

현 정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에는 이견이 없다.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평가다. 특히 법률의 자의적인 적용이 많아졌음을 지적한다.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 검찰은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으로 기소를 결정했다. 책은 해당 법률이 말 그대로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법이 아니라는 비판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2010년 12월에 검찰이 적용했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에 대해서 위헌판결을 내렸다.

책은 무리한 법률 적용의 대표사례로 선거법도 꼽는다. 민주주의는 투표를 골자로 하는 정치체제다. 때문에 시민들은 다양한 선거운동을 통해서 유권자로서의 의사를 표출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MB정권이 선관위나 검찰을 내세워 공안적인 대처를 일삼아, 이를 막았다고 지적한다. 그 사례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무상급식연대의 활동에 대한 선관위의 고발과 검찰의 기소가 제시된다. '선거쟁점'이라는 불명확한 이유로, 현재의 시대정신이기도 한 '복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를 막느냐는 반문이다.

죄형법정주의 기본 중의 기본은 명확성의 원칙이다. 법이 아주 명확해서 내가 뭘 하면 처벌되는지 처벌되지 않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 본문, 96쪽(류제성 변호사)

비방은 뭐냐? 비판은 허용되고 비방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게 딱 갈라지는 개념이 아니다. 뭔가 조금 기분 나쁜 표현이 들어가면 비방이 될 수 있는 거다.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패러디 등이 다 비방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데 세계적으로는 명예훼손을 비범죄하는 추세에 있다. - 본문, 105쪽(류제성 변호사)

변호사들은 명예훼손죄, 허위사실유포죄 등의 법률이 지닌 불명확성에도 입을 모은다. 정권에 따라서, 법 집행의 차이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로 꼽았다. 해석의 여지가 넓어, 검찰의 무분별한 기소로 이어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2010년,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권고한 명예훼손죄 폐지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자기검열의 시대, 그 폐해들

미네르바 사건은 무죄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관련된 전기통신법조차 위헌판결이 났다. 그렇지만 검찰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 결국 승자는 검찰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당시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경제정책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고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했다. 그런데 미네르바를 전격 구속함으로써 그 뒤에는 엄청 위축됐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 본문, 171쪽(박주민 변호사)

책은 정권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지적한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으면서, 우리사회의 자기검열이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상식의 눈에서라면 별 것 아니라 여겨지는 사건에까지, 민·형사상의 책임이 물어지는 상황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후퇴도 우려했다. 집회나 시위가 공권력에 의해서 통제되고, 공영언론사 사장으로 대통령의 측근이 임명되는 등 법치주의와 언론자유의 근간이 무너졌다는 인식이다. 또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과제가 외면 받는 현실도 아쉬워했다. 복지나 경제민주화 같은 먹고사는 문제의 고민도 중요하지만, 사회개선이 가능한 시스템 자체가 갖춰질 필요성을 역설한다. 여기서 표현의 자유가 필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 자체를 개탄하면서도 내가 토론회에서 발언하는데 스스로도 '조선일보'라고 얘기를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내재화된 억압기제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기자들의 경우에도 보수 언론지나 재벌, 위정자들에 의해서 남용되어 제기된 고소고발, 명예훼손, 손해배상 등 소송의 경험이 많다. - 본문, 194쪽(이재정 변호사)

결국 법정 소송을 감당할 수 없으면 그냥 입닥치고 살아라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그렇다. 아니면 정보도 없이 혼자서 낑낑대며 불리한 소송을 감당해야 하거나. - 본문, 215쪽(구영식 기자 / 이재정 변호사)

개인뿐만 아니라, 언론도 자기검열에 빠져들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책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서, 대다수 언론이 실명보도를 피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소송의 위협, 언론간의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감시견을 담당해야할 언론조차, 전체적인 표현의 자유 억압 속에서 보수적인 판단이 증가했다고 우려한다. 이재정 변호사는 심지어 민변 변호사인 자신조차 내재화된 억압과 자기검열을 느낀다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 때문에 권력자가 도덕적, 사회적 비판마저 피해갈지 모른다는 우려다. 공론화의 역할을 맡은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들이 권력에 대한 비판 그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늘 비판받아야 하고 검증받아야 하는 대상이 소송을 앞세우면서 '힘의 불균형'이 더 분명해졌다고 개탄한다.

2012년, 우리를 밥 먹여줄 표현의 자유를 고민할 때

내가 선거법 위반 건으로 몇 사람을 변론했다. 그 중 한 분은 평범한 대학생으로 대학에 다니면서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졸업 이후에 평범한 학원강사였다. (…) 정말 처음으로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거다. 그런데 그게 단속되고 나서 법정에서도 이렇게 말하더라. (…)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 후보자를 비판하는 글을 몇 번 올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재판을 받고 있다. 앞으로는 절대 정치에 관심도 안 갖고 뉴스도 안 볼 것이다. - 본문, 292쪽(한명옥 변호사)

책은 표현의 자유가 악화되면서, 시민들은 '말하는 일'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이는 시민들이 정치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MB정권이 원하는 바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정치를 해도 '두려워하며 조용히 할 사회'를 만드는 일과 다름없다.

"표현의 자유가 밥 먹여 줍니다."

석 달간, 5명의 변호사를 인터뷰한 구영식 기자의 말이다. 밥의 문제가 악화될수록,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권력이 제어한다면, 즉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었을 때 밥의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담겨있는 변호사들의 증언마다, 표현의 자유가 훼손된 우리 사회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지난 5년 동안의 '역사적 퇴행'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서 시민의 기본권조차 제한받을 수 있음을 각인시켰다. 앞서 말한 것처럼, 표현의 자유는 우리에게 밥을 먹여준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시민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얼마만큼 보장해줄 수 있느냐고.

덧붙이는 글 |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구영식·김준현·류제성·박주민·이재정·한명옥·황희석 지음, 스토리플래너 펴냄, 2012년 10월, 14000원.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 MB공화국 5년,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구영식 외 지음, 스토리플래너(2012)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민변 변호사#표현의 자유#MB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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