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모두 마음의 빚을 잔뜩 떠 안았다.
27일, 비오는 주말 오후답게 두 대통령 후보가 찾은 곳은 홍대 앞 카페와 강남 영화관이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마포구 서교동 카페 꼼마에서 '문재인 담쟁이 펀드' 투자자 100여 명을 만났고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영화의 날'을 맞아 강남구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영화인 50여 명과 마주했다.
분위기는 사뭇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문재인 후보에게 3일 만에 200억 원을 모아준 '빚쟁이'들은 재벌과 대기업에 손 빌리지 않는 깨끗한 정치를 주문했고, 평소 '영화광'인 안철수 후보를 즐겁게 했던 영화인들은 대기업 수직계열화에 맞서 영화산업의 미래를 만지켜달라고 호소했다.
'투자자' 만난 문재인 "마음의 빚까지 갚겠다"문재인 펀드 투자자들이 모인 홍대 앞 카페 분위기는 줄곧 화기애애했다. 지난 22일 모집을 시작한 문재인 펀드는 56시간 만에 3만4799명이 참여해 목표치인 200억 원을 달성했다. 한때 접속이 폭주해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고 선거 펀드 사상 '최단시간 최고금액'이란 기록도 달성했다.
"대선을 56일 남겨두고 56시간 만에 펀드가 다 완료됐으니 이번 선거에서도 56% 득표율이 나올 것"이라며 당선을 자신한 문재인 후보는 "내가 빚진 건 돈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 경제민주화, 복지 국가 등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염원"이라면서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빚까지 완벽히 갚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문 후보는 참여정부 당시 일부 기업에게 받은 정치자금 때문에 대선자금 수사를 받았던 일을 떠올리며 "과거에는 재벌이나 대기업에게 비공식적인 자금을 받기도 했고 재벌 개혁을 힘차게 추진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면서 "대선자금 수사로 아픔도 겪었지만 우리 선거 문화가 깨끗해져 과거 낡은 관행에서 자유롭고 재벌 대기업에 빚지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펀드에 투자한 지지자들의 격려도 이어졌다. 친구들과 함께 부은 곗돈 1000만 원을 투자한 손영주씨는 "지난해 박원순 펀드에도 투자해 이자까지 잘 받았다"면서 "펀드 투자는 투자이기보다 (지지자) 마음을 담았기 때문에 앞으로 국정 운영에 짐처럼 여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군대 간 아들을 위해 수년간 부었던 주택청약통장을 해지한 김영준씨는 "아들에게 좋은 집을 사주는 것보다 좋은 사회를 물려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밝혔고, 한 중년 여성은 "7~8년 부은 가족 보험을 원금 손실까지 봐가며 모두 해약하고 펀드에 투자했다"면서 "문재인 후보가 곧 우리 가족 보험"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문 후보는 "선거 때부터 깨끗해야지 구린 돈을 받으면 새 정치를 할 수 없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희망돼지 저금통을 청와대 직무실에 두고 보며 마음을 다졌듯 오늘 받은 사연들을 직무실에 모셔놓고 늘 초심을 찾는 각성제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문 후보는 이야기를 나눈 뒤 '깨끗한 정치'를 약속하는 의미로 투자자들과 일일이 포옹했다.
한편 문 후보는 최근 국회의원 의석을 현재 300석에서 200석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난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내 방안이 더 나아 보인다"면서 "지역구 한 석 줄이기도 너무 어려워 지금까지 역대 정부에서도 못해 왔던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화인 만난 안철수 "나도 불법 다운로드는 지긋지긋"어두컴컴한 영화 상영관인 탓일까? 안철수 후보와 영화인들의 만남은 '영화광'인 안 후보의 취향을 확인하는 가벼운 분위기로 출발했지만 저예산 독립 영화 소외, 열악한 스태프 처우,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 등이 거론되면서 점점 진지해졌다.
안 후보는 지금까지 본 80여 편의 한국 영화 제목을 일일이 열거하며 자신의 영화 편력을 과시했다. 특히 1천여 장의 영화 DVD와 블루레이를 소장하고 영화 제작 과정이 담긴 부가영상까지 꼼꼼히 챙긴다면서 영화 산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가 영화 불법 다운로드 경험을 묻자 "소프트웨어 사업을 17년 전부터 했는데 불법 다운로드는 지긋지긋하다"고 펄쩍 뛰며 '동병상련'을 강조했다.
안 후보가 주로 상업 영화를 거론하자 한진중공업 고공투쟁 당시 희망버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깔깔깔 희망버스>를 만든 이수정 감독은 "지난 9월 27일에 영화를 개봉했지만 관객이 많이 안 들어 결국 내렸다"면서 "작은 영화는 정부 지원 없이 극장에서 살아남지 못 한다"며 저예산, 독립 영화에 대한 지원을 당부했다.
이에 안 후보는 "소프트웨어 하던 사람이라 콘텐츠 문화산업 문제가 와닿고 유사점도 많다"면서 "생태계가 살아 남으려면 거대한 나무뿐 아니라 작은 새싹, 화초도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규모에 상관없이 자기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안 후보는 "지난 정부는 문화 산업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를 성과 위주, 경제적 잣대로 평가했는데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업다"면서 "영화산업을 경제적 잣대로만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영화인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도 안 후보는 "생활인이면서 자신의 뜻을 펴면서 일하는 사람"이라면서 "갈수록 공권력보다 자본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며 자본과 표현의 자유 충돌 문제를 거론했다.
영화인들은 CJ, 롯데 등 대기업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돼 있는 영화 산업에 대한 개선도 당부했다. 이에 안 후보는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 문제를 거론하며 대형마트와 동네상권 충돌 문제와 더불어 음악 콘텐츠 제작자와 공급 망 사이의 불공정한 이익 배분 문제, 영화 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를 지적했다.
아울러 안 후보는 "정부 차원에서 제도와 공정경쟁 감시 역할을 하고 구조 개선을 위해 인센티브로 선도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제 역할을 못했다"면서 "중국이 추격하는데 대기업, 제조업, 정부 주도로 하는 것 한계에 부딪혔고 중소기업, 지식기반산업, 민간 자율로 바꾸는 데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제작자인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는 "영화인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자존감과 품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감명 깊었다"면서 "그 기조를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조광수 대표는 "임기 초에 대통령이 보러온 영화는 흥행하지만 후반부엔 보러오면 안 된다고 걱정한다"면서 "후반부에도 서로 모셔가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뼈있는 말로 행사를 마쳤다. 안 후보는 '영화광'으로서 영화인과 영화산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영화인들이 안고 있는 불안한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의 짐도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