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장을 볼 때, 길을 걷다 바비큐 통닭집을 발견할 때, 지하철을 타고 인천지하철 동춘역을 지나갈 때, 가끔 TV에 '그들'이 나올 때, 나는 지난해 여름을 떠올린다.
2011년 7월 1일에서 6일, 총 5일 동안 나는 아르바이트(알바)를 했다. 힘겨운 배낭여행도 지나고 나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그러나 5일 동안 내가 느꼈던 것들은 그저 추억, 혹은 경험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르바이트의 목적은 돈이다. 그리고 그 돈의 목적은 대개 정해지지 않기 마련. 지난해 여름, 한 동네에 살고 있는 나와 친구들은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교를 다녔다. 여름방학을 맞아 동네로 돌아온 우리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대학교 2학년, 높은 등록금, 높은 물가. 우리는 이 돈을 벌어 뭘 하겠다는 계획 없이 방학마다 아르바이트 강박증에 시달렸다.
한 친구가 공장 알바를 추천했다. 우리에게 공장 알바는 매력적이었다. 공장은 별다른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비교적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물론 야근을 했을 때 말이다), 단체 입사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기술 없이, 혹은 '감정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졌다.
방학을 하기 전에 많은 대학생들이 미리 아르바이트를 구해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발 늦었다. 혼자라도 좋으니, 괜찮은 알바를 구해보겠다고 '알바천국'과 '알바몬'을 뒤졌지만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급했다. 그래서 함께 용역업체를 찾아갔다. 용역업체는 이곳저곳에 널려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용역업체는 우리에게 간단한 이력서를 요구했다. 어떤 용역업체는 몸무게와 키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그에 비하면 정말 간단한 이력서였다. 적당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급한 일이기에 당장 투입돼야 한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우리 여섯 명 모두 한 곳에 갈 수 있었다.
쉴새없이 다가오는 닭가슴살우리는 SUV 차량을 탔다. 우리 여섯 명, 운전자, 그리고 다른 아줌마 세 분까지 총 열 명이 꽉꽉 끼어 앉았다. 그렇게 해서 처음 도착한 곳은 보건소. 운전을 했던 용역업체 직원아저씨는 우리에게 위생검사를 받고 오라고 했다. 검사를 마치고 우리는 공장으로 향했다.
인천광역시 동춘동에 있는 공장은 유명 닭고기 업체에 납품을 하는 곳이었다. 아주 작은 공장도 아주 큰 공장도 아니었다. 밖에서 볼 때 그리 쾌적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래되고 낡아보였다.
공장 아저씨는 우리가 간단한 포장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하로 내려가니 교실만한 공간이 있었고, 우리는 창문 너머로 아줌마들이 가공된 닭고기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한 냄새가 났다. 아저씨는 지하는 이런 냄새가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오래 지나지 않아알 수 있었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우리에게는 작업복이 지급됐다. 자루에 아무렇게나 담긴 헌 옷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5일간 우리는 그 옷을 입고, 가공된 닭을 포장하는 일을 했다.
우리는 원래 입고 있던 옷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윗도리는 빨간색의 긴소매 티셔츠였다. 납품하는 제품 중 하나의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옷이었다. 바지는 통이 큰 미색 바지였다. 손에는 삼중으로 장갑을 꼈다. 맨 먼저 목장갑, 그 위에 딱 달라붙는 장갑, 그리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꼈다. 팔에는 팔토시, 머리엔 모자, 입에는 마스크, 발에는 고무장화를 신었다. 마지막은 커다란 앞치마로 장식했다.
그 공장에서 납품하는 제품은 주로 연예인들이 내놓은 다이어트용 닭 가슴살이었다. 물론 커다란 훈제 닭도 있었다. 사람 세 명 정도 들어갈 거대한 씽크대에 닭가슴살이 가득 담겨 왔다. 어떤 아줌마는 저울에 무게를 달았고, 어떤 아줌마는 뼈를 발라냈다. 우리는 봉지에 닭을 담았다. 담겨진 닭은 진공포장을 했다.
우리는 허리를 펴지 못했다. 씽크대의 닭이 다 사라져갈 즈음에 겨우 허리를 폈지만, 찌꺼기가 쌓인 테이블과 바닥을 정리하는 2~3분의 찰나에 다시 또 다른 씽크대가 우리에게 왔다. 그렇게 두 시간을 쉼 없이 일하고 10분을 쉬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반장아줌마의 말이 들리면 사람들은 고무장갑과 앞치마에 묻은 닭 찌꺼기를 대충 씻어내고 어디론가 향했다.
화장실이요? 그거 사치입니다우리는 아줌마들을 따라갔다. 포장 하는 방을 나서면 그 옆에는 닭을 훈제하고, 소시지를 만드는 장소가 있었다. 그 너머의 자재가 쌓인 창고를 지나치면 공장 한쪽 구석에 어두컴컴한 골목 같은 곳이 있었다. 거긴 낡은 나무로 된 일자형의 의자가 놓여있었고, 모두들 그곳에 일렬로 앉아 숨을 골랐다.
쉬는 시간은 짧았고 화장실에 가는 것은 사치였다. 화장실을 가려면 앞치마와 장갑을 벗어 걸어두고,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장화도 벗어야 했다. 일을 하고나면 허리와 다리가 말도 못하게 아팠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앉을 틈도 없이 다시 일을 해야 했다. 화장실은 우리에게 기피 대상이 됐다.
일이 끝나면 물이 묻어 축축한 장갑과 윗옷을 벗어 야외의 직원용 휴게실인 컨테이너 박스에 넣어뒀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아직도 축축하고 닭냄새가 나는 그 옷을 다시 입었다. 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 우리는 향수를 잔뜩 뿌렸다. 그래도 닭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하루를 일하고 친구 한 명은 못 버티겠다며 일을 그만뒀다. 용역업체는 5일 이상 일하지 않으면 한 푼도 못준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보같이 고분고분하게 5일을 더 일했다.
퇴근 시간은 오후 5시 30분. 그런데 우리만 퇴근하는 시간이었다. 아줌마들은 모두 야근을 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일하면 다리와 허리가 '걸레'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도 야근이라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5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렀다. 5일이 끝나고 관리자에게 그만둔다고 말하고 나오며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
우리가 도망간 그 자리, 누군가가 채웠겠죠지난 여름,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게,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5일만 일하고 그만둘 수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우린 5일간 악몽을 꿨고, 악몽에서 도망칠 수 있었고, 그냥 악몽이었다고 치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일은 생계였고 현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못한 환경에서 그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믿고 싶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은 누군가 필요로 하기에 만들어진다. 그래서 모든 일은 다 소중하다. 다만 그 일을 둘러싼 환경과 대우가 어떠한가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진다. 일에 귀천이 없으려면, 일을 하면서 힘든 만큼 더 좋은 대우와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는 관두고, 또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채우고, 또 누군가는 꾹 참았을 것이다. 일할 때 입는 옷, 쉬는 시간, 화장실, 쉴 공간은 그대로일 것이고, 지금 그 공장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이 너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