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어떤 그림을 걸까. 그림 애호가라면 한두 번쯤 고민해본 문제일 것이다. 그런 애호가들을 위한 강연회가 지난 6일 오후 5시 대구두류문화예술회관 1층에서 열렸다. 강사는 계명대 서양화과 이유경 교수.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야 할까요?"이 교수는 "나 혼자서만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싼 그림? 고가의 그림은 '검증된 그림'일 수도 있으므로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잠이 오겠습니까? 언제 도둑이 들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날마다 불안하지 않을까요?"
이 교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예로 들었다. 가로 세로가 각각 96.5cm인 <행복한 눈물>은 2002년 11월 13일 우리나라 돈으로 약 87억 원에 팔렸다. 별로 크지도 않은 그림이지만 그런 고액이다. 과연 그렇게 고가의 그림을 '검증된 그림'이라는 이유로 집에 걸어둘 수 있을까?
루시앙 프로이드의 <누드>도 마찬가지. 경매 가격이 400억 원을 호가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도 350억 원. 보통 사람에게는 애당초 그럴 돈도 없으니 '그림의 떡'에 불과한 그같은 고민이야 할 일도 없지만, 어쨌든 '비싼 그림'을 꼭 우리집에 걸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작품도 그에 어울리는 장소가 있습니다. 아무리 걸작도 제 자리가 아니면 걸 수 없습니다."이 교수는 루벤스의 십자가에 예수가 걸려 있는 그림은 뛰어난 명화지만, 그래도 집에 걸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사진보다 더 정밀한 놀라운 묘사력을 보여주는 로레타의 그림도 거실에 걸어놓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사례로 든다. 교육적으로 합당하지 못한 까닭이다.
"수준 미달 작품도 곤란하겠죠. '이발소 그림' 등등."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무수히 볼 수 있었던 세칭 '이발소 그림'도 거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들이다. 대체로 복제화 수준인 그런 그림들은 '볼수록 지겹기 때문'에 집에 걸 그림은 못 된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밥 로스의 그림도 마찬가지. 이 화가는 30분 만에 작품 한 점을 완성한다고 한다. 이 교수는 그런 그림을 대중이 좋아할 수도 있지만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있어야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발소 그림'에는 그런 요소가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집에 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 중 어느 쪽을 좋아하십니까?"프랑스식 정원은 사람의 손으로 깔끔하게 가다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런가 하면 영국식 정원은 식물들이 자유롭게 자라도록 가만 두어서 완성한다. 당신은 어느 정원을 좋아하십니까? 답이 같을 수는 없다. 기호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그림에 대한 개인적 기호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누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가는 순전히 개인 차원의 몫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커피잔 세트를 고를 때 꼭 장미 그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그림도 반드시 사실적이고 예뻐야만 가작인 것은 아니다.
"지나친 설명은 감상자를 구속하는 족쇄입니다."이 교수는 제인 폰다가 출연한 최초의 공상 과학영화 <바바렐라>를 예로 든다. 세기의 미녀인 그녀는 이 영화에 전라로 출연하다. 그런데 투명 플라스틱이 앞을 가려 관객은 언제나 상상의 세계를 맴돌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덴마크의 오리털 이불광고에는 미녀가 발가벗은 채 누워 있다. 하지만 이 광고가 <바바렐라>를 이길 수는 없다. <바바렐라>는 보는 이의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여 자유롭게, 그리고 분방하게 상상하도록 여유를 준다. 그래서 지겹지 않다. 오리털 이불 광고는 몇 번 안 보고도 지겹다. 지겨운 그림을 어찌 집에 날마다 걸어놓을 수 있나?
이 교수가 이윽고 결론을 내린다.
"오래 오래 두고볼 수 있는 작품, 그리고 "방문객이 보고 '좋은 그림 걸렸다'고 말할 만한 작품이 좋습니다."재미있고 명료한 이 교수의 강연이 끝나자 모두들 뜨겁게 박수를 쳤다.
작품 원작을 선물로 주는 응모권 이벤트, 흥미진진강연회 직후, '대구 아트 페스티벌 2012' 관람객들이 두고간 응모권 추첨 행사가 열렸다. 페스티벌 행사 기간 동안 전시회를 관람한 일반인들 중에서 여섯 사람을 뽑아 화백들의 원작을 선물로 증정하는 '이벤트'였다.
추첨 결과 남학호·한영수·김경숙·변지현·오정아·추영태 화백의 작품들을 받아가는 '행운'은 서미경·서종복·남선희·박정원·한홍기·천종훈 시민에게 돌아갔다. 뽑힌 사람도 뽑히지 못한 사람도 한결같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 재미있는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