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을 드나드는 길은 100여 곳이 넘는다. 그만큼 대단한 산이다. 대구광역시, 영천시, 경산시, 군위군 등을 둘레에 휘어잡고 있는 팔공산에는 '군위 삼존석불',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등의 국보도 있다.
팔공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손꼽으라면 단연 갓바위라 하겠다. 동화사와 은해사 그리고 통일대불도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그래도 9세기 작품인 통일신라의 '관봉 석조여래좌상'에게는 역부족이다.
오늘은 북대구IC에서 내려 갓바위까지 가보려고 한다. 아무려면 가을 아닌가. '단풍길'로 이름높은 팔공산 드라이브길을 어찌 아니 달려볼 것인가.
아직도 한껏 아름다운 단풍길, 사람들이 붐비는데'팔공산 단풍길'을 강력 추천하는 것이 기자의 근거없는 애향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부터 밝혀두어야겠다. 대구의 팔공산 올레길은 올해 한국관광공사가 '강추! 우리 고장 가을 길'이라는 주제로 선정한 전국 여섯 군데 '10월의 가볼 만한 곳'에 뽑혔다. '변산 마실길(전북 부안)', '구룡령 길(강원도 양양)', '메타스퀘어 단풍길(대전 서구)', '상주 낙동강길(경북 상주)', '춘천 물레길(강원도 춘천)'과 더불어.
'10월의 가볼 만한 곳'이라고 했다. 한국관광공사의 '10월'은 한창 단풍이 고운 10월 말을 지칭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11월 초순인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내일 구경하지 못하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서두를 일이다. 다만 최종 목적지가 갓바위인 만큼 오늘은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 신숭겸 유적지, 방짜유기 박물관 등등의 '안'까지 들여다 보지는 않고, 도로를 달리면서 '눈요기'를 하는 '단풍 드라이브'로 멈출 요량이다.
북대구IC에서 내리면 안동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길로 접어들면 행정적 명칭으로는 동변동과 서변동이라고 하고, 전래 동명은 무태인 신시가지를 지나게 된다.
이 일대는 927년 왕건이 견훤군에게 대패한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오른쪽으로 대구 유일의 자연 생태 하천인 동화천을 끼고 길은 지묘동까지 이어진다. 지묘동은 <도이장가>의 주인공인 신숭겸과 김락이 전사한 곳이다.
지묘동 안으로 들어가 대구시 기념물 1호인 '신숭겸 유적지' 출입구 앞에서 왕산을 바라본다. 왕산에는 단풍이 완연하다. 왕건이 견훤군의 칼날을 피해 허위허위 넘었다는 왕산은 아득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핏빛이 남아 있는 듯하다.
신숭겸 유적지와 왕산을 오른쪽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 좁은 도로를 우회전하면 이윽고 넓은 대로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가 '팔공산 단풍길'이다. 과연 길은 그 이름답게 붉은 단풍나무들, 적조가 뚜렷한 느티나무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어우러져 늦가을의 대미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오르막을 오르면 파계사 네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놓치지 않고 들러보아야 할 가을빛은 파계사 입구의 파계지다. 팔공산 주봉까지 물속에 드리운 파계지의 가을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사찰 경내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여기서 만추를 만끽하고 돌아오는 것도 꽤 괜찮은 가을여행의 한때가 되리라.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옆을 지나는 단풍길파계사 입구서 되돌아나온다.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울긋불긋한 단풍길이 운전하는 사람을 자못 위험하게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운전 중에 사진을 찍기도 한다. 단풍만큼이나 아찔한 풍경이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길 오른쪽에 커다란 돌비석이 하나 서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마을로 들어가는 안내 입석이다. 돌에서 생가까지는 200m 남짓 된다. 그러나 그냥 지나친다. 갓바위는 850m 꼭대기에 있어 등산을 해야 하는 곳이니, 지체할 일이 아니다.
수태골의 가을도 아름답다. 옛날에 아기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은 곳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수태골 오른쪽에는 팔공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동화사 앞을 지나 산 아래로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신숭겸 유적지, 왼쪽으로 갓바위로 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본래 신숭겸 유적지가 있는 지묘동에서 곧장 이리로 달려오면 되었지만, 전국적 지명도를 자랑하는 '팔공산 단풍길'을 달려보기 위해 동화사 앞으로 둘러온 것이다. 좌회전을 한다.
갓바위로 오르는 대표적 등산로는 둘이다. 하나는 대구 쪽에서, 다른 하나는 경산시 와촌면에서 오르는 길이다. 대구 쪽에서 오르는 길이 좀 더 가파르고 시간도 두 배 가량 걸린다. 만약 등산하는 기분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이 길이 좋다.
만약 어린 아이 동행이 있거나 등산 준비가 안 된 평상복에 구두 차림이라면 팔공산의 북쪽에 나 있는 와촌면 길이 좋다. 오르는 데 대략 25분 정도 걸리는 이 길은 산길 기세가 거의 없다.
와촌면 선본사 아래에 섰다. 등산로 입구다. 역시 사람들이 많다.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갓바위 부처'의 관광객 유입 능력은 정말 대단한 듯하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산길이 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