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 금강산 관광 중단, 대북단체 '삐라' 살포와 북한의 조준타격 논란 등.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 관계는 차가웠고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접경 지역은 곧바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금, <오마이뉴스>는 접경지를 찾아가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편집자말] |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연평은 각종 공사를 위해 몰려든 인부들로 가득했다. 700~800여 명의 외지인들이 몰려와 음식, 숙박업 등은 '포격특수'를 누렸지만, 연평도 주민들의 주 수입원인 꽃게잡이는 올해 흉년이라 상당수 뱃사람들은 시름에 빠졌다.
5일 연평도 선착장에는 뭍으로 나가는 배편에 오르기 위해 200여 명의 군인과 주민들이 몰렸다. 휴가 나가는 군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선원들은 달랐다. 꽃게잡이 철임에도, 어획량이 줄어 근심이 가득한 한 선원은 "가을철 꽃게가 없다. 예년에 비해 절반도 못 되는 어획량"이라고 걱정을 털어 놓았다. 살이 찬 꽃게는 몇 박스가 보이지 않았다. 선원에 따르면, 지난해 꽃게 철에는 살이 찬 꽃게가 20여 박스는 매일 올라왔다고 한다.
"돈 실러가세 돈 실러가세 황금바다 연평바다로~"
실제 옹진군에 따르면 가을 조업이 시작된 지난 9월 이후 2개월 간 연평도 꽃게 어획량은 87만 820kg으로 동년 동기의 107만 7460kg에 비해 80% 수준에 그쳤다. 금어기가 풀린 9월에는 많이 잡히던 꽃게가 10월 들어서 급감했기 때문. 수온 상승과 지난해 과도한 어획량으로 인해 꽃게 어획량이 줄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중국 어선에 의한 불법 어획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12월부터 다시 금어기에 들어가 연평 어민의 주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연평도는 분단 전에는 축복 받은 땅이었다. 옹진군지(옹진군지편찬위원회.1989)에 따르면 해방 전 연평도는 일본뿐 아니라, 평안, 함경, 전라, 경상도에서 수천척의 어선들이 대거 출동해 대도시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당시 어획고는 천문학적 수치로 연평어업협동조합의 일일 출납고가 한국은행의 출납보다 그 액수가 높았다고 기록되기도 했다. 서울 기생이 연평도에 있다는 전설은 아직도 유명하다.
"돈 실러가세 돈 실러가세 황금바다 연평바다로 돈 실러가세"라는 노래 가사가 말해주듯 연평도는 복 받은 사람들의 땅이었다. 해방을 전후해 연평에는 조기가 많이 어획됐지만, 분단으로 인해 조기 어획량은 급감해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400여 세대 중 150세대가 해태 양식을 했고, 1980년이 넘어서는 꽃게잡이가 주요 수입원이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1955년 3672명이던 섬 인구는 1965년 3216명, 1975년 2240명, 1985년 1869명으로 계속 감소했다. 하지만 연평 면사무소에 따르면 연평 포격 이후 올해 10월 말 연평 인구는 다시 2036명으로 증가했다. 작업 인부와 군부대 인원이 증원됐기 때문이다.
"NLL 종횡무진 움직이는 중국어선에 당해"
외지인들로 인해 음식 및 숙박업 특수를 누리지만 연평 주민들은 우려가 크다. '포격특수'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다. 서해5도에 대해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해5도 어민들은 최근 인천시, 주한 중국대사관, 국회 등을 방문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면서 정부와 중국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연평도 주변의 중국 어선의 불법 어획은 매년 반복되어 왔다. 통발을 통한 무차별적인 어획도 문제지만, NLL을 교묘히 이용한 중국 어선의 불법 어획도 문제다. 남북한의 단속을 피해 NLL을 '종횡무진'하는 중국 어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셈이다.
연평도 출신으로 고향에서 전기 공사를 하고 있는 50대 한 남성은 "현재야 공사 인부가 많고 군인이 증원되어 돈 좀 벌지만, 물가도 비싸고, 민박도 손님이 많아 불친절하다. 인부 나가면 연평 경제가 위험하다"면서, "연평도가 잘 되기 위해서는 관광객을 유치해야 하고, 평화를 통한 안정감을 심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평에서 유선업하는 김우석(가명, 73) 할아버지는 "연평도가 살려면, 중국 어선 못 들어오게 하고, 통발 배를 정부가 단속해야 한다. 치어들까지 잡아들여 어족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노무현이 인천에 준 선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NLL에서는 남북한 충돌이 1999년과 2002년에도 발생했으며, 이후에도 NLL을 중심으로 남북이 첨예하게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었다. 분쟁의 바다인 서해 최북단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큰 선물(?)을 주었다. 그것이 바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남북정상선언'이다. 참여정부는 서해에서 분쟁 요소를 해결하고 경제적 공동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이하 평화지대)'안을 구상했다.
10.4 남북정상선언 5항에는 남과 북이 해주 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평화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 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 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 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 이용 등을 추진해 나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차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평화지대 설치에 합의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계속 분쟁이 일어납니다....(중략)... NLL은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고 해주를 개발하고 개성공단, 인천을 이렇게 엮어서 3각 남북협력 특별지대를 만들어서 여기에 세계의 기업도 유치하고,....(중략)... 공동어로 구역을 만들어서 어족자원도 보호하고, 한강하구 모래도 공동으로 채취해서 이득을 남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지대 설치를 통해 서해는 무력 충돌이 방지되고, 해주는 제조, 물류, 수출 복합특구로 개발하고 개성을 산업, 문화 역사가 어우러지는 도시로 육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국제공항과 항만을 가지고 있는 인천을 금융, 무역, 비즈니스 중심으로 발전시켜, 해주-개성-인천으로 이어지는 삼각경제지대를 형성해 세 지역을 경제, 지리적으로 연계해 한반도 경제권의 중심축이자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평화지대 설치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물거품이 됐다. 평화의 기운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노무현 싫어, 10.4선언 그런 거 몰라"
김우석 할아버지 고향은 황해도지만 6.25 이후 연평에서 정착했다. 그는 연평 포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뭐가 겁이 나겠냐"면서 "난 연평도가 살기 좋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누굴 찍을 계획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찍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연평도에서는 몇 사람 빼고는 모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지지해, 올해 대선 기준은 안보 잘하는 대통령이지, 되든 안되든 한나라당 지지야. 인천시장이 민주당이라 옹진에 지원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 실제 17 대선에서 연평에서는 이명박 당선자가 406표를 얻은 반면, 정동영 후보는 221표를 얻는데 그쳤다. 이 대통령의 평균 득표율은 48,67%였다. 16대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345표를 얻었고, 노무현 당선자(평균 득표율 48.9%)가 294표를 득표했다.
"현 정부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꽤 있다"는 기자의 물음에 김우석 할아버지는 "노무현이 잘못했다. 거기 때문에 (연평포격) 이런 파장이 일어났다"면서, "통일되면 연평 사람에게는 좋겠지만, 국가적으로 모든 걸 다 해나가려면 어렵지"라며 말을 아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실현되면 서해5도 어업 활동이 좋아진다, 혹시 10.4 선언에 대해서 아냐"고 묻자 그는 "노무현 싫어, 난 그런 거 몰라"라고 말했다.
결혼 후 연평에 정착한 박아무개(60)씨도 10.4 선언에 대해서 묻자 "우리 같은 사람은 10.4 선언이 뭔지도 모르고 서해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몰라, 그냥 정치권은 말로만 하는 거 같아 싫어"라고 말했다. 연평도 선착장에서 만난 50대 남성도 "10.4 선언이 뭔지 모른다"면서, "북한을 더 압박하고, 연평도에 군대를 증원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연평도에서 만난 주민들 상당수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 불신을 표시하면서도,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된 10.4 선언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지역문화를 연구해온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해불양수(海不讓水)란 사자성어는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뜻으로, 인천이 바로 그런 도시에 해당한다"며, "인천이 분단으로 인해 인물이 나오지 않고, 발전이 되지 않고 있다. 인천이 발전하기 위해선 분단의 도시 인천이라는 오명을 벗고, 평화도시 인천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천은 중국과 소련, 북한 등으로 막혔지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굉장히 성장했다"면서, "남북한의 평화와 교류를 통해 인천이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