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는 7일만 무리하지 않고 지내면 그냥 낫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로 약을 처방받지 않아도 우리 몸에 면역기능이 작동해서 감기를 이겨낸다는 뜻이겠죠. 또 몸에 열이 나면 어딘가 아파서 병원을 찾지만 그 역시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우리 몸이 자연스레 반응하는 일이라고 하죠. 그것도 심하지 않으면 자연치유가 가능하다고 하죠.
2009년도에는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우리나라도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죠. 그때 백신을 맞아두면 인플루엔자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고요. 하지만 그것으로 예방하는 이도 있지만 효력을 맛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하죠. 그걸 접종받은 사람의 몸이 백신에 반응하여 항체를 만들어내면 예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이겠죠. 오랜 지병이 있거나 면역억제제 같은 약들을 많이 복용한 사람들은 그만큼 예방접종의 효력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것 말이죠. 더 말하자면 그만큼 자연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건강하게 늙어가는 일이고, 또 그만큼 자연스런 죽음도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겠죠.
사실 자연 속에서 따낸 과실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가 쭈그러들기 마련입니다. 농약을 친 것이나 다른 영양제를 맞은 열매들은 다들 골거나 썩기 마련이죠. 그 냄새도 그만큼 심한 법이고요. 그건 사람도 다르지 않겠죠. 의약품에 기대지 않고 제 목숨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다들 그 몸이 쭈그러듭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약이나 링거를 꽂은 채 목숨을 연명한 사람들은 결코 그런 이치를 따를 수 없죠.
그런데도 나이가 들어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죠. 그것은 오래살고 싶은 인간의 본래 욕망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고, 모든 의사는 자신의 병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맹신도 한 몫하고 있고, 약을 처방받으면 약의 효과 때문에 치료가 빨라질 걸로 믿고 있고, 방송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건강식품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까닭이겠죠.
"원래 의료의 원리는 환자의 몸이 반응하는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력이 완전히 소진된 환자의 경우, 혈압이 떨어진다고 해서 승압제를 아무리 사용한다한들 떨어진 혈압이 올라갈 리가 없다. 환자의 몸이 약에 반응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사나 약이 사력을 다한다고 해서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자연치유력이 희박할 수록 치료는 어렵다. 자기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것을 타인인 의사가 고쳐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앞서 얘기했듯이 의료인은 어디까지나 보조역이자 조력자이고, 약은 보조도구일 뿐이다." (38쪽)나카무라 진이치의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위즈덤스타일 펴냄)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일본의 다카오(高雄) 병원 원장과 현재 사회복지법인 노인요양원 도와엔(同和園) 진료 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병원이나 의약품보다는 자연건강법을 지켜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고, 그에 따른 죽음도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이야기합니다. 몸에 면역기능이 떨어지지 않는 한 질병을 이겨내거나 고통이 덜할 텐데도, 오히려 병원 처방과 공격적인 치료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하다가 죽는 이들이 많다는 지적이죠.
일례로 그런 소견을 밝힙니다. 생명력이 약해져 노쇠사(老衰死)한 경우를 예로 든 게 그것이죠. 보통 어른들이 늙어서 기아상태가 되면 산소결핍 때문에 뇌 속에 모르핀양 물질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한 느낌 속에서 죽는다고 하죠. 그때 탈수가 일어나는데, 그 역시 혈액이 농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 수준이 떨어져 몽롱한 상태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결코 그 당사자가 괴롭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는 없다고 하죠.
반대로 자식들이 효도를 한다는 명분으로, 또 좀 더 얼굴을 맞대고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연명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늦출 순 있지만 피할 수 없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하죠. 때로는 그 치료 때문에 그 당사자는 남모른 고통과 압박 속에서 죽어간다고 하죠.
암 치료도 마찬가지라고 하죠. 그 치료법이 수술과 방사선치료와 항암제치료, 그리고 면역치료와 온열요법 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책은 없다고 하죠. 5년 생존율로 그 치료율을 평가하지만, 그것 역시 허울 좋은 평가일 뿐이라고 하죠.
때로는 그때 사용하는 항암제가 '맹독'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연장하려다가 오히려 단축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암에 대해 공격적인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환자 당사자에게 통증이 없을 수 있고, 또 고령자의 암일 경우 방치할수록 편안하다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누리고 채워야 할 자신의 소중한 시간들을 너무도 소홀히 흘려보낸다. 그렇게 '끝을 모른 채' 살다가 어느 날 가까운 사람이나 혹은 자신에게 죽음의 실체가 다가오는 순간 패닉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어떡하든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병원을 찾고 온갖 의료장치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일 것이다. 너무 늦지 않으려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존엄하게 마무리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죽음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171쪽)그가 1996년 4월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을 주관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 모임이 발족할 당시만 해도 자살연구회나 신층종교단체가 아니냐는 소문이 퍼졌다고 하죠. 하지만 지금껏 그 모임을 진행해오는 중심 논의에는 '죽는 방식'이 아니라 죽기까지의 '사는 방식'에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그 모임 속에서는 삶의 궤도를 바르게 하기 위해 '생전 장례식'과 같은 체험도 하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행동도 한다고 합니다. 이른바 영정사진을 찍고, 유언을 적고, 작별 편지를 쓰고, 수의를 맞추고, 관을 구입하여 직접 들어가 보고, 사전의료의향서를 완성하는 것 등이 그것이라고 하죠. 그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잘 나가던 시립병원의 원장직과 이사장직을 내놓고 지금의 노인요양원에 몸담기 시작한 것이 그의 나이 60세 때의 일이라고 하죠. 벌써 15년이 넘었는데도 교대할 의사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 그. 그만큼 의료계의 밑바닥을 섬기고 싶은 의사들이 없다는 뜻이라고 하죠. 바꿔 말하면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치료도 치료지만 영리목적에 많이 매몰돼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가 왜 자연사(自然死)와 재택사(在宅死)를 강조하는지, 그 뜻을 깊이 새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