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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한 장면(자신의 집에 피신해 들어온 탈옥수를 발견하고 놀라는 여선생)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한 장면(자신의 집에 피신해 들어온 탈옥수를 발견하고 놀라는 여선생) ⓒ 조종안 재촬영

겨울 추위를 앞두고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지난 9일(금). 저녁을 먹기 무섭게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으로 달려갔다. 오후 7시부터 박물관 로비에서 상영하는 신파극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감독: 윤대룡)을 개그맨 출신 최영준(59) 변사가 진행한다기에 일찍 집을 나섰다.

1948년 김영순 프로덕션이 제작한 <검사와 여선생>은 변사가 설명하는 '마지막 무성영화'로 알려졌다. 상영시간은 40분, 16mm 필름으로 그해 6월 '우미관'에서 개봉했고, 관객이 무려 10만을 헤아렸다고 한다. 주연배우는 이영애, 이업동, 정웅 등. 또한, 무성영화 중 유일하게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한국 영상자료원에 보존되고 있다.

40분 상영물을 2부로 나눠 마당놀이처럼 진행

 영화 상영에 앞서 화면에 뜬 싸이의 <강남스타일>
영화 상영에 앞서 화면에 뜬 싸이의 <강남스타일> ⓒ 조종안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니 이웃과 함께 온 노인들과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 몇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었다. 공연장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려고 최 변사가 부른 추억의 가요 <대지의 항구> <청춘 고백> 등은 신바람과 애절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최 변사 노래가 끝나고 꺾기 창법이 매력인 나훈아 가요 메들리가 화면으로 소개되었다. 이어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던 2002년 최 변사가 직접 가사를 쓰고 불렀다는 <2002 비바 코리아>를 비디오로 보여주었다. 관객은 손 박자를 맞추며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

7시가 가까워지니 빈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관객은 10대부터 80대까지 층층으로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공연시간도 40분으로 짧고, 그 옛날 만인의 심금을 울렸던 추억의 무성영화이니 변사의 향수에 젖은 노인들만 관람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놀라웠다.

최 변사는 관객의 고향과 성씨를 묻는 등 객석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는 "급작스럽게 설치해서 조명시설도 없지만, 문화의 도시 군산이어서 좋다"며 객석으로 오더니 "제가 앞으로 나올 때 비춰주면 된다"며 조금 전 사귄 '광산김씨 아저씨' 등 관객 몇 명에게 손전등을 나눠주었다. 

<검사와 여선생>은 총 40분 상영물이다. 하지만 최 변사는 각 20분씩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했다. 1부가 끝나면 최 변사가 무대 앞으로 나와 10분 정도 분위기에 어울리는 흘러간 옛 노래도 부르고, 개그도 하고, 관객과 대화도 하는 등 공연을 마당놀이 식으로 끌어갔다.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 줄거리

 조명을 받으며 무성영화 공연에 대해 설명하는 박영준 변사
조명을 받으며 무성영화 공연에 대해 설명하는 박영준 변사 ⓒ 조종안

불이 모두 꺼지면서 박물관 로비는 어둠의 세계가 되었다. 벽에 임시로 설치한 소형 화면에는 <검사와 여선생>이란 한글자막이 뜬다. 최영준 변사가 급조된 조명기사들이 비춰주는 조명을 받으며 무대 중앙으로 등장하고, 실내는 관객의 함성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다.  

"아~ 눈물 없이 볼 수 없고,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검사와 여선생> 막이 올라갑니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건 이내~심사···(중략) 지루한 시간 대단히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기대하고 고대하시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 변사 최용준 다시 한 번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관객 환호성과 박수)

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70여 년 전. 지금은 서울이라 불리는 경성의 어느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민장손, 나이는 방년 15세, 성격 온순, 취미 독서. 그는 나이 세 살에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달랑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중략) 자 그럼 영화를 감상하시겠습니다. 70여 년 전 필름이라 상태가 하염없이 비가 내리지만, 그것도 소나기가 내리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보물이니 재미있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필름' 하면 다 함께 '큐'하고 외쳐주세요. 에브리바디 필름!"

"큐~!"

영화가 시작되고 등장인물 소개에서 배우 이름이 모두 한자로 표기되어 나왔다. 그러자 그동안 유머와 맛깔스러운 대사로 관객을 사로잡던 최 변사가 "성명 미상, 성명 미상, 이거 완전히 한문이로구나, 내 실력으로는 해독 불가!"라고 하자 폭소가 터진다. 

 화신백화점(왼쪽 건물)과 전차 모습도 보이는 영화 속 서울 종로거리
화신백화점(왼쪽 건물)과 전차 모습도 보이는 영화 속 서울 종로거리 ⓒ 조종안 재촬영

 신문배달을 마치고 집에 가는 장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웃 아주머니
신문배달을 마치고 집에 가는 장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웃 아주머니 ⓒ 조종안 재촬영

배경은 1940년대 서울의 변두리 판자촌. 허름한 판잣집 단칸방에서 병든 할머니와 살아가는 착한 중학생 '민장손'. 하루는 장손이 아침을 거르고 등교하여 운동장에서 달리기하다 쓰러진다. 병명은 영양실조. 장손이의 어려운 처지를 알게 된 여선생은 자신의 도시락을 건네주고, 책도 사주고, 할머니 문병도 가는 등 끔찍이 돌봐준다.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옹색한 화면이지만, 해방(1945) 후 서울의 뒷골목과 기와집, 판자촌, 종로의 상징 건물이었던 화신백화점, 전차 등 당시 서울의 거리와 동네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서울을 하늘나라처럼 동경했던 코흘리개 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장손이가 학교에서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책 장사를 위해 거리로 나서 행인과 전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책 사세요. 책. 책은 마음의 양식, 책 속에 길이 있어요. 책을 보면 상책, 안 보면 속수무책, 책사세요. 책···"이라고 하자 다시 폭소가 터졌다.

 점심시간에 교실 밖에서 도시락 먹는 급우들을 바라보는 장손이. 금 간 유리창에 붙여놓은 별모양 종이가 눈길을 끈다.
점심시간에 교실 밖에서 도시락 먹는 급우들을 바라보는 장손이. 금 간 유리창에 붙여놓은 별모양 종이가 눈길을 끈다. ⓒ 조종안 재촬영

여선생은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떠나면서 어려서 부모를 잃고 신문 배달과 빵장수로 연명하는 장손에게 저금통장을 건네주며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한다. 통장을 받아든 장손은 곧장 집으로 가지만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그 후 장손은 고학으로 대학까지 마친다.

영화 시작 전 최 변사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라며 경고(?)했지만, 변사의 설명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어설픈 장면 전환과 우연의 남발에도 이곳저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특히 요즘과 너무 다른 맞춤법의 자막은 내용에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재미를 더했다.

세월은 흘러 여선생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어느 날 숯장수가 배달을 오는데 옛날 빵장수 '수동이'였다. 수동은 여선생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장손이 소식을 묻는 여선생에게 수동은 가정교사를 하면서 법대에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후 소식은 모른다고 말한다. 

여선생 남편이 출장을 가는 날, 신문에는 죄수가 탈옥했다는 기사가 난다. 남편을 배웅하고 오던 여선생은 골목에서 우는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그 아이는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고 말한다. 여선생은 여자아이에게 빵을 사주고 아버지를 못 찾으면 집으로 오라고 이른다.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신문에 났던 탈옥수.

최 변사는 "이 신문 군산신문이냐?", "옜다, 군산에 왔으니 빵도 하나 더 준다.", "광산김씨 주인아저씨 안녕하세요!", "고마운 여선생님은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떠나시고··", "여보, '강남 스타일' 바지로 드릴까요?", "너는 어서 수레나 끌어라. 오늘 군산까지 가야 한다!", "검문입니다. 혹시 군산에 사슈?" 등의 대사로 관객의 웃음과 호감을 끌어냈다.

 담을 넘는 탈옥수와 즉석연기를 펼치는 최용준 변사
담을 넘는 탈옥수와 즉석연기를 펼치는 최용준 변사 ⓒ 조종안

탈옥수가 여선생 집 담을 넘어오는 장면으로 바뀌자 최 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구머니, 여기는 네가 들어올 집이 아니야, 여기서 얼쩡거리지 말란 말이야. 딴 데 가서 알아봐,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다리 부러져, 여기에는 병원도 멀단 말이야···"라며 호들갑을 떨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최영준 변사는 무대 뒤에서 단순히 해설 스타일로 진행하는 기존 변사와 달리 관객이 마주 보이는 스크린 옆에 앉아 애드리브(즉흥연기)와 모노드라마적 연기를 결합해서 진행했다. 오래된 필름이라도 영상과 함께 연기하면 '현장성'이 생기고 마당놀이처럼 객석과 소통이 잘되기 때문이란다. 

여선생은 집으로 피신한 탈옥수를 숨겨주지만, 이번에는 형사들이 찾아내 체포한다. 저항하려던 탈옥수는 여선생이 딸을 만나면 자수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얘기하자 순순히 손을 내민다. 부녀 사이를 안타깝게 여긴 여선생은 탈옥수 딸을 돌봐주면서 매일 감옥으로 면회를 간다.

동네 사람들은 둘 사이를 의심하면서 수군댄다. 출장에서 돌아오던 남편은 동네 사람들 얘기를 듣고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화를 낸다. 여선생이 설명해도 집을 나가라고 소리치며 칼로 아내를 찌르려다 문턱에 걸려 넘어져 죽는다. 목격자가 없던 터라 여선생은 남편을 살해한 살인죄로 체포된다.

<검사와 여선생>은 검사가 된 민장손이 법정에서 남편을 죽인 죄로 사형시켜달라고 절규하는 여선생의 누명을 벗겨주고 집으로 모시고 가서 학창시절에 받은 저금통장과 목도리 등을 내놓으며 은혜에 감사드리는 장면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나오는 여선생과 그를 맞이하는 민장손 검사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나오는 여선생과 그를 맞이하는 민장손 검사 ⓒ 조종안 재촬영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검사와 여선생#무성영화#최영준 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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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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