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뮤지컬의 대미를 장식하며 한국 입성''27년만의 기다림, 드디어 한국어 초연''7개월간 10차에 걸친 역사상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오디션'뮤지컬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어느 매체에서든 이 문구들을 한 번 이상을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큰 기대감으로 개막일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리라. 세계 뮤지컬의 역사를 바꾼 대작 중의 대작, 드디어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의 막이 올랐다.
불후의 명곡, 우리말과 만나다'레미제라블'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가는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이다. 오직 노래로만 작품의 모든 것을 전달해내야 하므로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 만큼이나 서로간이 조화가 중요하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배우들은 감히 주역과 조역, 앙상블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호흡으로 '역사상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오디션'을 거쳤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작품 전체가 노래로만 구성된 만큼 명곡들도 많은데, 수잔 보일이 불러 더 유명해진 판틴의 'I Dreamed a Dream'부터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의 'Own My Own', 장 발장의 고뇌를 담은 'Who Am I?', 혁명을 부르짖는 청년들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바리케이트 앞에서 다 함께 부르는 'One Day More' 등이 그것이다. 이 불후의 명곡들은 이번 한국어 초연 무대를 통해 우리말로 옮겨져 새롭게 태어났다.
물론, 20여 년간 듣고 보아온 원곡에 익숙한 이들에겐 우리말 가사와의 첫 만남이 다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공연을 보고 있다보면 각 인물의 감정과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실적인 표현으로 담아낸 가사는 작품이 주는 감동의 깊이를 더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며 극 중 인물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회전 무대의 빈자리, 감성으로 채우다이번에 한국어 초연으로 만나게 될 '레미제라블'은 지난 1996년과 2002년에 한국에서 공연되었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2009년 25주년을 맞아 제작된 버전이다. 1985년에 제작된 오리지널 버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바로 '무대 미술'!
오리지널 버전에서 객석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킨 것은 '회전 무대'와 '대형 무대장치'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둘 다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아쉬워하긴 이르다. 그 빈자리를 단순해보이지만 치밀하게 조합을 이루는 세트와 빅토르 위고가 생전에 직접 그린 그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3차원(3D) 애니메이션 영상이 알차게 채웠기 때문.
제작진이 가장 자랑하는 것은 '영상 무대'로 하나 하나가 마치 도화지에 목탄으로 그려놓은 오래된 명화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상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쉼 없이 움직이며 등장 인물의 감정선과 극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데, 이때, 그 변화가 아주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다. 이는 관객들이 보다 작품에 깊이 있게 몰입하도록 도와주며, 특히,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하수구를 지나는 장면이나 자베르가 세느강에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는 앞서 무대에 영상을 활용한 여타 작품들이 관객들로부터 영상이 극 몰입을 방해한다며 혹평을 받은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회전무대와 대형 무대 장치의 빈자리에 대한 여러 팬들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고에게만 허락되는 꿈의 무대지난해 말 '레미제라블'의 초연을 알리는 오디션 공고가 올라오자 전국 극장 무대 뒤에선 일제히 레미제라블의 넘버들이 울려퍼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 관객들에게 레미제라블은 꿈의 작품이요,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지난 1년여 동안 SNS와 뮤지컬 관련 게시판에는 레미제라블에 대한 기대가 담긴 글들로 가득했고 오디션 상황을 알리는 배우들의 한 마디는 기사로 옮겨졌다.
그러나 공고 속 오디션 종료일이 한참 지난 후에도 캐스팅은 커녕 공연 일정에 대한 정보도 나오질 않자, 일부에선 지난 몇 차례와 같이 이번에도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한국어 초연의 베일이 벗겨졌다. 최소 1년이라는 장기 공연 소식에 한 번, 2000여 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7개월간 10차에 걸쳐 오디션을 해 각 배역당 단 1명의 배우만을 선발했다는 소식에 또 한 번 놀랐다. 길고 긴 전쟁에서 승리한 배우들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으며, 참여 소감을 말하는 목소리엔 혁명을 앞둔 청년들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그들은 런던 오리지널 스태프들, 국내 최고의 협력진과 힘을 합쳐 꿈의 여정을 시작했고, 연습실에서 7주, 무대에서 공연과 같은 환경으로 3주라는 유난히 길고 고생스러운 연습을 통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프리뷰 공연기간임에도 부족함 없는 무대로 황금빛 결실을 맺어나가고 있다.
주인공 정성화는 창법까지 바꾸는 노력에 타고난 연기 감각으로 그만의 '장발장'을 탄생시켰고, '자베르' 문종원 역시 크고 작은 무대에서 쌓은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판틴'역의 조정은 또한 짧은 등장에도 강한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앙졸라'역의 김우형은 당장이라도 혁명에 뛰어들 것처럼 용감하며, '에포닌'역의 박지연, '마리우스'역의 조상웅, '코제트'역의 이지수, 신인 3인방도 대작의 무게감에 기죽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떼나르디에 부부' 임춘길, 박준면도 진지하고 어두운 극 분위기 속 웃음으로 활력을 더한다.
하지만 이 훌륭한 주, 조역 배우들 못지 않게 중요한 레미제라블의 진정한 '힘'은 '앙상블'이다. 특히나 이번 앙상블 배우들은 여타 작품에서 수차례 주, 조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실력자들로만 구성되었다. 다른 작품의 주, 조역을 마다하고 스스로 앙상블을 자처하면서까지 레미제라블에 참여하고자 했던 그들의 애정은 무대 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각 장면을 모두 하이라이트로 기억되게 하는 그들의 연기와 가창력은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앞으로 1년, 회를 거듭할 수록 작품의 밀도는 단단해지고 감동의 깊이는 보다 깊어져 우리는 지금보다 더 놀라운 무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게 될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의 마지막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 공연 일정:
용인 포은아트홀 (~11월 25일, 15일까지 프리뷰)
대구 계명아트센터 (12월 7일~2013년 1월 20일)
부산 소향아트센터 (2013년 2월 1일~3월 3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2013년 4월 9일~)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 문의 02)547-5694 (주)레미제라블코리아(http://www.lesmi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