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님, 저는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 김일웅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로서 인사드리는 이유는 지난 토요일(10일) 시장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입니다. 시장님은 전날 보도된 한 언론사의 기사 때문에 화가 난 듯 보였고, 해당 기사에 인용된 저의 인터뷰에 대해서도 "도대체 무엇을 비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도 해당 기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인터뷰 내용 자체가 너무 짧아서 어떤 지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에 해당 인터뷰 취지와 함께 이번 기회에 평소 박원순 시정에 대해 진보신당 서울시당이 취해왔던 비판적 입장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관련기사: "박원순 서울시장, 현안 두고 유럽 탐방?")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 정책협약을 맺은 당사자고, 저는 공동 선대본부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정책협약에는 참여했으나 공동정부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합리적 정책수행의 필수적 조건인 건강한 비판세력으로서 박원순 시정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진보신당 서울시당이 지금까지 서울시와 만든 사업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을만들기 사업, 비정규직 대책, 뉴타운 출구전략, 도시농업 사업과 최근 서울광장에서 진행했던 '싸이 공연 논란'까지….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 체감과 동의박원순 시장께서 문제 삼은 '사회적 경제모델 구축'을 위한 유럽순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을 방문해서 훌륭한 사례들을 검토하고, 서울시민을 위한 좋은 정책들을 배워 오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에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 대표단의 해외 순방 자체가 비판받을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금과 같이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시기에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서울시가 이번 유럽 순방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는 '사회적 경제 구축'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협동조합의 사례를 탐방하고 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않고 사회적경제가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참고할 사례 부족이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볼로냐, 바르셀로나 등 이번 방문지 경험과 사례들은 포털에서 검색만 해봐도 수많은 자료가 쏟아질 만큼 관련 국내 문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언론보도에 인용된 저의 인터뷰는 지금 부족한 것은 해외사례가 아니라 서울시민이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모델을 통해 경쟁과 효율성이 아닌 방식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하는 방안이 더욱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시민이 사회적 경제모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회적 경제모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비전에 동의하는 가운데 관련 사업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박 시장께서 그토록 강조하는 주민 이니셔티브가 보장될 수 있으며, 주민의 자율성과 자발성에 기반을 둔 튼튼한 사회적 경제모델의 구축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박원순 시장께서 역점사업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논평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서울시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한 애정이 어린 비판을 지속해 왔고, 지난 3월 서울시가 발표한 '마을만들기' 사업 추진계획에 대해서 지나치게 조급하며 지역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매뉴얼화된 단위사업들이 동네마다 들어서는 획일적인 사업계획은 오히려 '마을죽이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9월 발표한 '마을만들기 5개년 사업계획'도 여전히 서울시의 조급증과 행정주도의 관행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올해 진행된 사업에 대한 평가도 생략한 채 향후 5년 동안 975개의 마을계획 수립을 지원하고 3180명의 마을활동가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은 성과 지향적인 성장 위주의 관행으로 보입니다.
서울시의 100년대계가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달려있다고 판단한다면 올해 사업에 대한 검토도 없이 나열식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체의 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단단하게 기초를 놓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박원순 시장께서 언급했던 제 인터뷰의 비판의도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성과 위주의 사업보다는 시민이 '마을만들기'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마을공동체 구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데 서울시의 역할이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사회적 경제모델의 구축이건, '마을만들기' 사업이건 탄탄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의 비전과 가능성에 대해 시민이 체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인식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현재로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비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시장님의 태도가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봉천동 12-1 구역, '마을'에 살던 세입자들을 기억하십니까?
시장님께서는 취임 이후 SNS를 통해 시민과 활발하게 직접 소통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전임 시장들에 비해 시민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저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께서는 혹시 봉천동 12-1 구역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저희 진보신당 소속 나경채 관악구의원은 지난 10월 언론 기고를 통해서 봉천 12-1 구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딱한 처지를 전한 바 있습니다. (
관련기사) 나 의원에 따르면 사업추진을 하는 조합은 법적으로 보장된 주거 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권까지 주지 않으려 했고 이에 대해 저항해 온 월 15만∼20만 원에 살던 월세 세입자들은 생존을 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도, 관악구도 방치한 사이에 세입자 대책위원장이 죄인처럼 조합장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봉천동 12-1 구역은 지난 6월 진행되려는 강제철거를 시장님의 지시로 막았던 곳입니다.
당시 박원순 시장께서는 아무리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절차라도 강제철거는 안 된다며 '합의에 의한 추진'을 지시한 바 있고, 페이스북에 올라 온 이러한 내용을 본 시민들은 열광했습니다. 이에 봉천동 세입자들도 희망을 품게 되었지만, 결국 세입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위해서 죄인처럼 조합에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알게 된 후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박원순 시장께서 지난 6월에 보였던 봉천 12-1 구역에 대한 관심이 그저 스쳐 가는 제스쳐나 반짝하는 보여주기식 SNS 정치가 아니었다면, 그 세입자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으시라 주문했습니다.하지만, 박원순 시장께서 봉천동 세입자들을 만났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SNS를 활용한 소통은 그 특성상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보다는 우호적인 시민에게 그때그때의 만족감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이번 언론보도에 대해 박원순 시장께서 페이스북에 보여주신 반응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앞서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서울시정에 대해 애정 있는 비판을 지속해 왔습니다. 저희의 비판적인 인터뷰에 대해 무엇에 대한 비판인지 한 번 더 생각하기보다는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에 대해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문제진보신당 서울시당이 더욱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지난 1년여 박원순 시정에서 노동에 대한 관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서울시는 작년 보궐선거 당시 진보신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 그리고 민주노총과 합의한 정책협약의 주요한 내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복지센터입니다.
애초 25개 자치구에 하나씩 설치하기로 했으나 4개로 축소되었으며, 2012년 예산 편성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일방적으로 삭감되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정책협약으로 합의한 사항에 대해 일방적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은 노동복지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서울시의 비정규직 대책 역시 '기대이하'라는 사실입니다. 서울시의 비정규직 대책, 특히 서울시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서울시의 의지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하반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서울시가 9월 말까지 완료하겠다고 했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연구용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10월 말로, 11월 말로 계속 연기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례로 다산콜센터가 있습니다. '일일 평균상담 3만5000여 건, 5년 누적 상담 4400만 건 돌파' '전화민원 만족도 95.7점으로 2배 넘게 급상승'... 서울시가 지난 9월 13일 '숫자로 보는 120다산콜센터 5년 성과'의 내용입니다. 서울시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다산콜센터 120 서비스는 서울시의 공공행정에서 '대민' 밀착도가 가장 높고, 만족도 역시 높은 '서울시 대표 브랜드' 정책입니다.
하지만 다산콜센터에서 상담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서울시에 직접 고용된 것이 아니라 3개 위탁업체에 나뉘어 고용된 채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에 콜센터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민간위탁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고통받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보다 열악한 환경과 처우를 받으며 힘들게 일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마을만들기'는 과연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요?
천만 서울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서울시장이라면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을만들기' 사업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일까요?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서울시가 시민을 위한 시정을 펼쳐나가길 바라고 긍정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환영합니다. 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애정 있는 비판을 계속할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께서도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니냐'는 비판을 사고 있는 SNS를 통한 소통에 치중하기보다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소통하시기를 바랍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겨울 서울역 앞 노숙인들과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그리고 다산콜센터에서 민간위탁 간접고용으로 일하고 있는 상담노동자들, 편의점에서, PC방에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청년들을 찾아가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한 걸음 가까워지는 시정을 펼치시길 희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김일웅 기자는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