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덕소와 금광호숫가에 사는 이들이 책이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에 뜨끔했다. 당대 책에 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애서가인 김삼웅 선생과 장석주 작가가 나란히 독서에 관한 안내서를 펴냈다.
두 책은 약간 형식이 다르지만 책이 날줄이 되고, 사람이 씨줄이 됐다는 점은 같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 강과 호수가 가까운 곳에 산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꼭 닮아있다.
김삼웅의 <독서독본>(현암사 간)은 책 이야기지만 묵직한 인문학 서적으로 읽힌다. '책을 벗 삼아'(讀), '책에 마음 뺏기고, 꽃 향기에 취하고'(書), '세상을 읽고 고하노니'(讀), '문장의 시작과 끝'(本)을 챕터로 삼아 책 전문지 '책과 인생'에 3년간 연재했던 글들 가운데 적절한 것을 배치했다.
앞 두 장은 책을 사랑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인문을 사랑하다보니 그 품격으로 읽어냈던 자연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3번째 장부터는 책을 사랑하다보면 당연히 따르는 직필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저자 스스로가 박현채, 리영희, 장준하, 신채호, 송건호 등 저널리스트의 평전을 썼고, 언론인으로 살아온 만큼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따라서 책에서 소개하는 이들도 이탁오,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등 비판적 지성들에 천착하는 경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고미숙씨에게 들은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한 후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독서나 여행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원용했는데, 그 의미가 "입으로만 읽고, 몸에 체득하여 직접 실천하지 않는다면 독서는 독서고 나는 나일 뿐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라는 율곡 이이의 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 것도 작은 소득이다. 아울러 글 짓는 것이 날랠 경우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라는 말은 내 스스로에게도 뼈져렸다.
장석주의 <마흔의 서재>(한빛비즈 간)는 지천명을 넘은 문인이 십수년 후배인 마흔살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론 이 책도 씨줄은 책이고, 날줄은 사람을 포함한 인생의 소중한 것들이다. 출판업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후 경기도 안성 금광호숫가에 집을 짓고, 책에 둘러쌓여 나른한 인생을 사는 저자는 시로 데뷔했지만 스스로를 문장 노동자라 칭하는 전문 작가다.
작가 역시 3만여권의 책을 소장한 애서가이며, 젊은 날부터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은 책벌레다. 그리고 이번에 모은 책은 그가 십수 년 전에 흘러갔던 마흔을 되새기며, 그 즈음을 맞는 이들이 꼭 읽고, 그 가치를 습득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책들을 소개했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은 간단히 정리하면 동양고전과 자연친화적 삶에 대한 책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논어'를 필두로 다양한 동양고전을 소개하고 있으며, 소로우의 '윌든'을 비롯해 자연친화적 삶을 살다간 이들의 기록이 많다. 그밖에는 인체에 관한 책들도 많다.
저자는 왜 한참을 지나간 마흔살짜리들을 잡고 책을 읽으라고 권할까.
"마흔 즈음이 되면 술의 맛은 인생의 굴곡 만큼의 밀도를 갖는다. 취지의 긍정적 에너지를 안다. 치인 만큼 입에 착 감기고, 아픈 만큼 마음에 슥 풀어지는 것. 이제 마흔은 인생에도 취할 수 있다." 저자는 마흔을 인생의 반을 넘어가는 소중한 시절로 보고 있다. 몇 년 전 마흔을 넘긴 기자의 입장에서도 그 말이 알 듯 모를 듯 감긴다. 이런 개인적 소회를 떠나 이 책은 성숙한 자신을 갖추기 위해 꼭 알아야할 사람들의 지식으로 가는 좋은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두 권의 책을 보면서 얼마간 책 읽기와 서평쓰기에 소홀했던 자신을 질책할 수 있었다. 아울러 새삼 책을 가깝게 한 이들과 책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이들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당대 정치가들 가운데도 유독 책을 가까이한 이들이 김대중이나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책을 멀리한 이들이 그밖에 대통령들이다. 아울러 이들과 같이했다가 철새처럼 부유하는 정치인들의 언행을 보면 책을 가까이한 이와 멀리 한 이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이치를 잠깐 잊었던 것이 죄스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두 권의 책은 우리를 책의 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는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