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내가 <섹스 앤 더 처치>를 집어든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SEX'와 'CHURCH'라는 두 개의 별 연관 없어 보이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부제로 쓰인 '젠더, 동성애, 그리고 기독교 윤리의 변혁'이라는 것에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곧 눈치챘지만 말이다.
지난 2000년 연예인 홍석천의 이른바 '커밍아웃' 이래, '동성애' 문제는 숱한 논란을 낳으면서 조금씩 진보해 왔다. 그러나 이후 그에게 쏟아진 이유 없는 각종 비난에 홍석천은 다른 사람들의 커밍아웃을 만류하기도 했다.
'TV, 신문, 라디오, 잡지'가 4대 매체로 통하며 큰 영향력을 과시하던 그 2000년을 지나, 유사 이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서도, 편견이라는 악령은 여전히 소수의 다른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
편견에 희생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성 정체성이나 그에 따른 성 윤리를 논하는 것은 원활한 대화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종교, 그 중에서도 기독교 내의 동성애에 대한 논란은 다른 어느 부문에서보다 요란하다.
이 책은 동성애 문제를 미국 기독교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듀크 대학에서 윤리학과 여성학을 가르치는 캐시 루디다. 그는 150년 전의 미국의 기독교가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큰 분열을 일으킨 것처럼, 오늘날은 동성애 문제가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신자, 교파, 가족들까지 갈라놓을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현대 퀴어 이론을 기독교 신학에 적용하여 교착상태에 빠진 이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방법으로 풀어보고자 한다'(12쪽 머리말 발췌)고 밝히고 있다.
동성애, 성 윤리,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동시대의 기독교인이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더 잘,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젠더 및 성 논의의 틀은 어떻게 형성되며 그 틀은 교회의 전통에 부합하는가? 나는 가족가치 운동이 어떻게 동성애 혐오와 성차별주의로 가득 차게 되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본문 중에서)종교의 본령이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등을 대전제로 한 '포용'이라고 한다면 여태 종교가 여러 방면에서 보여준 모습은 모순의 연속이었다. 소수, 혹은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기보다는 기득권의 시각에서 각종 사안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 온 것도 일정 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기득권을 가진 거대권력집단(기독교)이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한, 보편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책은 진보적 기독교인과 보수, 근본주의자들의 시각, 퀴어 담론 등을 시대적, 역사적 맥락에서 다룬 것이라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 아닌 미국의 기독교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책이지만, 정치적 문제들과 젠더, 여성를 이해하는 시각, 또한 동성애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 그리고 제반 문제에 대한 보수와 진보 기독교인들의 시각차에 대한 통찰력 넘치는 분석은 이 책의 논조에 공감하는가, 아닌가를 떠나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1950년대의 이 이데올로기는 법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가족 구성을 공고히 하는 관념을 통해 백인 남성 중심의 노동인력에 여성과 흑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노래, 영화, 잡지, TV쇼, 특히 상품 광고에서는 교외에 위치한 집에서 남편과 자녀를 위해 안식처를 만들어 줄 때 가장 행복한 존재로 여성을 묘사했다. (본문 중에서)책의 첫 부분에서는 기독교 우파가 미국 정치상황, 특히 대선의 과정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를 설파한다. 또한 그들이 대중매체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여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이념들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또한 여성에 대한 시각의 시대적 상황에 따른 변천을 다루기도 한다. '가족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모든 행동에 제약을 가했던 오래 전 미국의 상황은 우리의 그것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런 담론에는 남성뿐 아니라 일부 보수 여성들도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술되어 있어 흥미롭다.
1990년대에 기독교 우파는 낙태에서, 그것보다도 가족의 가치와 더 크게 충돌하는 관습으로 관심을 돌렸다. 바로 동성애였다. 기독교 우파는 게이와 레즈비언에게 가족의 가치라는 프로젝트에서 쫓겨나고 소외된 자의 역할을 맡김으로서, 가족 관련 쟁점에서 보수적인 사람만이 구원받는다는 개념을 강화한다. (본문 중에서)저자는 기독교 우파가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 가족주의를 이용하고, 그것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하며, 더 나아가 동성애 등의 배척에까지 이르렀음을 말한다. 그리고 때때로 우파의 종교적 독실함과 헌신을 여성, 동성애자 등에 대한 몰상식하고 증오에 찬 의견과 분리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음도 고백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동성애에 관한 논리의 전개에 공감도 가지게 되었지만, 주류라 일컬어지는 몇 가지의 사상, 부류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조차 얼마나 빠르게 폭넓게 확산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실정이 오버랩되며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그들이 대중매체를 활용하고, 거대담론을 형성하여 여론을 호도하는 방식 또한 익숙한 풍경이어서 당황스럽기조차 했다.
12월의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책읽기가 두려움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주입되는 의도된 편협한 사고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을 얼마나 지배할 수 있는지, 그 맥락을 짚어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