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큰 아이(중2)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선생님들이 경남 진주시에 있는 월아산(해발 471미터)에 올랐습니다. 학부모와 선생님들 사이는 참 애매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환경은 두 사이가 친밀하면 괜한 오해를 사게 되고, 또 한없이 멀어지면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등산하는 것은 매우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둘째와 막둥이까지 함께 갔습니다.
이날 가장 활달하고, 즐거웠던 사람은 우리집 막둥이었습니다. 막둥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다. 4시간 동안 '조잘조잘'하는 막둥이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아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 내가 가장 빨리 올라갈 거예요.""네가 가장 빨리 올라간다고? 조금만 올라가면 힘들이 주저앉을 게다.""아니에요! 저는 갈 수 있어요. 한 번 보세요. 나는 뛰어갈 거예요."
막둥이는 내달렸습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지치는 듯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더니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빠 힘들어요.""내가 뭐랬니. 산은 뛰어 올라가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정말 힘들어요. 금방 올라갈 줄 알았는데.""산은 쉬엄 쉬엄 올라가는거야. 산에서는 욕심 부리면 절대 안돼.""누나는 안 힘들어?"
"나도 힘들어.""그럼 여기서 나하고 쉬어가자."
누나를 뒤에 두고 달여갔던 막둥이, 결국 누나까지 주저앉게 만들었습니다. 막둥이는 이날 욕심부리면 안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상 아래 약 300미터에 있는 헬기장까지 약 1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빨리 도착할 것 같았던 막둥이. 중간에 지쳐 주저앉다가 다시 힘을 내 헬기장에 도착한 막둥이는 아빠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아빠!""힘들지? 천천히 달려."
"아빠 그래도 나 꼴등은 아니예요. 아직 엄마가 뒤에 오고 있어요.""그래 엄마보다 빨리 왔네."
"다른 분들도 뒤에 오고 있어요."
비록 1등은 못했지만 막둥이 뒤에는 어른들과 형도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막둥이는 배가 고프다며 빨리 밥을 먹자고 합니다. 하지만 헬기장은 정상이 아닙니다. 정상까지는 300미터 정도를 더 걸어야 합니다.
"아빠 이제 밥 먹자.""아직 정상이 아니잖아. 더 올라가야지.""배고프단 말이예요.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을 안 갈 수 있니.""배가 고파요.""금방 다녀오니까? 올라가자. 엄마도 오셨네."막둥이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습니다. 일단 마음을 정한 막둥이 힘차게 내달렸습니다. 첫 시작은 이렇게 잘합니다. 다행히 정상까지는 가파르지 않고, 300미터 거리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내 도착했습니다.
"아빠 이제 내려가면 밥 먹을 수 있지?""그럼 막둥이 많이 많이 먹어라!""알았어요? 오늘 충무김밥이죠.""응, 충무김밥.""나도 충무김밥 좋아해요.""아빠도 좋아한다."
주저앉아 충무김밥을 먹는 막둥이. 보기만해도 좋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 긍정적인 사고, 누구하고도 잘 어울립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보니, 선생님하고도 많은 대화를 했답니다. 물론 형들하고도 말이죠.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겁많은 막둥이 가파른 길에 자꾸만 미끄럼틀을 탑니다.
"아빠 겁나요. 자꾸 미끄러져요...""뒤돌아보지 말고, 앞과 아래를 봐야지."
"아빠 무서워요.""말 좀 그만하고 앞을 보고 가자니까!""서헌이가 손 좀 잡아주렴.""체헌이는 힘들면 손 잡아 달라고 해요?"
딸 아이는 영락없이 누나입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화장실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디 멀리가면 손을 꼭잡고 다녔습니다. 자기는 힘들어도 항상 동생을 챙겼습니다. 중1, 초등5학년이 돼 막둥이는 동생이고 딸이 누나입니다. 그럼 막둥이는 누나 대접해줄까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혼을 내도 잘 안 됩니다. 아무튼 동생 손을 잡고 내려가는 딸 아이가 대견합니다. 그날 월아산에는 막둥이만 있었습니다.
'막둥아 누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서현이 같은 누나가 또 어디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