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참 오랫동안 안철수를 지켜봤다. 선거일을 한 달 앞에 두고도 지지할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투표권이 생긴 이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에게는 정통성이 있고, 안철수에게는 확장성이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은 노무현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고, 안철수는 정통 야당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행보를 계속해 왔다.
기존의 제3후보군과는 다른 안철수
주위 사람들에게 안철수 옹호를 상당히 많이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보수 언론이 안철수를 흠집 내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랬든, 아니면 박근혜 대세론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랬든, 이도 저도 아니면 박근혜 후보를 이길 유일한 후보라는 전략적인 판단이 들어서 그랬든, 안철수에게 보내는 의심 어린 눈초리를 해소해 주는 의견을 많이 피력했었다.
대표적인 의구심은 검증되지 않은 그의 정치적 역량이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우수한 두뇌에 벤처 회사를 일군 경영 능력이 더해지고 V3를 무료로 배포했던 사회적 책임감까지 리더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정치적 리더십은 새롭게 검증해 봐야 할 분야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안철수는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대통령 선거 제3후보군 가운데에서 내가 가장 큰 지지를 보낸 인물이다. 아니 개인적인 '나'를 넘어서 정통 야당 세력에게 안철수만큼 지지율과 성원의 힘이 컸던 후보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정통 야당 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민주통합당 계보의 이전 정당의 대선 후보를 일관적으로 지지하였던 매우 다양한 사람들의 추상적 집합체를 의미한다.
제3후보의 계보를 훑어보자면 직전 선거에서는 고건과 문국현 등이 있었고, 그 이전 선거에서는 정몽준이 있었고, 또 그 이전에는 이인제,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정주영, 박찬종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을 고르라면 문국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수 세력의 범주에 속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가 자신의 한계를 내보이고 추락하고 말았다.
안철수도 그렇게 되리라고 비웃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보수층을 중심으로 그런 여론몰이를 많이 해나갔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대통령 후보 안철수를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현대 정치사가 겪어 왔던 제3후보군의 계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안철수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안철수는 제3후보의 전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지지율의 고공행진을 유지하여 왔다. 사람들이 지겨워할만하면 한발짝씩 전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율을 유지하는 고도의 타이밍 전략을 구사하였고, 자신이 새누리당의 집권 연장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지지율 유지의 핵심인 정통 야당 세력의 지지를 끌어내는 정확한 스탠스를 유지하였다. 그러면서 정치 혁신의 어젠다를 선점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와 구태 정치의 대결이라는 프레임 전략을 구사하는 등 정치학 교과서는 다 섭렵한 정치인이란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안철수의 위기 그러나 지난 주를 기점으로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다자 대결과 단일 후보 적합도 지지율에서 문재인에게 추월을 허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박근혜와의 양자 대결에서는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한번 삐걱거리면 지지율이 출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나타난 이상 불안한 우위일 따름이고 만약 지지율의 하락세가 경향적으로 나타난다면 정말로 장담할 수 없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여기에 14일 오후에 있었던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은 많은 야당 지지층에게 안철수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정치 혁신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라는 의견과 지지율 하락에 대한 정치 공학적 선택이라는 의견이 대립했지만, 아무래도 전격적인 협상 중단에 짜증을 낸 사람들이 좀 많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를 두고 유시민은 "(축구로 보면) 몸싸움하면서 (문 후보측이) 어깨로 좀 밀었는데, 안 후보쪽이 그라운드에 누워서 심판한테 '경고장 내라' 이렇게 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촌평을 했고, 진중권은 "민주당이 안철수에게 좀 져줘도 된다. 안철수 캠프 요구대로 민주당이 좀 더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안철수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힘을 실어준 진중권의 멘트에서도 안철수에게 불리한 프레임이 하나 있다. 바로 '좀 져줘도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문재인의 상승 모드에는 민주당 측이 일관되게 제기한 '맏형론'이 국민들에게 먹혀 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큰 형처럼 문재인 후보에게 안철수의 문제 제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했고, 단일화에 대해 내놓는 대안들의 논리도 설득력이 있었다. 단일화가 중요한 사안이고 이를 위해 방법론을 양보할 수 있다는 것과 남은 시간 관계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충분히 정통 야당 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 화법이었다.
물론 조직이 열세인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후보에게 끊임없이 요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지지율의 우위에 있는 후보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치게 한 측면이 분명이 있다. 지난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은 내부에서는 설득력이 있었을지 몰라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약간 뜬금없기 때문이었다.
안철수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캠프의 반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뉴시스 보도에 의하면 안철수 캠프는 작금의 사태를 두고 '정치 9단에게 당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상당히 징후가 안 좋은 캠프의 반응이다. 왜냐하면 역대로 정치권 경력이 일천한 후보들이 열세에 돌입할 때 나오는 천편일률적 반응이 정치적 술수에 당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정치력과 정치적 술수는 어감이 180도로 다르지만, 차이는 백지 한 장도 나지 않는다. 정치란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고도의 심리 게임이다. 어떤 정치인은 심리 게임에만 매몰되어 정치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잃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정치에 뛰어 들었다가 처절히 실패하고 '정치와 자기는 생리상 맞지 않는다'는 식의 위안을 하기도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정치는 정치권에서 많이 회자되는 경구처럼 '쓰레기통에서 피는 장미요,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과도 같은 것이다. 쓰레기통과 진흙에서 구르며 내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쓰레기와 진흙 밭에서 꽃을 피워내야 한다는 당위를 망각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정치의 숙명이자 묘미와도 같은 것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
관련기사 : 박근혜와 문재인, 닮았지만 다르다)에서 안철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그의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해 본 적이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제는 안철수 후보의 정치력을 시험해 볼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안철수에게 지지율 하락이라는 위기가 찾아왔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그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된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하자면, 야권 단일 후보 국면에서 위기를 맞이하여 능력을 검증해 보는 것이 낫지, 본선 국면에서 검증하는 것은 성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매우 위험한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의 독배는 왜 성공했을까 마지막으로 정통 야당 세력의 일원으로서 어떤 사람이 야권 단일 후보가 되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지지율이 엇비슷한 후보들끼리의 단일화 성공 사례는 마지막에 사단이 나기는 했지만, 2002년도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사례가 유일하다. 1997년의 이회창-조순의 단일화나 DJP 연대의 경우에는 지지율 편차가 크게 나는 와중에 이루어져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2002년 단일화가 가능했던 것은 여론조사 지지율이 열세였던 노무현 후보가 여론조사 단일화 방안을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 후보의 최측근 인사가 여론조사 분석 파일을 들고 단일화 수용을 거둘 것을 진언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두 가지를 명분으로 삼았다. 하나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단일화를 수용했을 경우에만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단일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정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즉 자신의 단일화 수용이 대한민국의 민주 정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자신이 단일 후보가 된다면 그것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패배하였을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만약 합의된 룰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하고 패배를 한다면, 패배한 후보가 진심으로 승리한 후보를 위하여 열심히 뛰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하여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노무현 후보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만약 패배했을 경우에 대비한 자신의 행로까지 결정을 하고 그는 불리한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 후보 선정 방식에 합의하였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노무현 후보가 독배를 마셨다고 표현했지만, 결과는 노무현의 승리였다.
이런 후보가 필요하다 나는 패배할 수도 있다는 성찰을 하는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를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어떻게 올바른 물줄기로 돌려놓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후보를 찾을 것이다.
물론 명시적으로 그런 후보가 표면 하에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그런 후보를 판단한 후에 결정을 하여도 왜 그가 그런 후보인지를 제3자에게 명확하게 설명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보다 문학이 사회에 관한 더 심도 깊은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듯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고도의 심리 게임인 정치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가 정치 전문가에게 위임을 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가진 공직자를 맡을 정치 전문가는 대중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하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권력의 소유와 집행은 대중들과 부단한 소통과 맥락의 교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대중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장미꽃을 피워낼 수 있는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야권 단일 후보 선출 과정은 좀 더 치열하고 좀 더 힘들어도 상관이 없다. 우리는 철학을 가진 강자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본선에서는 박정희라는 거대한 후광을 업고 있는 박근혜 후보가 버티고 있다.
대통령은 미래의 비전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과 함께 그것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강한 후보, 그것이 야권 단일 후보에게 요구되는 2가지 덕목이다.
21일은 야권 단일 후보 선정을 위한 TV 토론이 있고, 그리고 단일화 룰을 확정하기 위한 지루한 협상이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 모두가 누가 단일 후보가 되면 좋을지 판단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거의 막바지에 온 것 같다. 지루하고 힘들어도 막바지를 버티고 인내해야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버텨야 한다. 인생에서 태어나는 순간이 매우 고통스럽긴 해도 본 게임은 태어난 이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