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1호기의 설계수명 만료일인 20일 오후 7시, 경주 시내 KT앞 광장에서 '시민 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의 이름은 '굿바이 월성 1호기'. 스스로를 '노래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가수 임정득씨가 초대손님으로 참여한 가운데 대부분의 공연을 시민들이 직접 소화해낸 점이 돋보인 특이한 문화제였다.
첫 공연은 경주환경운동연합의 집행위원들이 맡았다. 김익중, 이문희씨 등이 기타를 연주하고 하모니카를 불면서 노래까지 열창했다. 자연스레 시민들의 노래 동참이 어우러졌다.
'탈핵송'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노래 '버섯구름'이 끝나자 "앵콜" 환호가 이어졌다. 다음 노래는 '우산 셋이 나란히'의 곡에 개사를 한 '핵우산'. 노래를 미처 알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순서지 뒷면에 가사를 인쇄해 두었기 때문에 저절로 합창이 되었다.
방사능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방제복을 입고서 학교 갑니다.고리 월성 울진 영광 많기도 하지쬐끄만 땅떵이에 우짤라 그래?후쿠시마 되기 전에 폐쇄합시다.
두 번째 순서는 체르노빌 참사 광경을 화면에 보여주는 '영상 1'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등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계속 화면을 장식하자 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 사이에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특히 '수술이 불가능한 종양' 피해자의 사진은 처음 보는 시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로는 100일 동안 경주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기록사진을 '영상 2'로 화면에 실었다. 강선래, 김성대, 김영문, 김익중, 김차경, 김태분, 김홍섭, 남승준, 박만호, 박장근, 박진영, 박철호, 서혜영, 성종수, 오세용, 윤명희, 윤영대, 이광춘, 이동원, 이문희, 이상홍, 이순옥, 이재근. 이정호, 이종표, 이현정, 이훈우, 정순태, 정슬아, 정은민, 정침귀, 정현걸, 조관제, 천은아, 한영태, 함원신…
이어서 김성대 경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의 오카리나 연주가 펼쳐졌다. 연주한 노래는 '칠갑산'과 이문세의 노래 '사랑이 지나가면' 두 곡.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년 고도'의 밤하늘을 적시는 오카리나 소리는 월성원전 1호기가 계속 가동될 때의 경주 '공기'를 상징하는 듯 애잔했다.
어린 학생들도 나섰다. 도시에서 시골로 '거꾸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대안학교로 2002년에 문을 연 경주시 서면 아화동 소재 '도리산촌 유학센터(센터장 함원신)' 아이들이 북 공연을 선보였다. 검은 망또 차림에 활기찬 동작으로 북을 치는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에 시민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지도교사는 김정은씨.
이번에는 자칭 '숏다리 춤선생'으로 자신을 재미있게 소개한 시민 이남희씨가 나섰다. 이남희씨는 '강남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조성으로 시민들을 함께 춤추게 만들었다. 월성원전 1호기 재가동을 막아내자는 취지로 여겨지는 '두더지 밟아' 구호를 이씨가 선창하자 시민들도 복창을 하면서 흥겹게 몸을 흔들었다.
문화제의 대미는 스스로를 '노래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가수 임정득씨가 장식했다. 그녀는 '소금 꽃나무' 등을 열창했다.
거친 바람 불어와 작고 여린 나의 몸을 흔들어 상처내어도 짙은 어둠속에서 홀로 지샌 많은 밤에 내 영혼 지쳐만 가도 내가 바라는 아주 작은 소망 하나 나의 작은 꽃 하나를 피우는 것 나의 목숨이 결국 다한다고 해도 나의 꽃을 피우고야 말 테야…문화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한 시민에게 기자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오늘이 월성원전 설계수명 만료일인데 폐쇄가 확정되었나 어찌되었나, 하는 질문이었다. 전직교사 김윤근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있겠지요. 폐쇄할지 또 가동할지… 눈치 살피는 게 저 사람들 전문 아닙니까? 대통령 잘 뽑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