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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못 말리는 애서가 김삼웅 선생은 '연중 집필' 대가이다. 집게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힐 수밖에 없는 볼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집필 작업을 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누구도 못 말리는 애서가 김삼웅 선생은 '연중 집필' 대가이다. 집게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힐 수밖에 없는 볼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집필 작업을 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박종근

-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전으로 쓴다면 책 제목은?
"박 전 대통령은 왕조적인 권위주의와 마키아벨리즘을 지닌 인물이다. 또 일본군 사무라이 정신에 길들여졌다. '일본 군복을 입은 한국인'은 어떨까? 그런데 박정희 평전은 많이 나왔다. 난 오히려 박 대통령을 암살해서 역사 흐름을 바꾼 김재규 평전을 쓰고 싶다."

- 이명박 대통령을 평전으로 쓴다면?
"평전 쓸 가치가 없다. 굳이 쓴다면 '무지 이명박'? 사리 판단력과 역사의식이 부재하다. 근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지도자다. 철학이 없고 시대의식도 없다. 도덕성도 없다. 직간접적으로 압력이 들어왔지만 이 정권에서 관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독립기념관장직 사표를 냈다."

'평전의 대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69)의 막힘없는 즉석 인물 촌평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인물열전을 쓰는 그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08년 3월 독립기념관장 임기 6개월을 앞두고 자진사퇴했다. 그 뒤 4년여 동안 무려 11명의 평전을 썼다. 김 전 관장은 "현 정권 들어서 대학 강의가 무산되는 등 사회활동이 차단됐다"면서 "대통령 때문에 분노했는데 평전 작업에 전념할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맙다. 그런데 국가로 봐서는 비극"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책을 끌어안고 잠을 자기도...

지난 15일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아있는 큰 책장에서 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거실에도 책이 한 무더기 쌓여있었다. 안방과 건넌방을 한 바퀴 둘러보니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한번 산책하고 돌아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보자기로 감싼 고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소장한 장서는 무려 2만6천여 권이다. 지난 1년 동안에만도 300여권을 구입했단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보자기로 감싼 고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소장한 장서는 무려 2만6천여 권이다. 지난 1년 동안에만도 300여권을 구입했단다. ⓒ 박종근

거실 대형 유리창 밖으로 남한강이 시원스레 휘돌아가는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아파트 13층. 그가 이곳에 쌓아놓은 장서는 무려 2만6천여 권이다. 지난 1년 동안 300여권을 구입했단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모범 장서가상도 받았던 그에게 실례되는 질문을 던졌더니 "책값이 집값의 5배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아내 장인숙(62)씨는 우스개를 던졌다.

"아마, 마누라 랑도 바꿀 걸요. 책을 끌어안고 자기도 합니다."

- 사모님이 한 말이 사실인가요?
"책을 아내와 바꾸기야 하겠나. 그런데 좋은 책을 보면 그립던 연인을 만난 것 같다. 권력이나 명예, 돈을 탐하지 않고 살고자 했는데 책만 보면 욕심이 난다.(웃음) 가끔 책을 보다가 끌어안고 잔다. 함석헌 선생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뜻으로 본 역사) 같은 책이 그렇다."

누구도 못 말리는 애서가 김삼웅 선생은 '연중 집필' 대가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 5월6일부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김삼웅의 인물열전' 블로그에 평전을 올렸다. 안중근, 장준하, 조봉암, 김대중, 리영희, 김상덕, 이회영, 송건호, 노무현, 이승만, 김근태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역사의 인물들이다. 2백자 원고지에 이들의 뼈를 세우고 살을 붙였다. 그리고 영혼까지 불어넣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집을 가득 채운 책들이 평전을 만드는 엔진인 셈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인터넷 시대에 블로그로 올린 고리타분한 역사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먹힐까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의 블로그는 지난 10월24일 5백만 방문자를 넘어섰다. 한 분야만을 다루는 블로그인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방문자수는 보기 드문 기록이다. 한 인물당 평균 50만 방문자가 구독한 것이다.

- 4년 넘게 거의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30대에 작심한 게 있다. 60대까지 20-30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와 통일운동가, 민주화운동가 중에서 자신의 철학을 실천한 분을 골라 평전 쓰겠다고. 나름대로 인물을 선정해서 자료를 모았다. 1980년 후반에 박열 평전을 쓴 뒤에는 언론사에서 일하고, 대학 강연을 하고, 독립기념관장을 하면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도움'을 줬다."

집게손가락에 굳은살 박인 까닭

 누구도 못 말리는 애서가 김삼웅 선생은 '연중 집필' 대가이다. 아직도 볼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집필 작업을 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소중한 원고지와 안경, 그리고 펜.
누구도 못 말리는 애서가 김삼웅 선생은 '연중 집필' 대가이다. 아직도 볼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집필 작업을 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소중한 원고지와 안경, 그리고 펜. ⓒ 박종근

- 어떤 방식으로 집필하나?
"20-30년간 축적한 자료가 있고, 또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사람을 인터뷰 한다. 그런 뒤에 바로 여기(거실 소파)에서 원시적인 작업을 한다. 볼펜을 들고 200자 원고지에 글을 채워 넣는다. 집사람이나 우리 딸이 내가 쓴 원고를 컴퓨터로 옮긴다. 그럼 내가 교정해서 일주일분 원고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한다. 이 작업은 집사람이 한다. 거의 매일 작업을 하니 집게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다. 아마도 지금까지 쓴 원고지를 쌓으면 내 키의 두 배는 될 것이다."

- 집필 때문에 생긴 병은 없나?
"유신 때와 5공화국 때에 남산에 붙들려가서 고문을 당했다. 근육통 약이 상비약이다. 그리고 구둣발로 가슴을 밟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 데 하루에 두 번씩 심장 약을 먹는다."

- 블로그 방문자가 500만을 돌파했다. 파워 블로거다. 구닥다리 같은 형식의 평전이 인터넷 시대에도 인기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역사 인물에 대해 이름 석자 밖에 몰랐던 사람이 많다. 그런데 여전히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 생애에 대한 목마름도 많은 거 같다. 김근태 평전 연재를 끝낸 지 일주일 지났는데 어제도 5000명이 클릭했다. 김상덕,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나 송건호 같은 언론인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학교 교육이나 우리 사회가 그런 분을 잊어버리고 기록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 김삼웅 인물열전 블로그에 실린 평전 가운데 10명에 대한 평전이 이미 책으로 출판됐다. 인터넷에서의 열기가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 평전을 온라인에서 다 볼 수 있어서 출판사 쪽에서는 불만이 있다. 인터넷에는 맛보기만 올리자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부했다. 책이 덜 팔리더라도 젊은 세대에게 훌륭한 분들의 삶과 가치를 전파하는 게 더 소중하다."

 "함석헌이 추구한 저항은 반외세 민족 자주독립 민주주의 인권이었다.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저항인 함석헌 평전> 연재를 계획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함석헌이 추구한 저항은 반외세 민족 자주독립 민주주의 인권이었다.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저항인 함석헌 평전> 연재를 계획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박종근

- 평전을 쓸 인물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실천해 온 인물이다. 변절하거나 회절하지 않고 끝까지 올곧게 살아온 인물이 대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근태 전 의원은 당초 명단에 없었다. 1980-90년대에 그들의 삶을 지켜봤는데 노 전 대통령의 정치 행로는 인상적이었다. 김근태 전 의원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면서 민주주의를 세웠다.

명단에 넣었다가 뺀 사람도 있다. 이후 행적이 바르지 못하고 현실에 타협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전기나 기록이 지나치게 미화됐기에 이를 바로잡으려고 평전을 썼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영희 선생님은 살아계신 동안에 평전을 쓰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생존한 인물의 평전은 쓰지 않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

일제 강점기에 나온 최고의 글은?

-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것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총 17명에 대한 평전을 썼다. 그 중 가장 존경하거나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젊은 때부터 단재 신채호 선생을 좋아했다. 신채호 선생은 성균관에서 박사가 됐다. 나는 성균관대학에서 교수를 했다. 신채호 선생은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했는데 나도 같은 곳에서 주필을 했다. 신채호 선생은 언론인이면서 사학가이고 독립운동가였다. 개인적으로 그를 닮고 싶어서 언론계에 몸 담았고 역사를 공부했다.

신채호 선생이 8년 동안 옥살이한 여순감옥에 10번 이상 가서 체취를 느꼈다. 일제 때 순국했는데 화장터도 내가 처음으로 발굴했다. 그는 아나키스트이고 문학인이다. 평전은 아니지만 전기도 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건은 '조선혁명선언'이다. 독립운동 일제강점기에 나온 수많은 문건 중에 신채호 선생이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선생의 요청으로 쓴 '조선혁명선언'이 가장 으뜸이다. 그 분을 닮고 싶지만 여전히 못 미친다."

 함석헌 선생과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함석헌 선생과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 박종근

- 살아 생전에 각별한 인연을 맺은 인물이 있나?
"함석헌, 장준하, 김대중, 노무현, 리영희 정도다. 10대 후반부터 사상계를 통해서 함 선생의 글을 읽고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보면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장준하 선생도 젊은 시절에 여러 차례 만났다. 내가 1968년에 사상계 신인 논문상에 입선 하기도 했다. 1975년 장준하 선생이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 당했을 때 여러 차례 진상규명을 위해 그 곳에 갔다. 그해 11월호 '씨알의 소리'에 '약사봉 계곡의 진혼곡'이라는 의문사 내용의 글을 썼다가 수사기관에 불려간 적도 있다. 

리영희 선생은 6개월간 주말에 만나서 인터뷰를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함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 총재할 때 평민신문 주간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독립기념관장 공모에 응모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조중동'이 악을 쓰면서 나를 반대했다. 최종 심사에 올라갔을 때 노 대통령이 그 이유를 물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참모들이 내가 '독립기념관 사외이사를 하고 있을 때 친일행적 조선일보 윤전기를 철거한 것에 대한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라고 말하자 노 대통령이 '그럼 적격이구만!'이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원고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 혹시 평전을 쓰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
"여러 차례 있었다. 신채호 선생의 삶을 그릴 때도 그랬고, 노 전 대통령이 그날 부엉이 바위에 올라섰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떠올렸을 때 울컥했다. 그보다 훨씬 더 악한 이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호의호식하며 만수무강하는 데 그는 왜 그랬을까? 어찌 보면 순결한 영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을 당하면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반독재 투쟁을 했는데, 아내에게 약속을 한 게 있다고 한다. '내가 5년 이상 징역형을 받으면 언제든 고무신 거꾸로 신어도 된다'는 것. 그런데 실제로 5년형을 받은 날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당신에게 고무신을 거꾸로 쓸 자유를 주겠다'고. 말은 쉬운데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누구도 못 말리는 애서가 김삼웅 선생은 '연중 집필' 대가이기도 하다. 안중근, 장준하, 조봉암, 김대중, 리영희, 김상덕, 이회영, 송건호, 노무현, 이승만, 김근태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역사의 인물들이다. 2백자 원고지에 이들의 뼈를 세우고 살을 붙였다.
누구도 못 말리는 애서가 김삼웅 선생은 '연중 집필' 대가이기도 하다. 안중근, 장준하, 조봉암, 김대중, 리영희, 김상덕, 이회영, 송건호, 노무현, 이승만, 김근태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역사의 인물들이다. 2백자 원고지에 이들의 뼈를 세우고 살을 붙였다. ⓒ 박종근

- 평전을 계속 쓰는 이유는?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할 운명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바른 길을 의롭게 걸어도 다 못 걷는 게 인생이다. 독재의 하수인이 되거나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기업주를 비호하던가, 국민을 현혹하는 언론에 종사하던가, 정의를 뒤바꿔버리는 법조인이 되어야 할까?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당대에는 편할지 몰라도 역사의 필주를 받는다. 후손들의 앞길도 막는다. 내가 쓴 평전을 접한 분이나 젊은 세대들이 훌륭한 분들의 삶을 따라 정도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 평전 작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를 쓰다 보니 그들이 내 삶의 기준이 됐다'. 그리고 종이 주인의 발을 씻겨주다 보면 자기 손이 깨끗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훌륭한 삶을 추적하다보니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지침이 생겼다. 또한 자신만을 위해 산 인물들의 행적을 보면서 내 삶에 때를 묻혀서는 안 된다는 자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저항인 함석헌 평전>블로그 스킨.
<저항인 함석헌 평전>블로그 스킨. ⓒ 박종근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

- 함석헌 평전이 곧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고 싶나?
"우선 100년이나 500년 후에 사가들은 서슴지 않고 20세기 한국의 사상가로 함석헌 선생을 꼽을 것이다. 함 선생은 12살 때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다섯 명과 함께 손가락에 먹물을 묻혀서 단지동맹과 비슷한 것을 했다. 일본 식민지 시대 때 4차례, 소련군에게 두 차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 때 투옥까지 합해서 수십 번 감옥에 갔는데도 비폭력으로 불의에 저항했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평화였다. 우리는 그를 '싸우는 평화주의자'라고 불렀다. 동서양의 사상 종교 철학을 융합시키는 종합적인 사상가다."

- 함석헌 선생의 '씨알' 사상에 대해서도 소개를 한다면?
"씨알은 피지배 백성 민중 서민 대중 같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없는 피압박 민중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대부분 변절하거나 반역하는 잘난 권력자들과는 달리 민중들은 나라를 지켰다. 명나라, 청나라, 일본, 미군, 독재 정권에서도 나라를 지킨 건 민중이었다. 민중들을 위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인데, 함 선생은 지식인들마저 오염됐을 때 씨알들이 알아듣기 쉬운 구어체 문장으로 민중을 깨우쳤다. 우리 역사에서 흔치 않는 인물이다."

- 함 선생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젊을 때는 그를 모셨고 인터뷰도 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씨알의 소리'를 인쇄하지 못할 때 내가 일했던 민주전선 인쇄소에서 몰래 인쇄를 해주기도 했다. 함 선생은 기독교인이면서도 허위의식이나 권력에 분노해서 무교회주의를 지향했다. 노동을 하면서 1일1식 주의로 버텼다. 자신을 '신천옹 바보새'라고 말했다. 처세를 할 줄 모른다는 말인데 스스로 겸양을 했고 나라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모세처럼 빈들에 서서 바른 말을 했다. 5.16때 지식인이 침묵할 때, 1965년 사상계 6월호에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을 써서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말문을 틔웠다. 쿠데타 세력에 경종을 울렸고, 이승만 시대에는 이승만 부인을 '경무대의 늙은 여우'라고 표현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기독교의 파벌주의를 공격하기도 했다. 평생을 서민들과 함께 살아온 선지자다."

 "100년이나 500년 후에 사가들은 서슴지 않고 20세기 한국의 사상가로 함석헌 선생을 꼽을 것이다"라며 <저항인 함석헌 평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100년이나 500년 후에 사가들은 서슴지 않고 20세기 한국의 사상가로 함석헌 선생을 꼽을 것이다"라며 <저항인 함석헌 평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박종근

비밀결사가 아니라 '투표'로 저항하라

- 새로 연재하는 평전의 제목이 '저항인 함석헌'이다. 당시의 저항과 2012년대의 저항의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다면.
"함석헌이 추구한 저항은 반외세, 민족, 자주독립, 민주주의, 인권이었다.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민족, 자주, 통일, 인권, 평등과 분배정의가 필요한 시대다. 함 선생이 추구했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때는 외세와 독재정권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비밀결사도 만들었지만 지금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역사를 바꿀 수 있다. 투표마저 하지 않는 유권자는 노예근성을 가진 것이고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중국 혁명 문인인 루쉰도 비참한 처지의 노예를 동정하지 않고 질타했다. 헌법상 명시된 주권행사를 못하는 것은 노예근성이다. 도끼로 자기 발만 찍는 게 아니라 남의 발까지 찍고 후손들에게 죄업을 주는 행위다." 

- 함 선생님은 많은 글을 남겼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글이 있다면?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추천하고 싶다. 일제 강점기에 오산학교 교사생활 하면서 성서조선에 연재했던 글을 해방 후에 보완해서 쓴 글이다. 이것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썼던 민족사관과 비견되는 씨알사관이자 민중사관이다. 30대 때 함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백범일지>를 보지 않은 사람과는 한 시간 이상 대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오만했지만 그럴 정도로 영향을 줬다."

 "MB는 아마추어 수준이다. 박근혜 세력이 집권한다면 국민들은 다시 한 번 피눈물을 쏟아야 한다. 만약 두 사람이 단일화를 못하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야권 두 후보의 단일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MB는 아마추어 수준이다. 박근혜 세력이 집권한다면 국민들은 다시 한 번 피눈물을 쏟아야 한다. 만약 두 사람이 단일화를 못하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야권 두 후보의 단일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박종근

이날 인터뷰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블로그 500만 돌파 기념으로 마련됐다. 그런데 김 전 관장은 대선을 앞둔 정국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최근 대선 정국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 평전을 쓰다보면 사람을 보는 안목도 다를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가 부친과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박근혜 후보는 20대 때부터 유신의 핵심에 있었다. 민주적인 교육이나 인권, 남녀평등 사상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의 전근대적인 사고에 혈연적으로 깊숙하게 젖어 있다. 박정희기념사업회 정도는 할 수 있지만, 한 국가의 리더로서는 시대정신과 걸맞지 않다.

안타깝지만 그런 분이 집권하면 대외적으로 '코리아'가 어떻게 비춰질지 우려된다. 가령 북한에서는 독재자가 3대 세습을 하고 남한에서는 독재자의 딸이 최고지도자라니...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격이 어찌될 지 우려된다. 천안함 사건 때 우스개로 이런 말이 나돌았다. '이명박은 안 해본 게 없고, 김정일은 못한 게 없고, 박근혜는 해본 게 없다'고."

-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우선 문재인 후보는 순수한 사람이다. 비정치적인 정치인이다. 젊은 시절부터 반독재 투쟁으로 일관해온 법조인이다. 안철수 후보는 우리 제도 정치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데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그 분 역시 어떤 물욕이나 권력욕이나 감투욕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90년대를 살아오면서 저런 사람들이 자기 직분을 지키면서 성장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 진보, 평화, 개혁 세력이 그만큼 폭이 넓어진 것이다."

- 두 후보의 단일화 문제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단일화는 논리나 철학 이전에 당위다. 역사적 시대적 현실적인 당위다. 당위 앞에 작은 논리, 정책, 이런 것은 하위 개념이다. 해방 후에 김구와 이승만이 뜻을 모았으면 분단이나 미군정이나 해방 후사는 원천적으로 달라졌다. 50년대의 조병옥, 장택상 등 민주당 세력이 조봉암을 받아서 진보개혁을 했다면 자유당과 이승만이 그렇게 12년간 전횡을 일삼으면서 독재를 못했을 것이다. 죽산 조봉암도 죽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민주당 뿌리인 윤보선과 장면이 4.19 후에 협력했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서 평화통일의 길로 한발짝 나아갔을 것이고 착실하게 경제발전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분열을 해서 박정희에게 5.16 쿠데타 소지를 제공했다.

80년대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분열했다. 민주세력이 분열했고 영호남이 분열했다. 결국 군부세력이 5년간 집권하는 역사의 반동을 만들었다. 이런 아픈 역사의 교훈을 두 사람이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의 노선과 시대정신과 철학이 비슷하면 한 사람은 양보해서 대통령을 하고 한 사람은 민족 지도자가 되면 된다. 5년짜리 대통령보다 500년 동안 민족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소중하다. 양보한 사람의 평전을 쓰고 싶다."

- 만약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유신 때부터 권력의 맛을 알아온 독재세력과 이명박 세력 등 역사의 물꼬를 역류한 세력이 박근혜 후보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박근혜 세력이 집권한다면 국민들은 다시 한 번 피눈물을 쏟아야 한다. 만약 두 사람이 단일화를 못하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평전#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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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2000년 2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모바일팀에서 오마이뉴스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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