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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실크로드에 들어섰다. 우리 일행은 7월 16일 서안을 떠나 400킬로미터를 달려 감숙성 제2의 도시 천수(天水)에 도착하였다. 천수는 한무제 때 조성된 도시로 장안을 떠나 실크로드에 들어선 여행자에게는 첫 관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석굴이 있는 맥적산은 마치 산 전체가 벌집인 것 같다.
석굴이 있는 맥적산은 마치 산 전체가 벌집인 것 같다. ⓒ 박찬운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맥적산(麦積山 :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산 모양이 보리가마를 쌓아 놓은 형상이라는 데서 나왔다 함) 석굴을 보기 위함이다. 이 석굴은 막고굴, 운강석굴, 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4대 석굴 중의 하나로 불린다.

천수 시내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를 가면 맥적산 석굴에 들어서는데 멀리서 보면 벌건 황토산에 마치 큰 벌집이 촘촘히 박힌 것 같다. 150미터 높이의 맥적산에 석굴과 감실 194개가 높이 20미터에서 80미터 사이에 빼곡히 박혀 있다. 이 석굴은 위진 남북조 시대부터 조성되어 수, 당을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조성되었다.

 맥적산 석굴에는 이런 석태니소 조각 불상들이 수도 없이 많다.
맥적산 석굴에는 이런 석태니소 조각 불상들이 수도 없이 많다. ⓒ 박찬운

이곳에서의 관광 포인트는 안내자의 말대로 조소(彫塑) 예술의 유물을 눈여겨 보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석굴에 불상들이 놓여 있는데 이들 불상은 대부분이 진흙으로 빚은 소위 이소(泥塑) 예술품이거나 사력암으로 된 맥적산의 암석을 이용하여 대체적인 틀을 만든 다음 진흙을 입혀 다듬은 석태니소(石苔泥塑) 작품이다. 약 7천 개 이상의 조소 작품이 이 석굴에 포진해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천불동은 이런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천불동은 이런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 박찬운

석굴의 크기는 제법 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작은 것들이다. 석굴과 석굴은 절벽 위에 가설된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관광객은 일렬로 신중히 조심해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런 중에도 우리를 안내하는 아리따운 전문 해설사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주요 석굴을 보여 주며 거침없이 해설을 한다.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때 우리 일행 중에 한 사람이 그녀가 언젠가 우리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나왔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자 너도나도 함께 사진 찍자며 해설사 옆에 선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 한계의 실험터, 난주로 가는 길

 난주로 가는 길,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은 황량한 산악지대라도 밭이 되었다. 저것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을까.
난주로 가는 길,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은 황량한 산악지대라도 밭이 되었다. 저것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을까. ⓒ 유창재

우리 일행은 7월 17일 오후 천수를 떠나 300킬로미터를 달려 늦은 오후 감숙성의 성도 난주(蘭州)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산천의 변화를 통해 점점 건조기후대로 들어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들에는 나무 하나 없는 곳이 많았고, 수목이 있다 해도 작은 관목과 박토에서 자라나는 이름 모를 풀들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척박한 산야 대부분이 계단식 밭으로 개간되어 밀과 옥수수가 자라나고 있었다. 강인한 인간들이 수백 년 전부터 농토를 일구기 시작했고, 특히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후에는 그 속도를 더 높인 모양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 한계를 실험한 냉엄한 삶의 현장이었다.

황하와 기암기석의 절경, 병령사 석굴

 병령사 석굴, 높이 30미터의 대불이 보인다. 169호굴은 대불 바로 위에 있다.
병령사 석굴, 높이 30미터의 대불이 보인다. 169호굴은 대불 바로 위에 있다. ⓒ 박찬운

난주에 온 목적 중 하나는 실크로드 석굴 문화의 보고인 병령사 석굴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7월 18일 아침 일찍 병령사를 향해 달렸다. 난주 시내에서 버스로 2시간을 이동하여 한때 아시아 제1의 댐이었다고 하는 유가협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쾌속 보트로 갈아타 50여 분을 더 가니 드디어 황하강과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병령사 석굴이 보인다. 원래 병령(炳灵)이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십만'이라는 뜻이니, 곧 많다는 의미다. 그러니 병령사 석굴은 병령사 천불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 석굴도 맥적산 석굴과 같이 대체로 위진 남북조 시대부터 조성된 것으로 1600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견뎌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석굴은 수, 당 시절 활발히 조성되었으나 청 말기에 많이 훼손되었다. 가장 볼 만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절벽에 조성된 30미터짜리 대불이다. 비록 그 크기는 사천(쓰촨)성의 낙산대불에 못 미치지만 그 위엄만은 대단하다.

이 석굴 또한 맥적산 석굴과 같이 조소미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석굴 곳곳에 부처와 보살,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들이 진흙 조소상으로 남아 있다. 다만 그 수나 보존 상태는 맥적산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령사 석굴 앞을 흐르는 황하와 기암괴석의 절경.
병령사 석굴 앞을 흐르는 황하와 기암괴석의 절경. ⓒ 박찬운

이곳은 유가협댐 건설로 인해 수위가 높아져 몇몇 중요보물은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17미터 와불로 본래의 위치에서 건너편 기념관으로 옮겨져 있다. 한편, 이 석굴 중에서 제일 유명한 굴이 169호굴인데 특별히 관리된다 하여 특굴이다. 이 굴은 대불 바로 위에 위치한 것인데 들어가려면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엄청나 관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굴이라고 한다. 우리도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설명에 의하면 이 굴에는 병령사의 기원과 역사를 알 수 있는 대형 마애삼존불이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 바라다보이는 앞의 산봉우리와 황하의 경치는 압권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병령사는 석굴의 문화재적 가치도 좋지만 경치 하나만으로도 가 볼 만한 곳이다. 169호굴에서 보는 경치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석굴 주변을 거닐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병풍처럼 도열한 기암괴석의 산세, 유유히 흐르는 황하와 어우러진 병령사 석굴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능히 알고도 남았다.


#세게문명기행#실크로드#천수#맥적산#병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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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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