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난리를 치른 지 2년이 넘었다. 재작년 이맘때, 날이면 날마다 축생들의 살처분 소식이 어지럽게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해져왔다. 몇십만 단위에서 맴도는가 싶더니 어느새 훌쩍 백만 단위를 넘어섰고, 끝내 천만 마리가 넘는 짐승을 죽이고서야 반년 만에 겨우 구제역이 진정되었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서는 전시의 계엄령을 방불케 했다. 주요 도로의 경계에는 하얀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밤낮으로 차량을 향해 석회 가루를 뿜어댔다. 분사되는 방역액 속에 발암 물질이 있느니, 석회액이 바닥나서 수입을 하느니 하던 얘기들이 이제는 기억도 잘 안 난다. 정말 먼 나라 전설처럼 들린다. 과연 그래도 될까?
며칠 전에 1박 2일 동안 진행된 회의를 끝내고 우르르 식당으로 갔다. 인삼뿌리를 넣은 백숙을 파는 집이었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닭다리를 뜯었다. 나를 포함하여 겨우 네 사람만 되돌아 나와서 콩나물 국밥집으로 갔다.
이 단체 사람들은 구제역 때 생매장 되는 돼지들의 영상을 보면서 울먹이던 사람들이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야산에 파 놓은 구덩이로 포클레인에 떠밀려 떨어지는 돼지들의 비명 소리는 생지옥 바로 그것이었다. 오죽하면 몰래 잠입하여 촬영하던 동물 보호 단체 활동가의 숨죽인 흐느낌 소리가 돼지들의 비명 소리만큼 비통했을까.
구제역, 기억도 아스라한 이야기?
그런데 꼭 이만큼이란 말인가. 2년이 지났으니 다 잊어버리고 달걀에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도살당하여 백숙 집 가마솥에서 고아져 나온 닭을 먹어야 하는가 말이다.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가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 누군들 붙들고 물어보면 모두 정답을 말하리라 본다. 우리나라 축산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이다. 공장식 밀집 축산이 무슨 무슨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알면서도 태연히 고기 밥상 앞에 앉아 "그런 거 다 따지면 뭘 먹나? 죽을 때 죽더라도 먹을 땐 먹고 봐야지" 라는 한마디 말로 넘길 일인가 말이다.
공장식 축산의 반생명성에 대해 책도 많이 나왔지만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특집 보도가 줄을 이었었다. A4 용지 한 장 크기에 닭 한 마리가 평생을 갇혀 살아야 한다든가 0.7평(2.3제곱미터) 철제 우리 속에서 돼지는 오직 새끼 낳는 기계 취급을 당하면서 갖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3년이 못 되어 도살되는 현실을 안다. 이는 평균 수명의 반의 반의 반도 못 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안다.
소나 개도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 평균 수명 반의 반도 못 살고 죽임을 당한다. 짝짓기는커녕 어미와 새끼가 같이 살지도 못한다. 모두가 아는 사실들이다.
공중파 방송에서 '동물 복지'니 '축산업의 실태'니 하는 특별 방송이 줄을 이었고 내로라하는 정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특집으로 다루었었다. 특히 문화방송(MBC)의 <고기 랩소디>는 충격 그 자체였다. 현대 축산이라는 게 실은 인간이 저지르는 반지구적인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에둘러서 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다 구제역 사태 이후에 가장 보수적인 매체인 공중파 방송에서 내보낸 내용들이고 보면 우리 사회와 우리 지성이 얼마나 경각심을 다해 이 문제를 다뤘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말이다. 적어도 정상적으로 생각을 하는 생명체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자연수명의 반의 반도 살지 못하는 공장 축산 짐승들
2010년 10월 어느 날. 경상북도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다음해 5월이 되어서야 종료되기까지 우리 사회는 몸살을 앓았었다. 매몰지의 침출수 문제는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 중이다. 이 기간은 축산이란 이름으로 가해진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학대와 고문이 고스란히 인간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현실을 알게 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옳으냐는 것이다. 사료 작물 키우느라 농지들이 박살나고, 산림이 불타고 기상이변이 속출한다는 것을 다 안다. 육식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몸이 안 좋거나 말기 암 선고라도 받으면 누구나 고기부터 끊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다.
동물들을 가혹한 환경 속에서 배합 사료와 약물로 키우는 과정에 동물의 몸속에는 코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생겨나고 그것이 그대로 인간 몸속으로 전이되어 스트레스 수치를 올린다는 것도 웬만한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장식 축산은 인류의 식량 부족 문제를 악화시키고 물 부족을 가중시키며 생명 경시 현상을 만연시키고 있다. 이를 누가 모르는가?
그런데도 최근의 통계를 보면 놀랍기 짝이 없다. 2011년 한 해 동안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사람당 41킬로그램 이상의 고기를 먹어치웠다. 전해인 2010년보다 3킬로그램 정도 늘어난 수치다. 해산물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것이 구제역 참상을 막 겪고 난 바로 그해의 수치라는 것이 충격이다. 육식이 전혀 줄지 않은 것이다.
구제역 이후, 2년 남짓 되는 사이에 올 초에는 소 파동으로 한우 농가들이 보상을 요구하며 소를 몰고 거리로 나왔고 요즘은 돼지 값 폭락으로 돼지 농가들이 성명서 발표다 시위다 하여 소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 값이 떨어지자 어느 축산 농가에서는 소를 굶겨 죽이기까지 했다. 긴급 구조 조치도 거부하고는 축산 농가를 근본적으로 살려내라며 계속 소를 굶겨 죽였다. 인륜도 천륜도 사라져버린 갈 데까지 간 참상이었다.
이는 축산과 육식을 권장하는 시스템 때문이라고 본다. 구제역 이후에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구제역 파동을 겪은 나라 같지가 않다. 동물 복지와 환경 얘기가 식상하다면 구제역 당시에 애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거나 다쳤는지를 되돌아보면 된다.
중앙재난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2011년 3월 말 현재 구제역 방역 작업에 연인원 200만 명이 동원되었고 사상자만 172명이었다. 사망자 10명, 중상자 68명이 포함된 숫자이다. 인적 손실과 방역비를 제외하고 천만 마리가 넘는 짐승 매몰 보상비만 3조 원이 넘었다. 자. 이래도 공장식 축산과 육식 문제가 동물 얘기에 불과하고 환경 얘기에 불과한가?
구제역은 동물 병이 아니라 지독한 인간 전염병이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생석회를 제외하고도 길거리와 축사에 뿌려진 소독액은 온 국토를 약물로 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독 발암 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4.8톤이나 뿌려졌고 역시 독극물인 염화벤잘코늄은 12.3톤, 글루타알데히드가 63톤 이상 뿌려진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방역요원 1인당 평균 40톤의 소독액을 뿌렸으며 독성 발암 물질만 해도 1인당 0.7톤 이상 뿌린 것으로 나온다. 명칭도 왠지 끔직해 보이는 이런 독극물들이 거리와 차량과 축사에 살포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숨 쉬는 대기 속으로 퍼져 나가고 땅속으로 흡수되어 식수를 직간접으로 오염시켰다고 보면 된다. 규명해낼 수 있는 역학 조사가 있었다면 이런 독극물로 인한 인체 손상들이 지속적으로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양이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동네마다 축사가 다시 세워지고 있다. 농민 관련 신문은 늘 축산 농가 살려내라고 난리다. 식당마다 여전히 고기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마당에 공장식 밀집 축산 실태가 어떻고 생명의 존엄이 어떻다는 얘기를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막강한 세력으로 형성된 육식 산업 동맹이 눈에 선하다. 거리에서조차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담배를 나라에서 만들어 팔고 있는 짓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것은 마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 연평도에 투입된 국방 예산이 천문학적인 액수라는 것과 함께 보도되는 불량 군수품 납품 비리 등 국방비 떼어 먹는 도둑놈들 소식과도 같다. 서해 연평도에 긴장을 부추기면서 이익을 보는 동맹 세력과 육식과 밀집 축산의 동맹 세력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정부의 축산 선진화 대책이 나왔지만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축산 자체를 사양 산업으로 분류하여 극도의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턱도 없이 모자라는 미봉책이다. 그러럼에도 불구하고 이 축산선진화 대책을 놓고, 축산 사업가들과 정치인들은 축산 못해 먹겠다며 난리다. 이들은 뻔한 반발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축사 현실도 별로 바뀐 게 없다.
구제역이 가축들이나 걸리는 병이라는 생각에 머물면 안 되고 특급 인간 전염병이라고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어떤 전염병이 이토록 많은 사상자를 만들고 이토록 많은 비용을 물게 했던가?
구제역 희생 동물들에게 위령제라도...
구제역 사태 2주년이 되는 지난 달 말에 유일한 희망 하나를 발견했다. 직접 가본 어느 동물 농장이었다. 이름은 전남 고흥에 있는 '해원동물농장'이다. 여러 동물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작은 동물 농장 뒷산에는 동물 추모탑이 있었다. 이 추모탑을 보고 큰 충격과 함께 위안을 받았다.
우리 인간은 태풍이 불어서 사과가 떨어져도 보상이 나오고 홍수가 나서 집이 부서지면 임시로라도 거처 할 곳을 마련해준다. 돼지나 소는 아무 죄도 없이 집단 살육을 당하지만 보상은 축산업자가 받아먹고 정작 그 동물과 그 동물의 유족(?)들에게는 쥐뿔도 없다. 이 사실을 가만히 되새김질 해보자. 이게 옳은가를. 지구 차원의 정의에 부합되는가를.
구제역 방역 과정에서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보상이 나오고 추도식이 열렸다. 매년 기제사도 지낼 것이다. 천만이 넘는 동물들은 모두가 다 잊었다. 같은 종의 동물들은 다시 우리에 갇혀 사육되고 있다. 이게 정당한가? 지구 생명계 차원에서 보면 인간이 참으로 못할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래서 '해원동물농장'에 구제역으로 죽어간 동물 추모탑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수선재'라는 단체에서 만든 생태 공동체 안에 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아기 돼지의 이야기가 적힌 팻말 앞에서 전 인류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심정이 되었다. 이 추모탑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음으로서 추모탑이 최소한 나의 인간된 체면치레라도 하게 해준다는 기분이 들었다.
2년 전의 구제역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죽은 동물들에 대한 위령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천만 생명체들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밀집축산과 육식문제의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올 것이라 본다. 사람들의 건강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도 동물 복지가 필요하다는 말은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이 부끄럽다.
추모탑 안에 있는 아기돼지 이야기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영문도 모른 채 죽었습니다.극심한 공포 속에서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저보다 먼저 죽고 말았습니다.흙으로 하늘이 덮이고 숨이 막히자죽음을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죽음보다 더 한 것이 공포였습니다.생명이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아무도 모른 채 모두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으니까요.다시 태어난다면 마음껏 뛰어 다니고 싶고까르르르 웃으며 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