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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첫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첫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남소연

지난 11월 21일 열린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토론 이후에 또 다시 <오마이뉴스>로부터 대선 TV토론 관전평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얼떨결에 두 번 연속 TV 토론 관전평을 쓰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좀 부담이 되었다. 왜냐하면 공통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한 번씩의 질의-응답을 갖는 형태라는 토론 규칙을 보고 재밌는 기사를 쓰기 어려울지 모르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록 직업 기자는 아니지만, 어떤 것에 관하여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른바 '거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밋밋한 토론이 왔다 갔다 할 가능성이 농후한 방식에, 유력한 두 후보끼리 하는 상호 토론도 아니고 당선 가능성이 없는 제3후보도 끼어 있는 토론 방식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자칫 내용이 뻔한 것을 두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네 하는 인상 비평만 쓰다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돌직구 던진 이정희, 표정 관리 안 된 박근혜

그러나 스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탄생했다. 4일 저녁 열린 첫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는 유력 후보인 문재인과 박근혜 후보가 아닌 이정희 후보가 단연 돋보였다. 물론 지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토론회였는데, 미처 그걸 깨닫지 못했던 나 자신이 약간은 한심했다.

박근혜 후보는 어느 정도 차이를 두고 지지율이 가장 앞서 있는 후보이다. 따라서 '부자 몸 조심'을 해야 하는 후보이고, 실수만 하지 않으면 승리한 토론임을 자평할 수 있는 위치였다. 문재인 후보는 안정감과 국정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후보였다. 너무 날이 선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그래서 토론에서 나타난 콘셉트는 '점잖음'이었다. 차분한 논리와 국민 통합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후보와 시원하게 각을 세우기는 어렵다. 중도층을 견인할 필요성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정희 후보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1% 남짓의 지지율로 무서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거기에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서 갖춘 논리력에, 젊은 나이에, 정당의 대표를 역임하면서 쌓은 정치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오직 재미의 측면에서만 토론을 평가하자면, 이정희의, 이정희에 의한, 이정희를 위한 토론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에 토론을 시작하면서 주의 깊게 보려고 한 것은 선두 후보를 따라잡아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문재인 후보의 공격을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피해가면서 실책을 하지 않는가였다. 다시 말해 문재인은 점잖은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공격해야 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과연 선두 후보인 박근혜는 그동안 보였던 단점인 공식 석상의 말실수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를 곤혹스럽게 하는 묵직한 돌직구들은 이정희 후보에게서 나왔다. 이정희 후보의 공격적 발언에 박근혜 후보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박근혜 지지자에게는 안타까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여유로움으로 바라봐야 할 제3후보에게 흐트러지는 표정을 보이는 것은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지자들에게 안타까운 정도였지 토론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큰 실책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점잖은 문재인의 공격에 대해서는 방어를 잘했다. 가령 참여정부 시기에 남북간의 군사적 대립이 없던 사례를 들면서 이명박 정부의 안보 관리 능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였으나, 박근혜 후보는 '퍼주기'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며, 참여정부 시기에 북핵 실험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런식의 가치관이 투영된 질문과 대답은 결정적인 사실 관계의 하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후보 간의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는 식의 스케치성 기사만 쓸 수 있을 뿐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뉴스를 생산해내지는 못한다. 물론 토론 상대방을 제압하기도 어렵고, 추가 질문이 없는 토론회 규칙 상, 큰 성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초반에 나타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이정희 후보의 날 선 공격에 대한 참신함이 가시면서 토론회 전체가 식상해지고 필자가 하품을 시작할 무렵에 박근혜 후보가 스스로 헛스윙을 해버리는 발언이 나왔다.

박근혜의 헛스윙, 전두환이 준 돈 6억 구구절절 설명

'당선된 뒤에 친인척 비리 나오면 대통령직 즉각 사퇴할 것이냐'는 이정희 후보의 질문에 박근혜 후보는 대답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대답은 훌륭했다. "뭐가 드러나면 대통령직 사퇴한다는 식의 태도는 옳은 태도가 아니며, 그런 정치 공세보다는 얼마나 제도가 마련되었는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가가 대통령의 임무이다"는 요지로 대답을 하였다. 뭐라 나무랄 데가 없는 모범적인 답변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족으로 덧붙인 전두환이 준 6억에 대한 해명이었다. '경황이 없어서' '어린 동생들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해서' 받았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강남 부동산의 대명사인 은마 아파트 30채에 해당하는 금액을 돈을 받았다는 이정희 후보의 공세에 대한 답변으로는 대단히 궁색했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후보가 이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을 한 것에 있었다. 이것은 바로 정치 쟁점으로 부각됐다. 차라리 궁색한 변명만 했다면 다음 날 나올 야당 선대위 대변인의 비난 논평 하나로 끝났을 터인데, 이제 사회 환원의 방법에다가 시기 문제, 또한 당시에 받은 6억원을 현재 돈 가치로 어떻게 환산할 것인가 등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치 쟁점을 스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당시의 장면을 다시 보기로 몇 번을 돌려보았는데, 박근혜 후보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그 이야기는 그냥 넘어갔어도 될 일이었다. 그 말이 나오게 된 이정희 후보의 직전 질문은 6억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친인척 비리가 나오면 물러나겠냐는 질문이었을 뿐이었다. 괜시리 본인이 발이 저려 해명을 더하다가 엄청난 화근거리를 던져버리고 말았다.

이정희 후보의 발언에서 6억에 대한 부분을 들어보아도 준비를 많이 한 흔적은 보이지만 다른 공격에 비하여 이 부분에 대하여 특별히 박근혜의 실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토론에서는 야심차게 준비한 자료보다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이 더 큰 파장을 낳는 법이다.

다만 이정희 후보의 순발력이 뛰어났던 것은 마지막 정리 발언이었다. 박근혜 후보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전두환이 준 6억원의 사회 환원 시기를 들고 나왔다. 대선 치르기 전에 내놓아야 국민들이 진심을 믿을 것 아니냐면서 당장에 내놓으라고 요구를 하였다. 마지막에 잊힐 수 있는 기억을 다시 재생시킴으로써 박근혜 후보의 실수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야당 후보라는 틀에서 보자면 문재인 후보보다 이정희 후보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토론 가장 잘한 후보는 누구?

이제 전반적인 토론의 맥을 짚어보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토론이 지지율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보자. 일단 존재감을 확실히 보인 이정희 후보가 토론회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토론회의 승자라는 것은 토론을 잘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지지율에서 유의미한 상승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두에서 이야기했지만 이정희 후보는 1% 남짓의 지지율을 가진 후보였기 때문에 상승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후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긴급 여론 조사에 의하면 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박 후보가 36.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29.2%,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19.2%로 나왔다. (이 조사는 554명을 대상으로, 표본은 편의표집방식으로 선정했으며, 집계 과정에서 가중치를 부여했다. 최대 허용 오차범위는 무작위를 전제로 할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4.2%포인트, 응답률은 36.3%)

이런 여론 조사를 볼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은 토론에 대한 평가에는 후보에 대한 지지율 변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정희 후보가 19.2%로 꼴찌였지만, 그의 지지율이 1% 남짓임을 감안하면 최고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박 후보가 36.0%, 문 후보가 29.2%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두 후보의 토론을 평가하기에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 6.8P%의 편차가 나타나는데, 원래 차이가 나는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에 이정희 후보가 가져간 야권 성향의 표를 감안했을 때에 이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여기에 표본 오차까지 감안하면, 여론 조사로 박근혜-문재인 양자 후보의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려움이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남소연

문재인 후보는 어떻게 보면 선방을 하였고, 어떻게 보면 이정희 후보에게 밀려 존재감이 묻혔다. 박근혜 후보는 선방을 하였다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오나, 최대 실책이라 할 수 있는 전두환 6억 발언에 대한 정치적 쟁점이 앞으로 어떻게 부각되느냐에 따라서 토론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만약 별 일 없이 쟁점화 되지 않고 묻힌다면 박근혜의 선방에 의한 승리라는 평가가 가능하고 이는 문재인의 패배로 연결된다. 그러나 박근혜의 패착으로 정치 전선이 확장이 되면 선방한 문재인은 승리자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가 가능한 것은 박근혜 후보가 선두 후보이고, 문재인 후보가 뒤를 좇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선방은 박근혜 후보의 선방 여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종속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2위 후보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토론의 승패는 앞으로 전개될 여론의 추이로만 파악할 수 있다.

토론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유권자가 하는 것이다. 이후 여론조사에서 유의미한 지지율 변화가 없다면 승자는 박근혜, 패자는 문재인이 된다. 이정희는 그냥 무승부가 된다.

마지막으로 게릴라칼럼니스트로서 순수하게 토론의 내적 측면에서만 평가했을 때, 과연 누가 토론을 잘했나 순위를 이야기하겠다. 단연 야당 후보로서 박근혜 후보와 각을 세우고 맥을 정확히 짚어 최선봉의 공격을 한 이정희 후보를 이번 토론의 히어로라 칭하면서 1등의 자리에 놓고, 박근혜 후보는 이석기, 김재연 후보의 이름을 잘못 말하는 디테일의 실수와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잘 되지 않는 표정관리, 여기에 전두환이 준 6억 사회 환원 발언 등의 실수를 감안하여 꼴찌에 놓고 싶다. 점잖았지만 존재감이 없던 문재인 후보는 선방한 이유로 자동적으로 2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선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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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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