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4일 대선 후보 간의 첫 TV 토론이 진행되었다. 대선 주자 간의 정책을 면밀하게 비교하고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을 제공하는 TV 토론이 뒤늦게 시작됨에 따라 한동안 소강 상태였던 후보 간 정책 경쟁 국면이 재개되었다. 그중 유권자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것은 단연 경제 정책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찌감치 경제민주화가 2012년 대선판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으나 이후 대선 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나서면서 후보 간의 공약 대별점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못하기도 했다.
☞ 아이튠즈에서 <이털남> 듣기☞ 오마이TV에서 <이털남> 듣기그럼에도 면밀한 정책 검증은 대선을 앞두고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경제 민주화와 관련하여 정책은 난무하지만, 그 실효성이나 후보 간의 차이를 꼼꼼하게 따져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는 5일 여야 대선 후보들의 경제 정책 검증을 위해 <종횡무진 한국경제>의 저자로 알려진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함께 심도 있는 대담을 진행했다.
"경제민주화 핵심은 국민이 만족할 고용과 소득 만들어 내는 것"경제 민주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재벌 개혁이다. 양극화 심화의 주범으로 불리는 재벌을 제대로 개혁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등치 시키기도 한다. 김 교수는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재벌 개혁이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경제 민주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며 "경제 민주화의 본질이 국민 다수가 제대로 된 삶의 조건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실 경제민주화의 핵심 영역은 국민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고용과 소득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 이야기에는 반드시 경제 위기 이야기가 뒤따르곤 한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면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재벌 규제를 완화할 수밖에 없어 아직 경제 민주화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역시 지난 TV 토론에서 경제 민주화 한편으로 경제 성장론을 이야기하면서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박 후보는 경제 민주화라는 것이 경제 성장과 상충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며 "소수의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과 낙수 효과 모델로부터 아직 박 후보가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점에서 평소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데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리가 이 기회에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서 또다시 과거와 같은 방식의 무리한 경제 부양책을 쓴다면 그것은 반짝 효과밖에 없고 오히려 우리의 체질을 약화시킴으로써 장차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며 "따라서 과거의 경기 부양방식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효력이 이미 상실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경제 민주화가 경제 성장과 배치되는 게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경제 성장 방식을 추구하자는 의미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민주화가 경제 위기를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본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안이라는 것.
김 교수는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수출 대기업의 성장과실이 흘러넘치기는커녕 수출 대기업이 국민 대다수의 정당한 권익조차도 빼앗아 가고 있다"며 "이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질서를 만들어내야만 중소기업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지고 그래야만 자영업으로 퇴적된 인력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문제는 이 길이 매우 어려워서 한 대통령의 임기 내에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이 방향으로 정책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집행해야 한다는 의지를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보여야 하고 또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 5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이 원칙을 갖고 가겠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벌 개혁 문제 이외에도 경제 민주화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문제이다. 소규모의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양극화 해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재벌 개혁 문제 이외에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문제도 중요김 교수는 "박 후보 공약을 보게 되면 중점적인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관계에서 불공정 거래를 사후적으로 제재하겠다는 것인데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후 제재는 매우 어렵고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원칙은 맞지만 이게 과연 얼마만큼 국민들이 체감을 할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겠는지 의심이 들고 따라서 원천적으로 이런 행위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그 구조를 교정하는 수단도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과 관해서 박 후보는 너무나 인식의 박약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설령 외형적 거래관계가 공정하게 된다 하더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기본적으로 협상력의 차이가 존재한다"며 "따라서 중소기업들의 협상력을 키울 방안으로 중소기업들 상호간에 수평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박 후보는 거기에 아무런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 공정성 강화와 더불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보완책이 필요한데 그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박 후보가 내놓은 정책이 없다는 것.
김 교수는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다양한 형태의 중소기업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대기업과의 수직적 네트워크와 중소기업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라는 이 두 개념을 분명 공약 속에 담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결합되고 어떻게 장기적으로 집행되어야 할지는 아직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경우 방향은 잡혔지만 장기적인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영업자 대책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우리 경제 문제 중에서 가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꼽자면 바로 자영업자 문제"라며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라 재취업이 어렵고 너무나 과잉축적 되어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 사실 열거된 공약을 본다면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기조상의 차이는 찾기 어려운 상황인데 문제는 따로 있다"며 "이번에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주된 이유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박 후보의 공약에 대형마트 허가제나 적합 업종 제도나 영업시간 규제 등의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후보가 말로는 이렇게 공약을 했는데 정작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법을 만들 때 그 공약을 실천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김 교수는 "결국에는 정책이란 것이 상당 부분 국회에서의 법을 통해서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그런데 현실은 후보는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재래시장을 찾아가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지원을 보내 줄 수 있는 대기업의 이익을 적극 옹호하는 그런 모순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말로 된 공약이 아니라 후보와 그 후보가 속해있는 정당 구성원들 사이의 인식이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를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는 것.
이어 김 교수는 "반면에 문 후보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기조의 괴리는 크지 않지만 과연 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인가가 의심될 정도로 민주당의 당내 통합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며 "정책문제에 있어서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게 되면 이게 분명히 민주당 당론으로 결정되어 있음에도 개별적으로는 딴 소리를 하는 국회의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당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지만 우리 사회 미래를 결정하는 건 대통령만은 아니"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을 견인하는 유권자의 자세"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세계 경제가 아주 상당 기간 동안 어려울 것이고 이 상황 속에서 과거의 성장 모델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의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경제 모델을 바꾸려면 아주 오랜 기간 인내가 필요한데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현명하게 인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 민주화라는 것을 단순한 시혜적 차원의 조치로 볼 것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 불편을 감내하는 인내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저는 사실 다음 대통령은 자기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다음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런 면에서 지금 대선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인내심을 떨어뜨리기 보다는 인내심을 키워줘야 하고 누구보다도 유권자들 스스로 인내심을 길러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며 대담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