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갑니다. 그 많은 일들 중에서도 총선과 대선은 가장 뜨거운 이슈를 낳았고, 낳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파장은 문화계, 특히 출판계에도 불어 닥쳤는데요. 일명 '안철수 현상'입니다. '안철수 현상'을 필두로 2012년 출판계에서 가장 '핫'했던 키워드와 이슈들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발표한 '2012 베스트셀러 키워드 10'을 바탕으로 다뤄봅니다. 자, 시작합니다.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신드롬'
2011년 중순부터 박경철 의사와 전국을 누비는 '청춘콘서트'를 했던 안철수는 도중에 전격적으로 서울시장 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쳤지만, 결국 당시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를 합니다. 이후 안철수의 모든 말과 행동은 정치적으로 비춰지기 시작했고, 대선 출마선까지 나오게 됩니다. 2012년 들어서는 안철수 자신의 뜻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얻죠.
이후 '안철수 현상'은 본격화 되었고, 2012년 7월 18일 <힐링캠프> 녹화로 시작해 7월 19일에는 <안철수의 생각>(김영사)를 출간합니다. 이후 <안철수의 생각>은 정말 폭발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판매율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30여년을 살면서, 15년가량 책과 가까이 살았는데 말이죠. 하루동안 보는 사람들마다 같은 책을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니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 책이 <안철수의 생각>이었죠. 그날은 저에게 깊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책은 안철수와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와의 대담 형식인데요. 인간 안철수에서 시작해 사회 전반에 걸친 생각들, 미래에 대한 비젼과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내용보다 책에 관련된 외적 영향이 무척이나 컸습니다. 정치계의 각종 인사들에 의해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렸고, 출판계 내부에서도 집중 포화를 받죠.
잛은 시간에 너무나도 많은 판매가 이루어지다보니 소규모 서점들에게로 가는 물량이 모자랐습니다. 결국 '한국서적경영인협의회'에서는 <안철수의 생각> 발행처인 '김영사'를 향해 규탄 성명서를 내기에 이릅니다. 이를 두고도 치열한 갑론을박이 오고갔지만, 어영부영 끝나고 말았죠. '안철수 현상'의 정점에 이르렀던 <안철수의 생각> 출간은 이렇게 하나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안철수는 9월 19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죠. 하지만 2달여만인 11월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며 그의 정치 행보 1막이 막을 내립니다. 2012년 출판계, 아니 한국의 최고 이슈메이켜였던 그의 여정을 지켜봅니다.
'이 시대의 멘토'와 '힐링 신드롬'
201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가 출간됩니다.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가 이 시대의 아픈 세대인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같이 공감하려는 목적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묶은 책이죠. 출간 이후 '이 시대의 멘토'가 되어 수많은 청춘에게 공감을 얻어 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인 저도 이 책을 처음 접할 당시에는 빌빌거리며 취업을 준비하는 청춘이었죠. 같이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왠만하면 책 얘기는 안했는데도 불구하고, "너 '아프니까 청춘이다' 봤어? 재밌더라." "어, 너도 봤어? 좋지?" 등 팬덤 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죠. 한국출판계 사상 최단기간에 밀리언셀러(100만 부)를 돌파하며, 여러 타 출판사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주었지만 출판계 전체의 파이를 넓이는 데 일조했죠.
그런 '란도샘'이 올해 2012년 8월에 신작 에세이를 들고 나옵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오우아). 역시나 아픔을 어루만져주려 하셨는데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주로 대학생층의 취업전 청춘의 아픔을 달랬다면, 이 책은 아픔을 이겨내고 사회에 나온 청춘의 아픔을 달래고 있죠. '어른아이'라 지칭한 25세~35세의 청춘들을 향한 '멘토링'이 다시 시작되면서, 10주가 넘게 종합 1위를 내달렸습니다. 란도샘의 멘토링은 어디까지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합니다.
올해의 출판계 작가층을 전체적으로 놓고 본다면, 스님들이 단연 압권입니다. 2012년 1월 출간 후 약 30주간 종합 1위를 마크하고 있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의 혜민 스님, 전국으로 '청춘콘서트'를 열고 <힐링캠프>에도 나오셔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하셨던 법륜 스님, 거기에 정목 스님, 우봉 스님까지. 이분들의 책은 에세이를 점령하고, 출판계를 점령하고, 문화 전반을 점령했습니다.
각종 사회 악재와 무한 경쟁 속에서 각박해질대로 각박해져 치료받기 원했던 국민들을 힐링해주셨던 힐링의 전도사들이시죠. 특히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하버드 재학 중에 출가하여 한국인 승려 최초의 미국 대학교수가 된 혜민스님의 이력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요. 이 시대의 멘토이자, 힐링 신드롬의 대표주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죠.
이 책의 출판사 쌤앤파커스는 2010년(사실상 2011년)에 출간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까지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자연스레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네요.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 내년에도 멘토링과 힐링의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아프다는 거니까,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겠네요. 이제 그만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웹툰 전성시대
2003년 초반, 다음 포탈에서 본격적인 웬툰 연재를 위해 '만화속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강풀의 '순정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했죠. 2006년 네이버의 '네이버 웹툰'이 등장했고, 신인과 기존의 베테랑 작가들의 작품들을 조화롭게 연재하며 웹툰 시장의 파이를 키웠습니다. 지금은 웹툰계의 거성이 된 강풀로부터 시작된 웹툰은 어언 10년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거기에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올해 2012년 출판계는 불황에 빠졌지만 웹툰은 전성시대를 이어갔습니다. 그 중 가장 인기가 있고 많은 영향력을 끼친 작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수많은 의견이 있을테지만, 최소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는' <미생>(위즈덤하우스)이 차지한다는 의견에는 반론이 없을 줄 압니다. 오랫동안 웹툰 진출에 고민하고, 수 년 동안 기획해서 만든 웹툰이라죠.
2012년 1월 20일, '다음 만화속세상'에 첫선을 보인 후 최장기간 평점 1위를 고수 중인 <미생>은 특이하게 바둑과 인생, 거기에 직장생활을 매치시켰는데요. 조훈현 9단(한국)과 녜웨이핑 9단(중국) 맞붙었던 1989년 9월 제1회 응씨배 결승 5번기 제5국(최종)의 한 수 한 수가 <미생>의 한 회 한 회가 됩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는 주제로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인 장그래의 직장생활을 굉장히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아니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올해가 가기전에 웹툰 한 개만 추천한다면 <미생>을 추천합니다.
스크린셀러 열풍
스크린셀러? '스크린'과 '베스트셀러'의 합성어로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옮겨져 동반 성공을 한 작품을 말합니다. 2011년에도 <도가니> <뿌리깊은 나무> 등이 드라마와 영화로 옮겨져 큰 사랑을 받은 적이 있죠. 올해는 <해를 품은 달>로 시작해, <은교>(문학동네)와 <용의자 X의 헌신>(현대문학)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이 세 작품은 각각 2011년, 2010년, 2008년에 출간되었지만, 올해 2012년 드라마와 영화로 옮겨져 다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랭크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었죠.
소설과 영화/드라마를 비교해보는 재미, 서로가 서로를 밀고 끌어주면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 영화/드라마로 옮겨짐으로써 야기되는 소설의 재발견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학계 나아가 출판계 전체로 볼 때 소설만 가지는 콘텐츠의 의미가 많이 퇴색될 수 있다는 측면도 배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소설을 짓든지 영화/드라마를 염두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물론 전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2012년 베스트셀러에서 소설이, 특히 한국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낮고 그나마 위에서 말한 <해를 품은 달>, <은교>가 많이 팔린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소설 자체의 경쟁력으로 독자들에게 어필하기가 너무도 힘든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내년에도 이런 '스크린셀러'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씁쓸한 뒷맛을 감출 수가 없군요.
이 밖에도 '마흔', '그레이', '고전' 등의 키워드가 2012년 출판계를 휩쓸었다고 알라딘은 평가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올 한해 어떤 이야기들이, 어떤 콘텐츠들이, 어떤 책들이 마음을 사로잡아 밤잠을 달아나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온 국민이 힘들었을 한 해이겠지만, 올해 출판계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독자분들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아, 책 읽을 시간을 많이 앗아갔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물가가 많이 올라 먹고 살기도 힘든데, 비싼(?) 책 살 돈이 어딨냐 하는 말씀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출판계 내부에서 볼까요? 출판사들 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극심해졌습니다. 총체적 난국 속에서 수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그 중에서도 단연 이슈는 국내 5위 온라인 서점인 대교 리브로의 폐점 소식이었죠.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내년 2013년에는 책 많이 읽어주실 건가요? 영원한 마음의 양식이자,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하게 도와주는 '책'. 많이 사랑해주세요. 뭐니뭐니 해도 독자분들이 있어야 출판계가 살고, 그래야 양질의 문화가 창출됩니다. 결국 국가 전체의 삶의 질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