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의 결단으로 마침내 승리를 위한 기본구도가 만들어졌다. 과거 대 미래, 1% 대 99%, 귀족 대 국민의 전선이 이제 제대로 만들어 질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구도가 만들어지고 반전의 흐름이 생겨난다면 이제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 때의 수치에 불과하다. 표심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움직이므로 흐름과 기세를 장악하면 당장 차이가 커보여도 결국에는 이길 수 있다. 12월 19일까지 열흘간의 대회전(大會戰)이 시작되는 시점에 혹시라도 보탬이 될지 몰라 전략적과 관련한 생각들을 조언해 보고자 한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크게 아쉬운 부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더 나은 단일화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고 또 하나는 선거 초반 '경제'를 중심으로 쟁점 전선을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다. 먼저 단일화와 관련, 한 달여 전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안철수씨는 민주진보 진영과의 파트너십을 선언해 연합정부의 틀을 먼저 구축하라'고 촉구한 것은 그야말로 이기는 단일화를 위한 것이었다. 물론 약간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발 빠르게 할 일을 한다면 이를 만회할 만한 시간적 여유는 있다고 판단된다.
다음은 대선의 쟁점구도가 정의와 복지, 경제민주화 등과 같이 '(사회)경제' 부문에서 만들어졌어야 했는데, 이러한 시도가 미흡했거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박근혜 후보도 경제민주화를 끌고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변명에 가깝다. 결국 상대방이 이쪽의 '핵심 가치'에 물타기 전략을 통해 희석, 또는 증발 시킨것을 허용했고, 장점이 봉쇄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반향이 없더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전선을 '이명박 정부'의 경제실정, 또 귀족경제 망국론 등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역시 최근에는 박정희 대 노무현이 아닌, MB심판론 또는 부자귀족 정권 저지를 중심으로 캠페인 메시지가 투입되고 있으므로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단일화와 경제 중심의 쟁점구도가 아쉬우나마 만들어 지고 있으므로 큰 틀의 선거구도는 잡혀가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더 보완하거나 주의했으면 하는 점을 아이디어 수준에서라도 몇 가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새정치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중요하다문-안 단일화 과정 및 그 이후 나타난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 정체 및 하락흐름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만의 정부'로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기대를 심어주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 질 정부가 민주당 정부나 문재인 정부-또 친노정부는 더더욱 아닌-이를 훨씬 더 넘어선 더 큰 의미의 '새정치(국민) 정부'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따라서 안철수 전 후보가 개인적으로 지원유세에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안철수씨 및 진심캠프가 궁극적으로는 새정부를 함께 만드는 공동의 주역임이 선언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과 함께 안철수, 그리고 심상정 등이 공동정부, 연합정권임을 보여주는 회동이 국민 들 앞에서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미 문 후보가 초당적 거국내각을 짜겠다고 선언했으므로 이제 그 약속을 함께 이행할 새정부의 파트너들이 모여 국민들 앞에서 결의를 보여주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민주당 캠프, 안철수 캠프 가리지 말고 정책 전문가들을 중요 위치에 포진시키고 '예비내각' 효과를 이끌어 내는 것도 좋다. 다시 말해 '새부대'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최근 참여정부의 최광웅 전 청와대 인사비서관이 제안한 '참여정부 주요인사들의 새정부 진입 포기 선언' 등도 여당의 공세를 무력화 시키는 좋은 전략적 카드라고 본다. 선거 한참인 지금 얘기하기는 무엇 하지만 '친노' 담론과 관련 핵심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가 그들의 인격의 문제라기보다는 바로 '과거세력', 그것도 문재인 후보가 수 차례 사과했던 친자본노선, 또 이와 연계된 친관료노선 등이 바로 그들 '친노세력'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되살아날 가능성이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경제노선에 있어 잘못된 접근을 허용했거나 이를 바로잡아 주지 못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박근혜 후보의 '토사종팽' 만큼이나 두려운 것이 참여정부에서 강단 사민주의자 등으로 비하되며 어려움을 겪었던 이정우 교수가 (정권교체에 성공했을 때) 새정부에서 '기술정향적 합리주의자들'에게 포위되어 또 다시 낙마되는 '토사정팽'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게다가 이제 정치권력 내부의 공학적 논리로만 봐도 '친노'가 아닌 '친문'이 보여야 할 시점이다.
박근혜 욕하지 말고, 문재인을 자랑해라'박근혜 네거티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번 대선 프레임을 '박근혜냐? 아니냐?'로 짠다는데 있다.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적장을 혼내주는 것 같아 신나서 떠들지 모르겠지만 문재인 후보로서는 '패배' 프레임이다. 다시 말해 '문재인이냐? 아니냐?' 또는 위에서 혼자 지은 이름을 빌자면 '새정치국민정부냐? 박근혜 정부냐?'라는 구도로 판이 바뀌어져야 승리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정석이다. 이를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포지티브 이슈, 포지티브 공약인 것이다.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차라리 낯간지럽더라도 도대체 문재인 후보가 얼마나 훌륭한지,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안철수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심상정 의원은 또 얼마나 존경할만한 진보정치인인지 떠들어 주는 게 맞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내가 분명한 가치우위에 있을 때만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독자적 우위 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포지티브 캠페인 없이는 네거티브 공략은 무용지물이며, 새롭게 승리 프레임을 짜는데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 또 박근혜 지지층만 결집시키고, 중도층들에게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국민연대 캠프는 이제 안철수씨의 합류를 계기로 '네거티브 제로' 선언을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잘못된 네거티브는 두 가지 성격의 것이 있다. 즉 인신공격 등의 성격을 가진 야비해 보이는 네거티브, 그리고 '유신 대 참여정부'처럼 과거 프레임을 되살리는 네거티브는 전략적 실책이라 봐야 한다. 대신 이명박 정권, 새누리정권의 실정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이번 선거는 10년 만에 볼 것 다 봐서 이뤄지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현 정권의 황당한 실정에 분노한 비정상적 '급성' 정권교체이므로, '회고-심판' 투표와 '기대-전망' 투표의 비중이 반반씩 배합하는 것이 맞다. 같은 공세라 할지라도 경제 중심, 정책 중심으로 쟁점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네거티브가 아닌 심판투표의 구도를 만드는 셈이므로 나쁘지 않다.
정치얘기 하지 말고, 경제얘기 해라앞의 얘기와 연장선상에서 지난 총선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교훈 중 하나가 '정책전선 창출의 실패'이다. 총리실 불법사찰 등 그야말로 독재 대 반독재 프레임은 더 이상 국민에게, 특히 20대와 30대 등에는 울림이 없다. 독재라는 것이 정치권과 지식인 계층 등에는 그 심각성이 충분히 느껴질 수 있고, 실제 권위주의 통치와 부자귀족 경제는 동전의 앞뒷면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 이러한 권력 내부의 메커니즘이 잘 드러나 보이도록 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특권계급 사회, 부자중심의 정책으로 인한 민생파괴 등 잘못된 사회경제 구조문제를 반드시 쟁점화 시켜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실정, 무엇보다 새누리당 세력의 서민경제 파괴, 복지해체를 물고 늘어지면서 경제를 중심으로 쟁점을 끝까지 형성하는 것이 맞다.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부도 실패한 정부'라고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사실 무예대련에서의 어정쩡한 뒷걸음마냥 '전략적 악수(惡手)'가 될 틈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이명박 정부의 재벌편중, 민영화 등과 같은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요 반감정책, 날치기 예산처리와 같은 경제와 연관된 '주요 악행'에 대한 입장을 밝히도록 공세를 펼칠 필요가 있다. 또 이명박 정부가 성장과 분배 모두에서 실패했다는 포인트도 좋고, 형님예산, 영부인 예산 등을 다시 지적하는 것도 좋다.
또 박근혜 후보로부터 이명박 대통령와 관련한 기존의 '범법'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어떤 수위에서 사법처리를 하겠는지 등의 약속을 받아내는 것도 좋다. 또 중도층을 겨냥하자면 국부유출 논란, 국가부채 급증 등이 효과적일 수 있다. 얼마 전 진성준 대변인이 보수정부에서 자살과 범죄가 늘어난다고 공격한 것은 좋은 전략 포인트이다. 이는 결코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는 소모적 네거티브가 아니다. 인신공격이 아닐 뿐더러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분명 민생파괴가 수구정권의 책임임을 강조하는 것이 맞다.
또 다른 것을 생각해 보면 안철수 캠프에서 제기되었던 4대강 사업의 전면복원 등도 좋은 캠페인 소재라 할 수 있다. 지금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국토가 망가지면 후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고 강조할 수 있다. 남은 대선기간 동안 21세기 최대실정이라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의 폐해 관련 전면 재조사 그리고 관련 오류 바로잡기에 대한 국민의 선택을 쟁점화 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은 늦는 법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국민들의 선택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이명박 정부의 주요정책과 새누리당 정치인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이 모두 그대로 유지되거나 중용된다는 것, 결국 이명박 정부와 달라질게 없다는 것이 지지층은 물론 국민들에게는 가장 큰 악몽일 수 있다. 이번 대선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지루한 단일화 과정과 함께, 이명박 정부, 이명박 경제의 실정과 폭정에 대한 심판구도를 사라지게 만든 것일 것이다. 대신 단순히 '이명박근혜'라는 레토릭에만 의지해서는 안된다. 저들을 악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우리가 더 낫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진보의제' 우습게 보지 말라이번 대선 '진보' 후보들의 지지도는 어느 때보다 초라했다. 그러나 이를 '진보'의 의미 자체가 퇴색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 즉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졌어도 진보의제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로 지난 해 희망버스를 통해서 본 국민들의 '공감'과 연대'의 실천의미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특히 그 동안 일정 수준 '중도' 이미지가 강화된 안철수씨, 그리고 여전히 진정성 측면에서 못미더운 민주당 세력에게 있어, 진보후보 또는 진보세력과의 연대는 결코 장식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미 지지를 선언한 심상정 전 후보를 비롯한 진보정치인이 '새로운 정부에 참여한다'고 공표하는 것은 새정치, 그리고 서민정치의 의미를 강화시켜주고 무엇보다 선명성과 진정성을 보완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만만치 않다. 이제 와서 누구라고 밝힐 필요는 없지만 현재 민주당의 중견 정치인 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지나치게 좌파라고 비판했거나, 좌파는 안 된다며 침을 튀겼던 인물들이 결코 적지 않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열린우리당 주변의 정치인 중 가장 개혁적이고,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빨리 알아차렸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의원 등 그야말로 손에 꼽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민주당 의원들과 민주당 출신 지자체장들 중에서 '진보'의 가치를 수용했던 사람은 희박했다. 그들 가운데 과연 과거를 반성했거나 나아가 '진보'의 가치를 수용했을까 궁금한 인물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민심은 지금 왼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것이 시대정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민주당의 개혁은 안철수씨가 언급한 공천의 계파적 편파성보다도, 개혁성이 부족한 사람들 또는 특권 엘리트들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의 공천문제가 더 심각한 측면이 있다. 국민들이 민주당이 내세우는 개혁 또는 진보적 정체성을 못믿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부산에 가지마라마지막이지만 가장 중대한 전략적 논점 중 하나가 바로 '부산행'이다 지난 총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그야말로 고향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부산에 간다고 부산표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도 부산표는 노무현 후보가 공들인 만큼 나오지 않았다. 고향 부산에 내려가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나머지 모든 지역전선을 망가뜨려 버린다는 것이다. 핵심 캐스팅보트 지역인 충청은 물론, 그렇지 않아도 심드렁한 호남민심에도 도움이 안된다. 그 동안 지지부진한 단일화 프레임으로 인해 이미 '집토끼들'의 사기가 저하된 상황이므로 자신에게는 고향이지만 사실상 적진인 '부산' 먼저 가는 것은 선거흐름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은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인 수도권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늦게 보여준 호남이 더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또 생각을 뒤집어서 해보면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부산'만 안가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낫다. 현 시점에서는 부산을 아무리 가봤자 노력 대비 효과는 떨어지지만, 오히려 문 후보의 고향인 부산만 안 갔을 때, 부산의 의미는 더 커진다. 사실 끝까지 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권역에서 우위를 되찾았을 때, 그때서야 마침내 가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이다. 고향사람들도 동네사람을 붙잡고 고함치는 사람보다는, 타지에서 성공한 내 고향 사람이 더 자랑스럽고 또 간혹 미안한 법이다.
위에서 얘기한 것들은 하나의 관점에서 내놓은 전략적 아이디어들일 뿐이다. 물론 싸움이란 반드시 하나의 길만이 있거나, 반드시 옳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 같은 전략적 관점에 대한 공개토론이 시민의 지혜를 모으는 통로가 될 수 있고, 이러한 토론이 캠프의 전략담당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론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온라인 공간상에서 모아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김헌태 기자는 정치평론가로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