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봄, MBC 라디오 <여성시대> 공개녹음방송에 갔다. 편지 응모 결과 수상작(자)들을 소개하는 방송이었다.
방송 진행자인 양희은과 강석우이 편지를 읽거나 수상자들이 사연을 소개하는 사이에 초대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다. 꽤나 유명한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TV나 라디오를 통해 노래를 들으며 '잠깐 대중들의 주목을 받다가 잊히고 말 가수' 정도로 생각했던 A와 B도 출연자들 중 하나라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이런 실망은 그들의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들으며 '대단한 사람들이다', '진정성이 있는 것 같다', '어? 생각보다 노래 괜찮네!'로 바뀌었다.
사실 놀랐다. 누군가 보여주는 것을 통해 느끼는 것과 가까이서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차이가 너무 컸는지라. 아마도 그날 그 녹화방송에 A와 B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A와 B를 TV 화면을 통해서만 봤더라면 여전히 그런 정도의 가수로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난, 아니 우린 종종 누군가의 말 그 옳고 그름이나 정황 등을 따지지 않고 그 누군가의 말이나 평가(잣대)에 따라, 혹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평가해버리고 마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곤 한다. 누군가의 각본과 카메라를 통해 그 일부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TV 화면 속 A와 B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싸구려 가수' 취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애초 그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던 사람도 자꾸 듣고 그러면서 은연 중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이 자신의 어떤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우리의 이런 속성들을 악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받아들이는 대중들 또한 그들에게 농락당한 피해자인데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모르기 일쑤라는 것이다.
김미화가 털어놓는 '김미화 사태'의 진실 본격적인 싸움이 이제부터라는 사실을 이때까지만 헤도 실감하지 못했다. 패소해. 돈 뜯겨. 스타일 완전 구긴 ㄸ신문은 지난번(기자 주 : <동아일보>는 사실과 다른 보도로 김미화씨와 법정싸움 끝에 패소했다)보다 더 광분했다. 그들은 이제 원색적인 비난을 넘어 아주 노골적으로 내게 '좌파' 멍에를 씌우기 시작했다. '좌파 김미화를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그냥 둬선 안 된다'라는 요지의 음해성 글과 기사를 마구 남발했다. ㄸ신문 사장과 형 아우 하며 지낸다는 한 정치인은 방송국 간부들을 찾아다니며 노골적으로 '김미화는 좌파니 쓰지 말라'며 해고를 획책하고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다. 더 황당한 사실은 그들이 내가 법원에 제출한 SBS 확인서가 위조된 것이라며 나를 '사문서 위조죄'로 경찰에 형사고발까지 했다는 것이다. 내가 법정에 제출한 서류가 위조일 리 없다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경찰에 고소를 하고 '피소된 팩트' 하나로 다시 '김미화, 사문서 위조 피소'라는 논조의 악의적 기사를 마구 날렸다. 지들 신문이니 지들이 쓰고 블로그에 올리고 카페에 올리고 웹문서에 올리고를 반복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한 단체는 기뻐 춤추며 방송사에 공문서를 보냈다. 사문서를 위조한 김미화를 퇴출시키라고. -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에서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메디치 펴냄)를 소개하며 이에 대해 우선 언급함은 저자 김미화가 'ㄸ신문'과 KBS의 이런 점을 악용한 보도와 그 유치한 '쌩쑈'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도 일단 자신들의 입장이 유리하도록 보도하고 본다.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의 말이 옳다', '보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실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자 '고소'까지 하는 쌩쇼를 한다. 그 누구보다 피해자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억울함을 변명하거나 누군가 알아주길 기다리다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바라면서.
속사정을 알려야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보도 내용을 반신반의하는 한편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과 보도 내용을 연결 지어 기억하게 된다. 운 좋게 정정 보도 등을 통해 '잘못 없음' '사실과 다름'이 밝혀져도 사람들의 최초 기억은 쉽게 수정되지 못하고 남기도 한다. 게다가 정정 보도를 다 본다는 보장 또한 없다. 때문에 일단 호도하고 고소하고 보는 것이다.
고소취하를 위한 타협이 성사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의 느낌? 뭐 좀 이상하지 않은가! 피고소인보다 고소인이 더 절박해지는 소취하. (줄임) 결국 KBS는 고집을 꺾었고 KBS가 먼저 고소취하를 하고 남편에게 연락을 주면 김미화는 '유감'이라는 표현을 넣어 트위터에 글을 쓰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결국 127일 만에 고소를 취하했다.힘 있는 자들, 돈 있는 자들과의 소송은 꼭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란 걸 이 사건을 통해 알게 됐다. KBS라는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기관이 국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때, 그들은 명예를 회복하려 했다기보다는 '너 끌려 다니면서 엿 좀 먹어봐'라는 심보라는 걸 실감한 것이다. 이런 소송은 무고한 개인을 피폐하게 만든 후 판결이 날 시점 직전 쯤 가서는 슬그머니 고소취하로 마무리하기 마련이란다. 이기기 힘든, 내지 이길 수 없는 소송이기 때문일 게다. -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에서특히 김미화씨의 경우처럼 '거대한 권력'이 그 배후자인 경우 억울하지만 물러나 참는 수밖에 없다. 세월이 좋아질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순악질 여사' 김미화는 참지 않아 문제가 됐던 것이고.
저자 김미화는 개그콘서트가 탄생한 이야기나 KBS와의 인연부터 KBS '블랙리스트'에 오른 진짜 이유, 'ㄸ신문'과 KBS와의 유치하고 질긴 싸움 과정과 그 진실, 와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과 그 소중함, 앞에서는 호도하고 고소하며 뒤로는 고소를 취하할 명분을 찾는데 전전긍긍했던 KBS, 국정원의 사찰 등 '김미화 사태'의 진실을 진솔하게 풀어 놓는다.
눈과 귀가 가려진 나도 '피해자'... 왜 미처 몰랐을까책을 읽는 동안 웃음 가득 머금은 개그우먼 김미화의 유쾌한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재미있고 재치 있는 표현과, '펀치의 통쾌함이 아마 이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 후련해지는 표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눔의 집 종군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만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의 만남 등 가슴 찡해지는 이야기들도 있다. 만나게 된다면 손이라도 꼭 잡아드리며 응원하고 있노라고 마음 전하고 싶을 정도로 눈시울 적시며 읽은 애잔한 사연도 있고.
지금도 내 취향이 아닌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노래를 일부러 찾아 듣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를 듣게 되면 그날의 그와 같은 작은 충격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한다. <웃기고 자빠졌네>를 읽으며 떠올랐음도 물론이다.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았을 것인데도 A와 B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김미화씨나 명진 스님의 경우처럼 작정하고 호도하면 그 정도가 오죽 심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고 보니 난 참 어리석다 싶다. 김미화 사태의 피해자는 김미화와 김미화 사태와 관련된 일부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저들에 의해 눈과 귀가 가려지고 흐려진 나도 김미화 못지않게 큰 피해자인데 미처 분노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덕분에 이제부터라도 분노할 수 있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참, 책을 통해 김미화 사태의 진실을 읽어나가는 동안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였다. 지난해(2011년 11월) 재정악화와 미성년자 성매매 스캔들 등으로 사퇴한. 유럽 혹은 이탈리아의 악몽으로 불리기도 하는. 김미화씨 역시 그에 대해 말하고 있어 관련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언론이 권력과 협착하고 재벌과 어깨동무하면 나라 썩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 정도는 나도 이제 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떠올리며 남의 나라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부정축재 재산가, 타락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그는 총리를 세 번이나 역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탈리아의 주요 언론사를 아예 소유해 국민의 귀와 눈을 속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대놓고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낙하산 사장들을 투입해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같은 꼴이 아닐까 싶다. -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에서 덧붙이는 글 |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ㅣ김미화 씀ㅣ메디치미디어 펴냄| 2012.11.10 발간ㅣ정가: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