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어떤 모습으로 보이세요?"라고 해설사가 물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고개만 갸웃거리고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 보세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리와 클라크케이블이 계단에서 키스하는 장면처럼 보이지 않으세요?" "어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해설사가 그렇게 말한 후부터 우린 돌을 보면 각자의 느낌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 제주여행은 차와 운전기사를 렌트하고 우리 일행 12명만 다니니깐 일정이 넉넉하면서도 여유로웠다. 여행 3일째 되는 날, 오전에는 김영갑갤러리에서 개관10주년 전 '바람'을 관람했다. 그의 사진에서 보는 바람이 직접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곤 점심을 먹은 후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에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을 갔다. 제주도에 돌이 많다고는 하지만 돌문화공원과 박물관까지? 과연 그곳에서는 특별한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제주돌문화공원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그곳의 첫인상은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우리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해설사가 "몇 명만 저 건너편으로 가보세요. 마치 물속에 있는 것 처럼 보일 겁니다" 한다. 정말 그랬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해설사의 재미있는 해설 덕분에 우리들은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옛날 설문대할망이란 키 큰 할머니가 있었다. 얼마나 키가 컸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 있고, 한라산 백록담에 걸터 앉아 왼쪽다리는 제주시 앞바다 관탈섬에, 오른쪽 다리는 서귀포 앞바다 디디섬에 디디고, 성산봉은 바구니 우도는 빨랫돌 삼아 빨래를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키가 큰 것이 자랑거리여서 제주도안에 있는 깊은 물들이 자기의 키보다 깊은 것이 있는가를 시험해보려 했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연이 깊다는 말을 듣고 들어서 보니 발등에 닿았고, 서귀포에 있는 홍리물이 깊다 해서 들어서 보니 물이 무릎까지 닿았다.
이렇게 물마다 깊이를 시험해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 한라산에 있는 물장오리에 들어섰더니 그만 풍덩 빠져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물장오리가 밑이 터져 한정없이 깊은 물임을 미쳐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키가 크다고 하지만 그런 장신의 키가 존재할 리 만무일 터. 전설은 전설일 뿐. 하지만 해설사의 설명은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다. 나도 손자들한테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전설이 참 많은 고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설사는 또 한가지의 전설을 들려준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신화 내용은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이란 명승지에는 기암절벽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이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장군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설문대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어느 해 몹시 흉년이 들어 하루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오백형제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죽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아들들은 그런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정말 죽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막내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된다. 막내는 어머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어머니 죽을 먹어치운 형제들과는 못살겠다면서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여기저기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그리며 한없이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고 한다.
제주도의 전설은 모두 돌이 되어 끝이 나곤한다. 그런 전설탓일까? 돌이 정말 많다. 저렇게 많은 돌은 어디에서 다 모아놨는지. 제주도에 있는 돌은 전부 갖다 놓은 것만 같았다.
전설이지만 정말 슬프다. 친구들 모두 넋을 잃고 해설사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들이 늘어선 모습을 보니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해설사가 들려준 그곳에 대한 전설을 알고 나니 그곳에 돌이 그렇게 많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코끼리? 아님... 산봉우리 같기도 하고...", "나는 기도하는 모습있잖아. 예전에 자동차 안에 있는 오늘도 무사히란 사진 그 모습같기도 하고" 정답이 어디 있을까? 자신이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을.
만져도 딱딱하고 무념무상같은 돌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준 것 같다. 어떤 것은 버려진 것도 있었고, 버려지기 직전의 것들을 모아 놓은 것도 있다. 어쩌면 이름없이 그대로 없어질 수도 있던 많은 것들을 모아놓으니 그시절의 역사와 생활했던 모습들이 상상이 된다. 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는 듯하다.
어떤 것이 어떤 모습이란 정답은 없을 것이다. 오늘 본 것이 내일과 같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