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내년 2월 17일까지 '문봉선의 독야청청_천세(千歲)를 보다' 전이 열린다. 문 작가는 28살에 동아미술상을 수상하며 데뷔해 30년간 작업을 해 왔고 그만의 화풍이 충분치 않다고 여겨 대형전시를 미루다 이번에 공개되었다.
위에서 보듯 이번 전시는 길이만 10미터가 되는 작품 등 대작 20여점으로만 꾸몄다. 묵향 넘치는 예스러운 아름다움과 현대적 감각을 융합해 탁월한 공간미와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서체 중 예술성이 가장 높은 초서도 더해진다.
서울미술관 관장인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전통적인 조형미술의 가치가 지나치게 외면당하는 것과 근래에 지필묵으로 전통필법을 구가하는 한국미술가의 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어 안타깝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크다"고 자평한다.
중국의 경우 장대천(長大千), 제백석(齊白石) 등 전통화에 근거한 현대 미술가가 2011년 세계 유수경매에서 피카소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판국인데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 그렇다. 우리 것의 가치가 뭔지를 다시 살펴본 요구가 더 절박하게 되었다.
소나무의 지조와 선비정신 돋보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번에 전시된 것 중 대표할 만한 작품을 찬찬히 감상해보자.
먼저 위 작품은 서울미술관 '석파정' 앞마당에 있는 600년 된 천세송(千歲松)을 그린 것으로 서울시 보호수 6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눈에 그 지조가 보이고 선비정신까지 감지된다. 이 소나무는 또한 곡절 많은 한말과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지켜본 '관음송(觀音松)'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는 고구려벽화에도 나오고 십장생의 하나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우리에겐 영험한 존재이다. 그래서 소나무는 그 어느 나무와 비교될 수 없다고 하여 '무등송(無等松)'이라고도 불렸다. 그런 기저가 석파정 천세송에도 진하게 배어있다.
소나무의 멋과 품격이 되살아나다
이 작품은 '경주오릉 소나무'를 그린 것이다. 천년 비바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개와 멋과 운치가 넘친다. 이렇게 품격과 위엄 있는 소나무(정이품)를 그리기 쉽지 않으리라. 손의 기교만이 아니라 그 내면으로 들어가 원류와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작가는 어떤 소나무에 매려 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전라도 앉은뱅이 소나무가 마음에 든단다. 이유가 쓸러질듯 넘어질듯 묘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다. 소나무도 다시 보니 경주, 하동, 강릉, 제주 등 다양한 지방색을 보여 흥미롭다.
차별화된 그의 화풍 만들기 30년
문 작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현장성 높은 사생을 담은 '실경화첩'도 이번에 같이 선보인다. 거기다 중국유학에서 갈고닦은 초서를 재해석해 작품에 적용한다. 참신함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송운(松韻)'은 세련된 추상에 몽환적 무릉도원의 이미지가 담고 있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전시가 지연된 것은 문지르기 기법이나 전례 없는 색감을 시험한다. 전통기법의 틀을 털어내고 자기만의 화풍을 만드는데 무려 30여년이 걸렸단다. 그도 50대 중반을 맞아 전시를 더 이상 늦출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렸다'기보다는 '쳤다'는 말이 옳다
이주헌 관장은 그의 필법에 대해서 "큰 소나무를 붓끝으로 먹으로 난 치듯 그렇게 쳐 올라가는 방식이다. 그러니 '그렸다'기보다는 '쳤다'가 옳을 것이다. 빗자루로 그런 것 같이 붓끝이 쭉쭉 뻗어나는 방식이라 시원시원하다. 그 사이로 듬성듬성 틈이 나 더 멋스럽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붓에 물기를 최대로 뺀 채 툭툭 친 것이다. 액션페인팅처럼 몸으로 기와 혼을 화폭에 불어넣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중국 유학 시절 스승인 서리명(徐利明)에게서 배운 "술 한 잔하고 귀가할 때처럼 매인 데 없는 걸음 같은 필법"이 힌트가 되었단다.
그의 작품은 이렇게 서예와 회화가 뒤섞여있다. 또한 먹빛의 농담으로 수 천 가지 컬러보다 더 다채로운 색감을 연출한다. 거기서 보이지 않게 울림과 기운생동이 일어난다. 위 같은 대작에서는 공간의 깊이와 함께 유려한 장쾌함도 느껴진다.
작가적 삶 닮은 소나무의 '독야청청'
여기 소나무 '독야청정'은 엄동설한에도 그 푸르름을 꿋꿋이 지켜내는 소나무의 기백이 잘 드러난다. 이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자신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화가의 외로운 삶을 닮았다고 할까. 세월의 풍상 속에서도 이를 견뎌낸 기상과 완곡한 S라인이 주는 수려함이 또한 눈길을 끈다.
조선중기 고승 사명대사도 '청송사(靑松辭)'에서 "푸른 솔은 초목의 군자로다 / 눈서리 비이슬에 끄떡없구나 / 슬프거나 즐거우나 변함이 없고 / 겨울 여름 없이 언제나 푸르구나"라며 찬미했는데 위 작품도 그런 분위기가 그득 넘친다.
세상의 찬 기운 녹이는 현대판 '세한도'
위 작품은 추사가 제주도 대정읍에 9년간 유배할 때 그린 '세한도(1884)'가 그려진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서 문 작가가 그린 것이다. 그는 제주 출신이라 이곳을 어려서 봐왔다. 예전엔 소나무가 세 그루였으나 지금은 한 그루만 남았단다.
그런 면에서 위 '해송'은 추사의 '세한도'를 현대화한 것으로 해도 좋으리라. 소나무가 엄동설한에도 잘 견딘다하여 '세한지목(歲寒之木)'으로도 불렸는데 그 뜻을 좀 알 듯싶다. 그런데 여기서 풍겨 나오는 한기에는 따뜻함도 묻어있어 뜻밖이다.
오늘날처럼 사람들이 불안에 쫓기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조바심에 찌들어 살까. 그만큼 삶이 분주하고 번잡하다는 뜻인데 기운이 하늘로 치솟은 송림에서 풍겨 나오는 상쾌한 솔향기 맡으며 은은한 솔바람을 맞으면 우리자신도 모르게 절로 심경이 맑아지고 주변의 모든 것과 교감하면서 삶에서 쉼과 여유를 되찾지 않을까 싶다.
[작가소개] 문봉선(文鳳宣) 작가 1961년 제주 출생 1984년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86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 2004년 중국남경예술학원 박사졸업. 현재 홍익대 미술대교수
[개인전] 2012년 제19회 '독야청청-천세(千歲)를 보다'(서울미술관, 서울), 제18회 개인전 '서귀포 칠십리'(서귀포 소암 기념관, 제주) 제17회 개인전 '청향자원(淸香自遠)'(공아트스페이스, 서울) 2011년 제16회 개인전 '문매소식(問梅消息)'(공아트스페이스, 서울), 2010년 제15회 개인전 '청산유수'(금호미술관, 서울), 2009년 제14회 개인전 '비어있는 풍경'(선화랑, 서울)2007 제13회 개인전 '매난국죽'(학고재화랑, 서울), 2006년 제12회 개인전 '동정지간(動靜之間)'(희지당[羲之堂] 화랑, 타이베이, 대만), 2005년 제11회 개인전 '사이 間'(아트포럼뉴게이트, 서울), 2003년 제10회 개인전 '정중동'(포스코미술관, 서울) 제9회 개인전 '일정월화(日精月華)'(소카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북경, 중국), 2002년 제8회 개인전 '문봉선'(선화랑, 서울), 1999년 제7회 개인전 '섬진강-붓길따라 오백리'(아트스페이스 서울 & 학고재화랑, 서울), 1997년 제6회 개인전 '풍경'(진화랑, 부산), 1996년 제5회 개인전 '설악산'(학고재화랑, 서울), 1994년 제4회 개인전 '북한산'(학고재화랑, 서울), 1991년 제3회 개인전 (금호미술관, 서울), 1989년 제2회 개인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1985년 제1회 개인전 (관훈갤러리, 서울)
[수상] 2002 제16회 선 미술상 수상(선화랑, 서울)1987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호암갤러리, 서울)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문인화 부문 수상(국립현대미술관, 과천)1986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회화 부문 수상(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저서] 2010년 <문봉선>(열화당) 2006년 <새로 그린 매란국죽>(전2권,학고재) 1996년 <설악산>(학고재) 1994년 <북한산>(학고재) <문봉선>(아르비방, 시공사)
덧붙이는 글 | [장소] 서울미술관 제1전시실 기간: 2012.12.12-2003.02.17 [관람료(석파정 포함)]: 7000원 (02)395-0238
[위치] http://www.seoulmuseum.org/nr2/?c=visit/13 [주소] (110-817)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01번지
[대중교통] 경복궁역 하차 (지하철 3호선 3번 출구) → 지선 버스 승차(1020, 1711, 7016, 7018, 7022,7212) → 자하문터널입구 하차-광화문역 하차 (지하철 5호선 2, 3번 출구) → 지선 버스승차 (1020, 1711, 7016, 7018) → 자하문터널입구 하차
[작가와의 대화] 2012.12.15(오후3시)에 서울미술관 3층 매트릭스 홀에서 참가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