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새누리당 뽑겠다는 말 하모 맞아 죽심더."경남 김해 봉하마을 휴게소에서 만난 김정희(가명, 74)씨는 말을 아꼈다. 김씨는 "봉하마을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 노인층이다 보니 새누리당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며 "'노무현은 노무현이고, 박근혜는 박근혜'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말은 잘 안 한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대선 민심 들어보니일때문에 봉하마을을 자주 찾는다는 이덕수(가명, 39)씨는 "봉하마을 사람들은 웬만해선 정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며 "안 좋은 일(노무현 대통령 서거)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12일 기자가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주민들은 답변을 꺼리거나 "실명을 언급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12일 오후, 홍정숙(61)씨는 "박근혜 뽑겠다"는 이웃 주민과의 마찰로 속이 상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홍씨는 어묵 국물과 맥주로 쓰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홍씨는 서거 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알고 지낸 주민이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깊다.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할 때 홍씨의 눈은 붉어졌다.
"전체적으로 (노 전 대통령 사저) 비서진과 마을 원로들 의견이 다릅니다. 여기 남은 비서진들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마을 원로들은 대체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원하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마찰은 없지만, 의견 차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분들은 솔직히 고루한 생각을 가진 거라 봐요."홍씨의 술자리를 지키던 권연경(가명, 61)씨는 "하우스에서 핀 꽃은 맥을 못 춘다"며 박근혜 후보를 비난했다. 권씨는 "공산주의는 밥이라도 주는데, MB 정권은 도대체 뭐냐"며 정권 교체를 주장했다.
김해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야권의 관심 지역이 됐다. 그 때문일까. 지난 4.11총선에서 민주당 민홍철 후보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김해갑에서 승리를 거둔 김정권 새누리당 의원을 꺾었다. 비록 패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라 불리는 김경수 후보는 김해을에서 김태호 의원을 상대로 47.89%를 득표했다. 하지만, 김해를 야권 강세 지역으로 볼 수는 없다.
봉하마을이 있는 김해 진영읍의 민심 변화도 눈에 띈다. 지난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주당(68.2%)과 새누리당(25.5%)의 득표율 차이가 컸다. 하지만 지난 4.11총선 때는 새누리당(46.7%)이 민주당(53.3%)을 많이 추격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김해 민심"이모야. 서민들 다 죽겄다."김해 새벽시장에서 만난 황영주(68)씨는 서갑분(71), 박일녀(70)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걸쭉하게 소주 한 잔을 걸친 황씨는 "정치만 생각하면 몸서리치게 된다"며 "박근혜 후보가 돼야 정신없는 정치 싸움이 끝난다"고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박씨는 빈 잔에 소주를 따르며 아무 말 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박정희 대통령님 계실 때가 좋았제. 법만 안 어기고 바른대로 살모 우리한테 피해가 전혀 없었거든. 밥 맥이주제. 나쁜 놈들은 다 잡아가삐제. 을마나 속 편한 세상이었노. 내는 다 필요 없고 박근혜면 된다고 믿는다."새벽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서씨가 입을 열었다. 서씨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박정희 대통령 때로 돌아가고 싶다"며 "배부른 사람들이야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지만 우리처럼 없이 사는 사람들한테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원동에서 만난 이수용(58)씨는 얼마 전 정년퇴직해 현재 어묵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도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비해 믿음이 간다"며 박 후보를 지지했다. 이씨는 "노 전 대통령 영향으로 김해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 되고 나서 김해가 좀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여권이 강하다"고 답했다.
부산은행 부원점에서 만난 안석중(57)씨 역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안씨는 "민주당은 싸우는 것 말고 하는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안씨의 아내 정유자(51)씨는 안철수 지지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로 돌아선 사람이다. 정씨는 "민주당이 지금 이 상태에서 집권을 한다면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며 남편의 말을 거들었다.
삼정시장에서 산오징어를 판매하는 조정규(62)씨는 "보릿고개를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극복했다면, 지금의 서민 경제는 박근혜가 답"이라고 밝혔다. 조씨는 "박근혜에게서 박정희 대통령이 보여서 좋다"며 "박정희 대통령 때는 열심히 일한 만큼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번 대선 이후에도 꼭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어떻게 잊을 수 있나""하이고. 시상에. 아지매요, 단디 알아보고 말하소."김해에서만 10년 넘게 개인택시를 운전한 차정우(가명, 72)씨의 말이다. 요즘 들어 부쩍 손님들과 정치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는 차씨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아줌마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건낸다. 차씨는 "주로 40~50대 아줌마 손님들이 박 후보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며 "정치에 관심도 없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차씨는 이번 대선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차씨는 "법 만드는 사람이 법을 안 지키는데, 이건 자기들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여야가 번갈아 가면서 (집권)해야 상호 견제가 가능하다"고 야당 지지 견해를 밝혔다.
김해 진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손연진(36)씨는 "봉하마을부터 진영까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문재인 후보를 선호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손씨는 "문재인 후보는 자신을 받쳐 주는 사람들이 부족한데, 대통령이 되더라도 (노 전 대통령처럼) 정치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장유로 발길을 돌렸다. 장유 신도시에서 수입 소품 전문점을 운영하는 박진주(49)씨는 노사모 출신이다. 원래 부산에 살던 박씨는 남편의 퇴직과 함께 이곳 김해로 왔다. 박씨는 "김해 시민은 노 전 대통령을 잊어선 안 된다"며 "노 전 대통령의 김해에 대한 애정을 생각한다면 그의 친구 문재인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유 농협 앞에서 만난 대학생 강혜진(21)씨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강씨는 "그동안 MB 정권에서 우리 20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한다면 박근혜를 뽑아서는 안 된다"며 "돈을 내지 않거나 값싼 등록금을 누리는 프랑스 대학생들이 80% 가까이 투표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호영(가명, 32)씨는 내외동에 위치한 학원에서 일한다. 장씨는 문재인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다. 장씨는 "김해는 경전철 문제로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며 "문재인 후보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니 꼭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삼계동에 거주하는 인제대학교 학생 김효민(28)씨는 "부모님은 새누리당 후보를 뽑겠다 하시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며 "박근혜 후보는 야당 공약을 '복지 포퓰리즘'이라 규정하고 자신의 공약은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해에서 민주당이면 무조건 오케이라고?"12일 오전 김해시청 프레스센터에서는 김해시민 7079명이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현장에서 만난 이남우 문재인 캠프 시민네트워크팀장은 "김해시는 경전철 문제로 장애인 바우처, 무상급식 등 여러 복지 예산이 삭감됐다"며 "서민 복지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김해시당 관계자 역시 김해 시민의 표심을 잡기 위해 경전철을 이야기했다. 그는 "경남도지사와 대통령의 당이 같아야 지역 현안이 빨리 해결된다"며 "지금 시민들은 메시아를 바라듯이 서민 경제를 극복할 좋은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해는 야색(野色)이 다소 강하다는 점에 일부 동의한다"며 "하지만 민주당이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과 김해를 연결하는 경전철은 1992년 신 교통수단 정부시범사업으로 선정돼 우여곡절 끝에 2011년 개통했다. 하지만 심각한 적자로 김해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후보는 얼마만큼의 표를 얻을까? 박근혜 후보는 김해에서도 PK의 강세를 이어갈까? 현재 김해 민심은 한쪽으로 확 기울어지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