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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들은 시내 문화유적지를 얼마나 알까. 경복궁, 덕수궁 등 궁궐과 4대문을 아는 사람은 더러 있다. 하지만 자기 집 옆 근처에 있는 문화유적은 거의 알지 못한다.

지하철 이름도 역사 유적지로서의 지명이 많다. 사가정역, 선릉역, 동묘역, 장승배기역 등은 역사 유적지의 이름을 땄다. 하지만 정확한 문화유적지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이는 별로 없다.

표지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서울문화이야기>의 표지이다.
표지<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서울문화이야기>의 표지이다. ⓒ 엘레빗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펴낸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서울문화이야기>(얼레빗, 2012년 12월)는 한양(서울)의 풍습과 문화를 재미있고 진솔하게 기술했다. 특히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2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양 문화와 풍속, 궁궐과 성곽, 궁궐에서 일어난 일, 한양의 역사적 공간, 놀이 문화, 조선 화가들의 그림 속 비밀, 궁궐 음식과 백성음식, 조선 기록문화, 세시풍속과 명절, 24절기의 풍속 등 역사이야기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놨다.

저자는 '레잇비'를 불러 유명한 비틀즈, 20세기 최고의 성악가 파바로티 등은 알아도 '쑥대머리'로 유명했고, 판소리 음반 120만장을 판 임방울 명창을 안사람은 별로 없다고 우리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가하면 자신의 귀를 자른 네덜란드 화가 '고흐'는 알아도 '붓으로 먹고사는 화가' 최북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최북은 산수화에 뛰어나 최산수라고도 불렀고, 그림그리기가 싫을 때는 누가 뭐래도 절대 붓을 들지 않았다고. 어느 날 권세 있는 사람이 윽박지르며 강제로 산수화를 그리라고 명하자 최북은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찌를 정도로 자신을 해칠지언정 구속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애꾸가 되어서도 돋보기 안경을 한 알만 샀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태종 이방원의 '한양천도'가 동전 던지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라의 중대사 도읍지를 결정하는 데 태종은 왜 동전을 던지는 척전(擲錢)을 썼을까.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태종의 속내는 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명분과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요즘 정쟁만 일삼는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인 것이다.

근정전 처마 밑에 그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혹시 공사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 그물을 '부시'라고 하는데 예전 건물을 지었을 때부터 쳐있었다. 새들이 건물을 드나드는 것을 막기위해 '부시'를 쳤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은 분명 세종임금의 작품임을 다 안다. 또 훈민정음 창제가 세종의 지시에 의한 집현전 학자들과의 공동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당시 최만리를 비롯한 대부분 집현전 학자들과 사대부들의 뻔한 반대로 드러내놓고 창제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그래서 세종이 직접 창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누구의 도움을 받았을까. 자식들의 도움이었다.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 정의공주 등 자식들의 도움으로 훈민정음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토박이말도 열거했다. '꽃보라 맞으며 꽃멀리', '봄 산모퉁이의 마파람', '여름 잠비, 가을 떡비', '비를 머금은 거먹구름, 가을 하늘엔 새털구름', '밤사이 몰래 내린 도둑눈', '물기를 머금고 척척 들러붙은 떡눈', '초겨울 약간 내린 풋눈', '마을 앞 큰길에 상대되는 뒤안길', '우회로는 에움길', '산책로는 거님길' 등이다.

종로 피맛골의 유래는 뭘까.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이 엄격히 구분돼 있었다. 상민들은 종로에서 벼슬아치를 만나면 길을 멈추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래서 종로 양쪽의 좁은 길로 피해 다녔다. 벼슬아치의 말을 피해 다닌다고 해 피마(避馬)라는 뜻의 피맛골이 됐다.

종로구 창신동 한성대 뒤편 창신쌍용아파트 2단지 옆 '비우당'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대사성, 대사헌을 지낸 유관 선생의 '우산각'의 훗날 이름이다. 우산각은 조선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유관 선생의 집이었다. 성밖의 후미진 곳에 돌담은커녕 나무 울타리도 없고 물론 대문도 없는 두어 칸 오두막집에 살며, 외출할 때는 말을 타지 않고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 들어올 때 맨발에 베옷을 걸치고 남새밭(채소밭)을 가꿨다. 우산각은 5대손 <지봉유설>의 이수광이 살면서 역시 우산을 펴 근근이 비를 가렸다는 뜻에서 비우당으로 불렀다. 비우당 옆은 세조에게 폐위된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줏빛 물이 들었다는 전설의 샘 '자주동샘'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탐관오리를 '살아있는 주검'이란 의미로 공개처형했던 혜정교와 삼청동 고갯길 '맹현'은 맹사성이 다니던 길, 단종이 죽고 초막을 짓고 살았던 정순왕후의 정업원과 정순왕후의 생계를 돕기 위해 조정에 밀고할 수 있는 남자들이 금지된 금남시장 등의 이야기도 솔깃하게 들린다.

벼락맞고 용정이 된 매국노 이완용의 집, 조선 정신을 짓밟으려 했던 남산 조선신궁, 해학․눈물․사랑이 질펀한 판소리, 연주자와 관객이 따로 없는 우리 굿거리 문화, 신윤복 김홍도 김정희 정선 장승업 등 재미있는 조선 그림 화가의 이야기 등도 관심을 끈다.

그럼 조선시대 대표적인 주당 화가는 누굴까. 단원 김홍도의 '호 취화사', 연담 김명국의 '호 취옹', 호생관 최북의 '눈밭에서 술에 취해 얼어 죽었다', 낙파 이경윤의 술에 취해 낮잠을 즐기는 선비 그림의 '수하취면도', 오원 장승업의 '술에 취해야 그림을 그리던 화가' 등은 술이 아니고서는 붓을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조선을 기록문화 왕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인사 대장경, 직지심체요절, 동의보감, 각종 의궤 등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된 보물들이라고.

특히 설날, 정월대보름, 삼짇날, 단오, 유두, 칠월칠석, 백중과 한가위, 중양절 등 대대로 전해오는 세시풍속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또 저자는 1년간 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계절의 특성을 나타내는 24절기의 의미들을 잘 풀이해 놓고 있다. 지구의 공전으로 해의 위치가 하루 1도씩 이동해 생기는 길을 '황도'라고 부른다. 황도가 0도일 때는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춘분점에 있을 때인데 이를 '춘분', 15도 움직인 때를 '청명', 계속해 15도 이동하면 '곡우' 등으로 순환한다는 것이다.

저자 김영조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지난 2004년부터 날마다 인터넷 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를 독자들에게 9년째 연재하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에 전통과 어우러진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언어로 표현해 한국문화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저서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신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등이 있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서울문화 이야기

김영조 지음, 얼레빗(2012)


#이영조 소장#서울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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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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