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광화문 대첩' 유세에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노란 목도리를 둘러주며 문 후보를 꼭 껴안았다. 현장은 "안철수, 문재인"을 연호하는 시민들의 열기로 폭발했다. 행사 직전까지만 해도 지지철회 선언하는 것 아니냐는 보수 언론들의 우려를 말끔하게 종식시키는 극적인 반전이었다.
'광화문 대첩'에서 안철수 전 후보 다음으로 시민들로부터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은 문재인 캠프 '시민참여단'의 춤추는 선거유세였다. 이들의 선거유세에는 유세차량이 필요 없었다.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됐다.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인터넷라디오 '세이캐스트' 앱을 다운받고 '문재인 방송 주파수를 맞춰라'에 채널 고정, DJ가 틀어주는 음악과 지침에 따라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방식이다. DJ는 닉네임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이다. 이들은 청취자들은 '007요원'이라고 불렀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며 청취자들이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도록 한껏 흥을 돋구는 역할을 했다.
문재인 캠프 시민참여단의 기발한 선거 유세이어폰을 꽂고 있기 때문에 전혀 소음이 발생하지 않지만 참여자들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획기적인 선거 유세방식이었다. 외국에서는 '사일런트 플래시몹'이라고 시도된 적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다.
대선올레TV를 생중계 하던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서해성 작가는 이들을 향해 "시민이 주체가 돼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극찬했다.
특히 가장 큰 주목을 끈 부분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해 온 노란색 아이템이 들어간 드레스 코드였다. 보통 선거 유세라고 하면 후보의 연설에 박수쳐 주고 머릿수 채워주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5일 광화문 대첩에서 만난 시민참여단은 주체적인 참여를 상징했다. 선거의 주인공은 자신들이라며 축제처럼 즐기고 있었다.
광화문 대첩의 진정한 주인공은 후보도 아니고 정당 관계자도 아니고 각양각색의 노란색을 아이템을 창의적으로 준비해온 바로 시민들이었다. 가장 눈에 뛰었던 5명의 친구들에게 드레스 코드의 사연을 물어봤다.
김정희씨(21·여)는 여의도 텔레토비에 나오는 '문제니' 복장을 하고 나왔다. "시민들에게 투표의지를 더 높여주기 위해서는 더 재미난 의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거금 3만 원을 들여서 직접 대여해서 나왔다"고 했다. '문제니'는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메달리는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박지영씨(32·여)는 영웅물 <파워레인저>에 나오는 노란색 헬멧을 쓰고 나왔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깔깔 웃었다. "하이바를 쓰니까 얼굴이 가려져서 참 좋았어요, 부끄럼을 덜 타고 신나게 춤췄죠"라며 자신의 의상을 특장점을 강조했다.
이소은씨(26·여)는 노란색 하트모양 뿔테 안경을 쓰고 나왔다. "문재인 후보에게 하트 뿅뿅 하는 느낌을 표현해 봤어요"라며 즐거워 했다.
정원재씨(29·남)는 노란색 반짝이 재킷을 입고 나왔다. "우리는 이 활동을 문나이트라고 불러요, 나이트 왔으니까 당연히 반짝이 자켓이 등장해야죠"라며 참여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나이트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복장은 현장에 온 여성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또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서영희씨(31·여)다. 노랑색 이소령 전신 타이즈에 노랑색 긴머리 가발을 쓰고 나왔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란색으로 표현해봤어요, 문재인 후보를 온몸으로 사랑한다는 뜻"이라며 "함께 온 친구들이 저보고 지존이라 했어요, 오늘 하루 저는 문재인을 사랑하는 옐로우 우먼입니다"이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노란색 아이템의 최종 종결자는 때밀이 타월이 외에도 노란색 바지, 노란색 신발, 노란색 장갑 등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재미난 아이템을 모두 뒤덮고도 남을 단 하나의 소품이 목격됐다. 바로 노란색 때밀이 타월이었다. 모두가 크게 웃었다. 이번 광화문 대첩의 가장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안철수가 문재인 목도리 감아주는 장면'이 아닌 이 '노란색 때밀이 타월'을 강력 추천하고 싶을 정도였다.
때밀이 타월을 갖고 나온 박성진씨는 "노란색 아이템으로 무엇을 갖고 나올까 많은 고민을 했다. 목욕탕에서 이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재미있어 했다. 다채로워지는 노란색 아이템들은 시민들에게 참여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광화문에서의 획기적인 선거 유세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던 문재인 캠프 '시민참여단'은 다음 유세 장소인 명동 밀리오레 앞으로 이동했다. 대략 200여 명 정도였다. 그런데 명동역 밀리오레 앞에 도착하자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빨간색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새누리당 유세단이 같은 장소를 점령하고 있었던 것. 이곳은 시민참여단이 매일 오후 7시마다 선거 유세를 고정적으로 벌여온 지역이었다.
박 후보 유세단과 충돌... 명동 대첩에 소란 일기도아무런 예고 없이 덜컥 유세장을 빼앗겨 버린 시민참여단은 한동안 큰 혼란에 휩싸였다. 새누리당과 어울려서 그냥 이곳에서 함께해야 할지, 맞부딪혀야 할지,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할지 설왕설래가 오갔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많은 시민들에게 공지된 터라 혼선은 불가피했다.
시민참여단 내부에서도 "같은 장소에서 그냥 함께하자, 평화적으로 댄스 배틀을 붙자"는 의견과 "아니다, 다른 장소를 찾아가는 쪽으로 양보를 하자"는 의견이 서로 엇갈렸다. 결국 후자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을지로입구역 근처 롯데백화점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새누리당이 유세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다시 외환은행 본점 앞으로 장소가 변경됐으나 선거 유세를 하기에는 유동 인구가 너무 적었다. 장소는 1시간가량 계속 변경됐다.
그러는 사이 트위터에서도 "새누리당 유세단이 민투통합당 유세 지역을 점령, 충돌이 빚어질 것 같다"라는 멘션이 돌고돌며 한 때 긴장감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명동 대첩입니다, 광화문 대첩 마치신 분들은 지금 명동으로 이동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계속 리트윗 되기도 했다. 그러자 많은 트위터리안들이 "절대 충돌하면 안 돼요, 새누리당에서 어떤 시비를 걸어도 말려들지 말아야 합니다"며 이구동성으로 침착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고조됐다.
인터넷 라디오 통해 발빠르게 대응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장소 변경이 계속 됐음에도 '시민참여단'의 행렬이 절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 이쪽으로 가라면 이쪽으로 가고, 저쪽으로 가면 저쪽으로 가는 움직임이 신속하고 기동력이 있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참여한 시민 정원재씨(29·남)에게 물어봤다.
"비결은 '인터넷 라디오 방송'입니다. 선거 유세 때는 시민참여단 모두가 '문재인 방송 주파수를 맞춰라'에 채널을 청취하고 있거든요. DJ 제임스본드가 음악도 틀어주고 행동 지침을 이어폰으로 들려줘요. 시민들이 새누리당과 대척하고 있는 명동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DJ에게 알렸고, DJ는 전체 청취자들에게 기민하게 대응하도록 공유를 신속하게 해줬어요. 청취자들도 바로 지침을 따랐고, 덕분에 장소가 계속 변경됐음에도 청취자들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죠. 2백여 명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건 대단히 혁명적인 선거 유세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요. 너무 스릴 있고 재미있어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터넷라디오를 통한 이런 선거 유세 방식은 세계 최초다.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청취해서 듣지만, 청취자들끼리 함께 행동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결국 2백여 명의 '시민참여단'은 1시간을 헤멘 끝에 명동 우리은행 앞에 둥지를 텄다. 참여한 시민들은 오히려 이런 혼선을 즐기는 듯했다. 신나는 음악들이 이어폰을 타고 각자의 귓속으로 다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고, 열정의 춤판이 명동 한복판에서 폭발했다. 시민참여단과 하이파이브를 한 시민들은 현장에서
'인터넷라디오 문재인방송 청취 방법'을 소개받고 그 자리서 함께 춤판에 뛰어들기도 했다.
"문재인을 지지하다면 신나게 춤춰요."춤추는 이들의 표정은 한없이 즐거워 보였다. 문·박 유세단의 충돌은 문캠 시민참여단의 양보로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대신 댄스 배틀이 한바탕 벌어졌다. 승자는 누구일까? 승자는 참여하는 이들의 얼굴 표정에서 금세 승부가 났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쪽이 훨씬 표정이 밝고 즐거웠다.
빨간색 옷을 입은 선별된 예쁜 여대생들은 검은색 레깅스 치마를 맞춰 입고 빵빵한 스피커를 틀어가며 춤을 췄다.
반면 깔끔하게 통일된 것 없이 집에서 각자 준비해 온 각양각색의 노란색 아이템을 소지한 사람들은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직장인·아주머니·할머니까지 남녀노소 다채로웠다. 소박하면서도 창의력이 돋보였다. 헤드폰을 끼고 주위에 소음피해 없이 선거를 축제처럼 즐기는 방식도 새로웠고, 그들이 열정을 뿜어내는 표정도 밝고 힘찼다.
16일 오후 7시에도 명동 밀리오레 앞에서는 문캠 시민참여단과 함께하는 신나는 춤판 '문나이트'가 계속된다고 한다. 이제 선거일이 3일 밖에 남지 않았다. 후보를 지지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있다면 저녁 명동에 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투표가 얼마나 소중한 권리인지 시민들에게 알리면서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교감도 쌓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hopeplanner.tistory.com/438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