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애써온 우리의 노력이 기득권으로 비쳐진다면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도 없이 그마저도 과감하게 내던지는 것이 새로운 정부, 우리 새누리당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고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21일 오전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말이다. '친박 핵심' 중 한 명으로 대선기간 동안 당 사무총장 겸 캠프 당무조정본부장을 맡은 그가 먼저 '기득권 버리기'를 언급하고 나선 것. 5년 전 인수위 출범부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로 타격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를 비춰볼 때, 친박부터 자리 욕심을 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온 셈이다. 이른바 '친박 2선 후퇴론'이다.
서 사무총장은 이어, "우리부터 국민대통합의 가치를 실천하자는 말씀도 드린다"며 "선거기간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상대 선거운동원들에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뜻을 헤아릴 때 진정한 의미의 국민대통합 가치가 실천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국정 기조의 첫 머리에 '화해와 대탕평'을 둔 박 당선자의 뜻을 당부터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박 당선자는 지난 20일 캠프 해단식에서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 이 두 가지만 머리에 담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나갈 때 정쟁이라던가 사적인 생각을 갖고 (이익을) 도모한다든가 하는 일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것"이라며 인수위 구성을 앞둔 권력암투를 사전 경고한 바 있다.
홍준표 "정권 출범 주도세력, 인사·권력 독점하면 그때부터 꼬이는 것"이미 '친박 2선 후퇴론'은 대선 직후부터 여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가 향후 인수위 구성 시 자기 사람들로 담을 쌓는 게 아니라 대승적인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게 요지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의 이상돈 위원은 지난 20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과 한 인터뷰에서 "야당은 물론이고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과도 과감하게 대화를 하고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그러나 대중적으로 수용해야만 한다고 본다"면서 "과거 정부 예를 볼 것 같으면 처음 한 달 정도가 새로운 정부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나, 그런 좀 대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갖고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신임 경남도지사는 21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새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열린 국정수행"을 꼽으며 친박 권력독점을 경계했다. 그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언제나, (새 정부를) 출범시켰던 주도세력들이 인사를 독점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뒤꼬이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정권 출범에 주도세력 역할을 했던 분들은 정권 초기에는 2선 후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경재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 기획조정특보는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 "친박 중에서도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을 한 사람으로, 또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옆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너무 많이 가서, 그냥 있는 서클을 만들면 안 되기 때문에 당선인께서 적절하게 배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는 친박 스스로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날 TBS <열린아침 송정애>에 출연, "친박 중심, 측근 중신 내지 논공행상, 그렇게 가면 또 보나마나 국민들이 고개를 돌릴 것"이라며 "박 당선인으로서는 굉장히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러니까 친박 쪽이라고 하는 사람들, 측근이라고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박 당선인이 자유롭게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물러나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학재 "본업으로 돌아가서 당선인 도울 것"... 친박 2선 후퇴 확산?실제로 친박 내부서도 박근혜 정부의 공직을 일절 맡지 않겠다는 선언도 나오고 있어 확산 여부도 주목된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지난 10월 "이제 저 자신부터 저를 버리겠다"면서 "박근혜 후보가 12월 19일 당연히 이 나라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고 그때 저는 백의종군의 연장선에서 어떠한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 20일 캠프 해단식에서도 "당선인이 세상을 바꾸는 약속을 국민께 했다"며 "그 약속이 모두 실천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당선인께 부담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신처럼 다른 친박들도 '백의종군'을 택해달라는 메시지였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이학재 의원이다. 이 의원은 이날 인수위 참여는 물론, 향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직을 안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선거가 잘 끝났고, (박 당선인 곁에서) 오랫동안 많은 것을 배웠기에 본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라며 "가까이서 모셨던 만큼 (자리와 관계없이) 국회에서 많은 것을 도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다만, "이는 그냥 제 오래된 생각일 뿐이지 누구와 논의한 것은 아니다"면서 '친박 2선 후퇴론'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선 부담을 표했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자 캠프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했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21일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김 본부장은 이날 오후 선거기간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사무실 방문 앞에 이 편지를 붙였다. A4용지 한 장, 자필로 다섯 문장의 짧은 메시지였다. 김 본부장은 지난 10월 11일 선대위 인선 직후 이 방에서 야전침대를 가져다 놓고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이 편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여러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이제 제 역할이 끝났으므로 당분간 연락을 끊고 서울을 떠나 좀 쉬어야겠다"며 "도와주신 여러분께 제 마음 속의 큰 절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함을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적혀 있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이날 개인일정을 마친 뒤 오후 3시경 당사로 돌아와 이 편지를 직접 써서 방문 앞에 붙였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김 본부장은 부산 자택이 아니라 모처에서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10월 초 혼란스러운 캠프를 다잡은 장본인이다. 김 본부장은 당내에서 '친박 퇴진론'이 제기되고 최경환 당시 비서실장이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아 캠프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김 본부장 스스로 금주를 선언했고 야간 회의를 소집하는 등 캠프 내 군기를 바짝 잡았다.
무엇보다 캠프 내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인선 직후 "박근혜 후보의 명령을 기다리지 말라, 우리가 결정해 선(先)집행하고 후보에게 후(後)보고한다, 책임은 내가 진다"고 지시했다고 전해졌다. 실제로 그는 지난 11월 29일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전에는 재량권이 없어서 뭐가 안 됐던 것 아니냐"면서 "나는 요새 5분 만에 결정한다, '부족한 결정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 본부장은 앞서 4·11 총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당선인의 숨통을 틔어준 이기도 하다. 2007년 대선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좌장이었다가 세종시 정국 과정에서 '탈박(脫朴)' 했던 그는 4·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친이들의 무소속 출마를 막아 세웠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선대위 합류 직후 총선에서 불출마하거나 공천을 못 받은 친이계 인사들을 캠프에 합류시키면서 새누리당의 결집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