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3시경, 지하철 5호선 여의도 역은 근처 여의도 공원에서 열리는 '솔로대첩'을 향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광경에 역내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가 하면, 행사 참가 여성들의 드레스 코드인 '빨강'으로 옷을 맞춰 입은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지상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탈 수 있을 정도였다.
'솔로대첩'은 지난 11월 3일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광운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유태형(24)씨가 '님연시(님이 연애를 시작하셨습니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크리스마스에 외로운 솔로들끼리 남자는 하얀색, 여자는 빨간색 옷을 입고 여의도 공원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것이 시초다.
이후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이 한 달여 만에 무려 3천 명. 25일 현재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2만8천 명에 이른다. '솔로대첩'은 부산과 제주 등 각 지역에서도 따로 개최됐다.
행사 기획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관심이 집중되자, 서울시에서는 각종 범죄 발생 우려해 공원 사용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유씨는 행사를 이틀 앞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행사를 여의도공원에서 '플래시 몹' 형태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플래시 몹 형태로 진행하면 집회시위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주최 측은 자경단을 꾸려 범죄 발생을 예방할 뿐 아니라, 행사 본연의 취지에 따라 여러 대기업들이 제안한 상업적 이벤트는 모두 거절한다고 밝혔다.
산만한 행사 진행... 일각에선 'SNS 가능성' 엿보기도이날 행사가 예정된 여의도 공원 입구에서는 커플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과 핫팩과 어묵 등을 파는 상인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국방송>, <경인방송> 등 지상파를 비롯해 행사를 촬영하러 온 취재진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이날 참가 인원은 주최측 추산 1만 명, 경찰 추산 3천 명으로 집계됐다.
오후 3시가 지나자 공원 전체가 참가자들로 북적였지만 진행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이크나 확성기를 사용할 경우 집회로 간주되는 탓에 '솔로대첩'은 별다른 순서 없이 공원 곳곳에서 자발적이고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솔로대첩에 '자발적 참여의사'를 밝혔던 개그맨 유민상씨가 공원 한 쪽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육성을 통한 진행이어서 원활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행사가 시작된 지 40여 분 후 공원 오른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며 "와~" 하는 함성소리가 들렸다. 서울 솔로대첩 '1호 커플'의 탄생이었다. 공식 1호 커플이 된 민세홍(20·서울시 용산구)씨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쁘다고 고백했다"며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라 외치는 등 밝은 모습으로 <한국방송> 등 뉴스에 보도됐다.
그러나 이후 공원에서 다시 만난 민씨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참가자에게만 맡겨져 있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커플이 됐던 이지희(가명)씨가 19살 미성년자였다"며 다른 여성 참가자를 다시 찾고 있었다.
민세홍씨와 함께 참가한 친구 한민규(24)씨는 "주최 측이 진행을 잘 못하는 것 같다"며 "마이크도 없이 이게 무슨 행사냐, 진행이 아예 안 되고 있다"며 허탈해 했다. 그는 또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 놀랍다"면서 "행사 진행은 아쉽지만 SNS의 힘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플래시몹' 형태 진행, 스태프 많았지만 진행 어려워주최 측에 따르면 행사를 위해 모인 스태프만 무려 230여 명. 노란색 옷을 입고 행사를 준비하던 김아무개(27)씨는 "마이크나 확성기를 쓰면 '집회'가 된다고 해서 쓸 수 없었다"며 "플래시몹 형태로 하려다 보니 참가자들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원래 주최 측에서 준비한 '지령지'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참가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스태프는 "4시쯤 다시 모여 대열을 정비할 예정이다"라고 말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예정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지령지란 주최 측에서 만든 행사 진행의 일환으로 참여 방법이 적혀 있는 작은 쪽지를 말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을 경우 다가가 '공식 암호'인 "같이 산책하실래요?"를 말하면 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지령지가 공원 입구에서 배포된 데 반해, 참가자들은 공원 후문과 옆문 등 곳곳에서 몰려들어 정작 해당 쪽지를 받고 행사에 참가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참가를 위해 경기도 가평에서 여의도까지 왔다는 김재영(30)씨는 "대규모 미팅이라고 해서 왔는데 진행이 전혀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솔로대첩' 주최자인 유태형씨도 공원 뒤쪽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유씨는 행사 진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행사 운영과 정보 전달 면에서는 실패한 것 같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가서 그냥 말하면 된다"며 "벌써 몇 커플 생겼다"고 답했다. 유씨는 오는 25일 방송되는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최강 오지랖남'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이후 또 다른 커플로 김진영(21)씨와 고수민(21·여)씨가 탄생했다. 고씨에게 먼저 다가가 고백에 성공했다는 김씨는 "처음 만난 여자 친구라 황홀하고 꿈만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커플이 돼 기분이 얼떨떨하다는 고수민씨는 "솔로가 된지 2년이 됐는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 뒤 까페로 갈 예정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공원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된 탓에 '솔로대첩'을 통해 탄생한 커플은 공식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다.
초록색 스머프와 임금 복장 등 이색 참가자들도수많은 사람들 중 이색적인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 임금 복장을 하고 나타난 최한호(21·서울시 용산구)씨는 "연예인 박지선씨가 솔로대첩에 온다고 해서 참가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제껏 8명 정도가 대쉬했지만 박지선씨를 위해 모두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색 옷을 입고 나타난 고범진(32·서울시 동대문구)씨는 "인터넷에서 보고 구경하러 왔다"며 "기대하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행사가 정신이 없다, 대충 진행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외국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페이스북을 보고 찾아왔다는 교환학생 장찡찡(23·여·말레이시아)씨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함께 온 이아추(21·여·대만)씨는 "커플이 돼서 나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파란 눈의 참가자 마이크(MIke·27)씨와 스캇(Scott)씨는 "여기 온 사람들이 다들 행복해 보인다"면서 "여기서 실제로 연인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행사 자체가 흥미롭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취재를 온 외국 언론들도 눈에 띄었다. 중국 CCTV에서 취재를 온 기자 주효군씨는 "중국에는 없는 신기한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취재진들은 많은 군중들을 촬영하기 위해 국기 게양대와 농구 골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많은 군중을 하늘에서 효과적으로 찍을 수 있는 항공촬영 카메라 '헬리캠'도 등장해 여의도 공원 위를 날아다녔다.
마케팅 활용·등록금 마련 위해 행사 참관등록금을 벌기 위해 왔다는 대학생들도 만났다. 장한슬(24·여·한국외대)씨와 이동건(21·김포대 컴퓨터공학)씨는 추위에 떨며 공원 입구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씨는 "한 학기 등록금이 380만 원 정도 된다"면서 "등록금을 위해 평소에도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번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 같아 동생들과 왔다"고 말했다. 애초 계획은 성사된 커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었으나 "산만한 진행으로 커플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이씨도 "본전도 못 뽑게 생겼다"면서 "행사가 시작된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는데 사진은 8명밖에 못 찍었다"고 덧붙였다.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는 정아무개(50)씨는 '솔로대첩'을 회사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참관했다.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호텔에서 일하는 정씨는 "이런 플래시몹 행사가 하나의 트렌드인 것 같다"며 "트렌드 변화를 잘 캐치하기 위해 행사에 와 봤다. 다만 마이크를 사용해 식전행사나 공연 등을 진행했으면 더 많은 볼거리가 있는 행사가 됐을 텐데, 그런 진행이 전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행사는 마땅한 시작도 끝도 없었다. 사방이 온통 어두워진 오후 7시경에도 공원 양 쪽에서는 40~50여 명이 남아 자발적인 만남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날 치안을 위해 행사에 동원된 경찰만 약 400명. 애초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성범죄나 절도 등의 범죄는 일어나지 않은 채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 됐다. 그러나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공원 벤치에서 20대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여러분 안 생겨요!!"라고 외치는 등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단비뉴스> 블로그(http://blog.naver.com/danbinews)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