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당했다. 여러가지 음모론이 있긴 하지만, 경찰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암살은 리 하비 오스왈드라는 사람의 단독범행이었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자전적인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신이 민주당 지지자라는 사실을 밝혔었다. 스티븐 킹은 1947년에 태어났으니 케네디가 죽었을 때는 고등학생이었다.
사람의 정치적인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비록 학생이었지만 스티븐 킹은 당시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을테고, 그런만큼 케네디의 암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충격이 <11/22/63>이라는 작품을 구상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킹이 이 작품을 처음 기획한 것은 1972년이었다고 한다. 킹의 첫번째 장편인 <캐리>가 발표된 것이 1974년이었으니 킹은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기도 전에 <11/22/63>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50년 전의 과거로 향하는 창고<11/22/63>에서 킹은 케네디를 살리기 위해서, 아니 케네디의 암살을 막기 위해서 시간여행을 시도한다. 주인공은 소설가를 꿈꾸는 서른다섯 살의 교사 제이크 에핑이다. 제이크는 동네친구이자 술집주인인 앨로부터 비밀스러운 제안을 받는다.
앨은 자신의 술집창고에 과거로 떠나는 문이 있다고 말하며 시험삼아서 과거에 잠시 다녀와보라고 제이크에게 말한다. 제이크는 앨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창고에 들어서고 앨의 말처럼 깜짝 놀랄만한 시간여행을 경험한다.
제이크가 다녀온 곳의 시간은 1958년 9월 9일이다. 무려 5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서 과거로 내려간 것이다. 제이크는 그곳에서 훌륭한 맛의 맥주를 마시고 이제는 고인이 되었을 과거의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앨은 제이크에게 시간여행의 규칙을 알려준다. 창고를 통해서 과거로 내려가면 그곳의 시간은 항상 1958년 9월 9일이다. 내려갈 때마다 매번 처음처럼 여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리고 과거에서 몇 시간이나 몇 달을 보내고 돌아오더라도 현실의 시간은 고작 2분이 경과한 상태다. 정말 편리하고 매력적인 시간여행인 것이다.
앨은 제이크에게 본격적인 제안을 한다. 과거로 내려가서 케네디의 암살을 막으라는 것이다.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좀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그러니 자네가 과거로 가서 역사를 바꾸라고 말한다. 제이크도 고민 끝에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과거로 떠난다. 과거의 시간은 여전히 58년 9월 9일, 제이크는 5년 뒤에 일어날 케네디의 암살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상상하기 힘든 시간여행의 부작용시간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만, 만에 하나 과거로 떠날 수 있다면 과거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다면 합법적으로건 불법적으로건 돈을 버는 일은 아주 수월하다.
실제로 제이크와 앨은 과거로 내려가서 도박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1958년부터 그 이후에 있었던 주요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모조리 알고 있다면 거기에 베팅해서 엄청난 돈을 받아낼 수 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사람들이 순박했고 환경도 좋았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음식맛도 훨씬 좋다.
과거에는 휴대폰이나 인터넷도 없지만 그런 것이 없어서 더욱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케네디의 암살이 시도될 때까지 과거를 충분히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과거에서 사소한 일 하나를 바꾼다면 그 때문에 이후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한 블록 걸어가서 빵 한 덩이, 우유 한 통만 사더라도 미래는 바뀔 수 있다. 나비효과처럼. 하물며 케네디의 죽음을 막는 것은 빵 한 덩이 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간여행이 힘든 이유는 바뀌지 않으려는 역사의 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상상하게 된다. 시간여행만큼 매력적인 여행도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1/22/63>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