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전후해 애국선열 윤봉길 의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윤 의사는 우리 항일투쟁사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고향(충남 예산)에서 농민운동과 계몽운동을 하다가 상해로 망명한 윤 의사는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의열투쟁으로 자신을 민족을 위해 불사른 분이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연(천장절(天長節)과 상하이 점령 전승기념 행사장에 폭탄을 던진 윤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5월 28일 상해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윤 의사의 시신은 인근 공동묘지에 암매장되었다가 해방 후 백범이 유해를 봉환해 효창원 3의사 묘역에 안장했다. 대선이 치러진 지난 19일은 윤 의사 순국 80주기였다. 거사에 앞서 윤 의사는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 앞으로 편지 한 장을 남겼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兵丁)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어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대선 후 윤 의사의 이름이 다시 거론된 것은 지난 24일 인수위 첫 인사 때 수석대변인으로 임명된 윤창중씨 때문이었다. 평소 막말과 과도한 언사로 논란을 빚어온 윤씨는 대선 이틀 뒤인 지난 21일 종편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가 인수위 참여 가능성을 묻자 "그런 말은 제 영혼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요 윤봉길 의사 보고 이제 독립됐으니까 문화관광부 장관하라는 말과 같은 겁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그런데 윤씨는 불과 3일만에 말을 바꾸고는 인수위 수석대변인 자리를 수용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윤 의사를 거론했다. 그는 자신의 인수위 참여를 두고 "윤봉길 의사가 제 문중의 할아버지인데 '만약 윤봉길 의사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 첫 번째 인선 제안을 받았다면 과연 거절했을까' 생각해 봤는데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애국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고, 저 또한 그런 (애국심의) 판단으로 (수석대변인 제안에) 응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윤창중씨는 파평 윤씨인 것은 맞지만, 윤 의사의 직계 후손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한 관계자는 "파평 윤씨가 전국에 120만 명이 있는데 우리는 윤 의사 형제의 자제분들(4촌)까지를 유족으로 보고 있다"며 윤씨가 윤 의사의 유족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윤창중씨가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윤 의사가 모셔져 있는 효창공원에 와서 참배를 하거나 윤 의사의 순국, 의거행사 등에 애정을 갖고 참석한 적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윤씨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결국 윤창중 수석대변인은 '문중의 할아버지'인 윤봉길 의사에 대해 평소 별다른 추모의 마음도 갖지 않다가 자신의 궁색한 처지를 변명하기 위해 애국선열로 명망이 있는 윤 의사의 이름을 끌어다 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를 두고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윤봉길 의사는, 어느 개인의 것도 아니고, 문중의 것도 아니고, 온 겨레가 가슴 속에 소중히 모신 민족혼입니다. 자신의 입지를 변명하기 위해 동원될 분이 아닙니다"라며 윤창중씨의 처사를 꾸짖었다.
이걸로 '윤봉길 의사' 건은 끝나는 싶더니 그게 끝이 아니었다. 27일 2차로 김용준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 관계자 인사가 추가로 발표되었는데 그 속에 윤봉길 의사의 손녀가 포함돼 있었다.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윤주경(53)씨가 그 주인공. 윤 부위원장은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선대위 산하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한 윤씨는 2006년부터 올해 초까지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와 독립기념관 이사를 지냈다.
부위원장에 임명된 당일(27일) 그는 종편 <채널A> 출연해 박 당선인과의 인연, '대통합'의 내용 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난 4일 열린 대선후보 3인 첫 TV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두고 친일파 후예라고 지칭한 것은 연좌제라며 이 후보를 강하게 비난했다. 또 참여정부에서 친일파 재산환수를 통해 독립운동가 후예들을 지원하고자 한 것을 두고는 "치욕스러웠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을 옮겨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앵커 : 이정희 후보가 TV토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을 얘기하면서 박근혜 후보를 친일파의 후예라고 했는데 윤봉길 의사의 후예로서 일부에서 친일파의 후예라고 말하는 박근혜 당선인을 위해 일하는데 불편함 같은 것은 없나?윤주경 : (불편함은) 없다. 이정희 후보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진보의 최고의 가치는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후보가 가장 미워해야 할 것은 '연좌제'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후보는 박 당선인에게 연좌제를 적용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앵커 :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들었다. 친일파나 그 후손은 잘 먹고 잘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은 힘들게 살고 있다는 지적이 진보진영에서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윤주경 :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로 나라가 능력이 생기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국가유공자 자녀들에게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보내줬다. 그 결과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살 수 있었다. 진보진영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더 잘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었어야 했지. 친일파들이 잘사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참여정부에서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뭘 해주는 게 치욕스러웠다. 독립운동가 지원은 국가예산으로 해줘야하는 것이지 그들(친일파 후손)도 부당하다고 하는 재산환수를 통해서 도와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윤 부위원장의 발언 가운데는 적절치 못한 내용이 더러 포함돼 있다. 즉, 이정희 후보가 박 후보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창씨개명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를 언급한 것은 '팩트'를 언급했을 뿐이다. 그로 인한 '부정적 평가'는 박 전 대통령이 감내해야할 몫으로, 이는 '네거티브'라기보다는 후보 검증 차원으로 보는 것이 맞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군인'이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도 단지 박 후보에게 불리했다고 해서 이를 '연좌제'로 몬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
다음, 참여정부에서 친일파들의 재산환수를 통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도우려 한 걸 두고 치욕스러웠다고 한 점. 윤 부위원장이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대의(大義)에서 보면 옳지 않다. 참여정부의 친일파 재산환수는 90년대 들어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소송'이 잇따르면서 국민적 분노가 응집돼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특별법을 제정해 추진한 것으로, 이는 '친일청산'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는 엄밀히 따지자면 해방 후 반민법에서 규정한 '재산몰수' 조항의 정신을 되살린 데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불법행위'라도 되는 듯이 '치욕스럽다'고 한 것은 윤 부위원장이 '몰역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친일파는 대를 이어 잘 먹고 잘 사는 반면 독립운동가 후예들은 가난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대를 이어 곤궁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사회에 공공연히 떠도는 말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독립운동가나 그 후예들에게 제대로 된 예우를 해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것도 주로 진보진영으로부터. 그럼에도 윤 부위원장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그가 독립운동가 후예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윤 부위원장은 27일 <채널A>에 출연해 박근혜 당선인과는 3~4년 전 지인의 한 출판기념회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박 당선인이 조카(동생 박지만의 아들) 얘기가 나오면 평범한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 박근혜의 인간적인 면에 끌렸다는 이 이후로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인연에 백범 김구 선생의 후예들과도 엮여 있다는 점이다. 빙그레 회장 출신의 김호연 전 한나라당 의원은 백범 손녀 김미씨의 남편이다.
김 전 의원은 박 당선자의 서강대 동문으로 이른바 '서강대 인맥'의 핵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박근혜 대선캠프(국민행복캠프)의 총괄본부장을 지냈다. 지난 2010년 5월 19대 총선 당시 윤주경 부위원장은 김호연 전 의원의 선거유세를 도왔다. 5월 25일 천안시내 유세 때 김미씨는 "저의 할아버지이시고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큰 뜻이었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데 그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윤주경씨는 "할아버지 대의 뜻을 이어 큰 정치를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며 김호연 후보를 지지했다.
일제하 항일 독립투쟁의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직계 후예들이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당선자를 지근에서 돕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들먹인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친일문제 등 과거사 청산문제가 국민적 차원에서 깨끗하게 매듭 지워지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인식태도 등을 감안할 때 항일투사들의 후예들이 개인적 친분을 앞세워 '박근혜 품'에 안긴 것은 독립운동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을 걸로 보여 향후 논란이 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