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에 있어서 박근혜와 문재인의 대결을 프로와 아마추어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아마추어가 아무리 날고 긴다해도 프로를 이기긴 힘들다. 당장 정치 이력으로 봐도 그렇다. 수십 년 정치를 보아오고 직접 해 온 박근혜에 비해 문재인의 정치 이력은 짧기 그지없다. 노무현이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그는 중앙 정치인이 아니라 지방의 인권 변호사로 그쳤을 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마추어 문재인이 이번 대선에서 잘 싸웠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잘 싸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백전노장들이 뛰는 프로 축구팀과 대학 아마추어 팀이 싸웠을 때, 근소한 점수 차로 지는 경우에 그 대학 팀에게 잘 싸웠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드러나는 모습뿐만이 아니라 내용도 그랬다. 박근혜 캠프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비해 문재인 캠프는 굼뜨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반칙을 쓰지 말라며 굳은 의지를 보인 문재인이었다.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싸워서 패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8대 대선은 박근혜의 승리로 결판났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프로 박근혜와 아마추어 문재인이 싸움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도 박근혜의 프로 생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의 대선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내게 엄습한 상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절반에 가까운 반대 쪽 사람들을 먼저 위로하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프로 정치인 박근혜가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대통령직을 감내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아마추어'라는 단어 안엔 '그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 '비전문가', '여유를 갖고 임하는 素人(소인)' 등의 의미가 있는데, 이 속에 공통으로 전제되는 것이 '인간적'이라는 수식어가 될 것이다. 정치를 하더라도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고, 국민을 만나더라도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이 느껴지는 것을 나는 정치에 있어서의 '아마추어'라고 생각한다. 그도 선거 기간 내내,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서도 '국민 통합'을 강조했으니까 더욱 그렇다. '통합'은 구호로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인정 그리고 진실이 전제될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 선임을 볼 때, 아니다 싶은 생각이 앞서는 것은 나만이 가지는 것일까. 박근혜 선대위 관계자들을 큰 비중으로 참여시켜 출범부터 '회전문 인사'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역주의 청산을 고려해서 선임한 호남 사람들을 볼 때도 그렇다. 정치계에서 수명을 다 한 사람들 몇 명을 구색 맞추는 식으로 끼워 넣는 것은 진정한 지역 배려라고 할 수 없다. 지나간 구 징치인인 그들에게 완장을 채워주면 돌출 행동과 발언으로 국민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젊고 전도양양한 호남 출신 정치인들도 많다. 인수위에 지역 배려를 감안할 양이면 그런 사람을 인수위원으로 발탁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앞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비교해서 말했지만 솔직히 '프로'에 대한 나의 관점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프로'하면 먼저 돈이 떠오르고, 또 내용보다는 형식을 우선시하는 영역으로 생각된다. 거기에 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중하는 성적 지상주의도 부정적 내용에 한 몫하고 있다. 프로 박근혜에 대한 우려도 그런 것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선거 운동 기간 중, 한 대국민 약속을 당선 뒤에도 우직하게 실천해 나가는 일은 프로보다 아마추어 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한 약속을 쉽게 뒤집는 것은 고도의 테크닉과 권모술수에 능한 프로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당선자 박근혜가 지금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51 %의 지지자들보다 48 %의 반대자들을 아우르는 일이다. 그들의 아픔과 허탈감을 위로하고 채워주는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국 대통령 임기 5년을 이어가야할 박근혜 당선자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반대 쪽 사람들이 방치되어 있지 않고, 정치의 한 파트너로 바로 서 있을 때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가 18대 대선에 당선된 것은 적극 지지층 극우 보수파들에 더해 많은 중간층 사람들이 표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극우 보수 층은 박근혜가 어떻게 하든 지지의 팔을 내리지 않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당선 뒤 일련의 흐름을 볼 때, 그것과는 좀 동떨어진 모습들이 눈에 띈다.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인수위 수석 대변인을 놓고 볼 때, 과연 박근혜 당선자가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윤창중이라는 사람은 유신 때에나 적합할 언론인이다. 곡학아세 언론인의 전형성을 그에게서 발견한다. 언론인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고, 논지의 일관성도 결여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글을 읽고 상처 받을 독자를 안 중에 두지 않는 독설은 언론인으로서 자질 부족에 해당한다.
이런 자를 앞세워 당선자의 의중을 국민들에게 전단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외면을 당할 가능성이 많다. 당장 야당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며, 생각 있는 여론 주도층을 설득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때, 역사가 과거로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다. 그 염려의 바로미터로 과거에 매몰된 사고를 가진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 봤다. 윤창중과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독설로 배척하는 안하무인의 사람.
두 달 남짓 활동할 인수위원을 인선하는 데서 정치 발전과 세대 교체를 엿볼 수 없는데, 앞으로 5년 대통령 재임 기간 중의 인선 그림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박근혜 당선자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쓰는 사람에게서 먼저 보여줘야 한다. 지지하는 사람들만을 가지고 정치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자리가 어려운 것이 반대하는 국민들도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앉힐 때, 반대하는 쪽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인사를 적합한 자리에 임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로 국민들의 눈에 비춰졌다면, 이젠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로 국민들이 새롭게 인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의 5년 임기가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서 주객을 바꿀 수 있는 기간이다. 그가 국민 전체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박수를 받으며 임기를 끝낼 때 딸로 인해 아버지의 부정적인 미미지가 상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사는 모든 일의 시작이고 끝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여론에 귀 기울이는 당선자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