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지난 10월 6일 한미 미사일 지침이 개정됐다. 이로써 한국군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가 최대 300킬로미터에서 최대 800킬로미터로 늘어남과 동시에, 무인정찰기의 탑재 중량도 최대 0.5톤에서 최대 2.5톤으로 늘어났다. 이를 두고 정부 일각에서는 우리의 군사 주권 혹은 미사일 주권이 그만큼 강화됐다며 자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자찬할 만한 일인지 아닌지가 지난해 12월 24일 드러났다. 이날 미국 국방부는 그간 해외 수출을 꺼리던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4대를 한국에 팔겠다고 의회에 통보했다. 글로벌 호크의 탑재 중량은 2.25톤이다. 국방부가 의회에 통보한 판매대금 총액은 한국 돈 1조 3천억 원이다.
미국이 '팔겠다'는 글로벌 호크, 선심인가10월에 미사일 지침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이것을 한국에 팔 수 없었다. 미국이 한국군 무인정찰기의 탑재 중량을 0.5톤으로 묶은 상황에서는 탑재 중량 2.25톤인 글로벌 호크를 한국에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매매는 미사일 지침 개정의 직접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글로벌 호크를 한국에 파는 것이 무슨 은전이라도 베푸는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조만간 단독으로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을 수행하게 될 한국군이 북한군의 동향을 좀더 효과적으로 정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인 양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진정한 의도는 자국의 군수업체를 돕는 데 있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정부로서는 이 무기를 사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2012년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6퍼센트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7년까지 이 비중을 2.9퍼센트로 낮추겠다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약한 바 있다.
재정적자 확대와 국방비 축소로 내수시장이 줄어든 미국 군수업체의 입장에서 볼 때, 거드름을 피우며 비싼 값에 글로벌 호크를 팔 수 있는 나라는 몇 곳 되지 않는다. 유럽에 팔고 싶지만 그곳 역시 재정위기가 심해서 고가의 무기를 팔기가 쉽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한국만큼 만만한 소비자도 찾기 어렵다.
이런 사실을 보면, 미국이 미사일 지침을 개정한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자국 군수업체의 활로를 뚫어줄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미사일 지침 개정을 자주권의 강화로 받아들인 한국 정부 일각의 평가는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미 국방부가 제시한 판매 가격이 한국 측의 예상 금액인 4천여 억 원보다 세 배 이상 높다는 것은 미국의 의도가 순전히 돈벌이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북 억지력 강화를 돕겠다는 것은 비싼 값에 물건 팔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한미동맹은 한국에 별다른 이익도 되지 못하면서 한국에 금전적 피해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 동맹은 돈만 드는 동맹일 뿐만 아니라 상식에도 맞지 않는 동맹이다. 세상 이치를 볼 때, 돈을 쓰는 쪽은 그렇지 않은 쪽으로부터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한국이 돈도 써야 하고 머리도 숙여야 하는 동맹이다.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동맹일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머리를 숙이는 건 당연? 글쎄올시다이 같은 한미동맹의 모순을 제기할 때마다 친미파들이 거론하는 사례 중 하나가 신라 김춘추의 나당동맹이다. 강대국에 머리를 숙여서라도 현실적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 지혜로운 처세술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러나 그것이 틀렸다는 점은, 한국이 한미동맹에서 현실적 이익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면, 친미파들은 그의 사례를 더 이상 거론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흔히 친미파들은 자신들과 김춘추를 동일한 범주에 넣으려고 하지만, 그들과 김춘추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친미파는 돈을 쓰면서 미국을 붙들고 있는 데 비해, 김춘추는 돈을 쓰지 않고도 당나라를 붙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김춘추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망시킨 민족의 죄인이다. 따라서 김춘추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의 모든 면을 죄다 부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행적 속에는 현대 친미파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백제 의자왕의 압박에 시달리는 신라를 구하기 위해 김춘추가 642년에 고구려 연개소문을 방문했다가 감옥에 수감된 사례를 잘 알고 있다. 이때 연개소문이 그를 가둔 것은, 그가 군사를 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아무런 대가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연개소문은 "충북·경북 경계인 죽령 이북을 할양해주면 고구려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춘추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땅을 내줄 수는 없으니 그냥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무상 렌트'를 요구한 것이다.
당시 마흔 살인 김춘추는 사신의 특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빈손으로 찾아온 그를 보고 고구려인들은 불쾌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그의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김유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고구려를 빠져나갔다.
<일본서기> '고토쿠 국왕(소위 천황)' 편에 따르면, 김춘추는 마흔다섯 살 때인 647년에 왜국으로 건너갔다. 비담의 쿠데타 와중에 선덕여왕이 사망하고 진덕여왕이 즉위한 틈을 타서 백제가 신라를 압박하던 때였다.
김춘추가 현해탄을 넘은 것은 왜국 군대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국 방문에서 목적을 거두지 못하자 곧바로 당나라에 가서 군대를 요청한 사실을 보면, 왜국을 방문한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왜국도 고구려처럼 김춘추를 억류했다. 그의 행동 패턴을 보면, 왜국에 가서도 '무상 렌트'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국 역시 고구려인들과 똑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이 황당한 신라 외교관에 대해 불쾌함과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대주의 외교 김춘추 따라하려면 제대로 해야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도 김춘추는 무사히 일본을 빠져나왔다. 신라로 돌아온 그는 곧장 당나라로 직행했다. 방문 목적은 군대를 빌리는 것이었다.
두 번의 고초가 교훈이 됐는지, 김춘추는 이번에는 뭔가 하나를 준비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덕여왕 편에 따르면, 그것은 신라 관복 등을 중국식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이었다. 당나라한테는 딱히 큰 선물이라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이런 방법으로라도 환심을 사려 했다.
관복을 당나라 식으로 바꾼다는 것은 분명히 자주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보면,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중대한 사안은 아니었다. 김춘추가 태어나기 이전인 4~6세기에는 중국대륙에서 유목민족과 중국 한족이 대결하는 과정에서 관복을 비롯한 의복문화가 상호 융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관복을 바꾸는 것이 당시로서는 크게 흠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북중국을 지배한 북위의 고조황제(효문제, 471~499년 재위)는 선비족의 언어를 스스로 포기하고 중국 한족의 언어를 선택했다. 정복자인 선비족이 피정복자인 한족의 언어를 택한 것은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서가 아니라 중국 땅을 좀 더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에서였다.
지금 우리의 감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문화를 채용하는 일이 흔히 발생했다. 그러므로 '군대만 빌려주면 신라 관복을 당나라 식으로 바꾸겠다'는 김춘추의 제안은 당시로서는 그렇게 굴욕적인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주 잘한 일도 아니었다.
결국 김춘추는 신라를 돕겠다는 당나라 태종(당태종)의 약속을 받아냈다. 물론 당장에 군사 지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유사시에 당나라를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당나라가 군사지원을 약속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국의 전략적 필요 때문이었지만, 상당부분은 김춘추의 개인적 특성 때문이었다. <일본서기>에 묘사된 것처럼 그는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용모와 얼굴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언변과 열정도 탁월했다. 당태종이 그에게 한 번에 푹 빠진 사실을 볼 때, 이런 특성들이 당태종의 마음을 움직인 측면도 컸다고 볼 수 있다.
신라 관복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성사시킨 동맹이니, 신라 입장에서 볼 때 나당동맹은 '100퍼센트 무상 렌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춘추는 영토를 할양하지도 않았고 '1조 3천억 원'을 쓰지도 않았다. 김춘추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지금의 한국 정부처럼 엄청난 국민 혈세를 당나라에 갖다 바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태종무열왕(김춘추)이 당나라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도 돈을 주고 나당동맹을 체결한 게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강력한 고구려 장수태왕(장수왕)도 중국에 48회나 조공했다. 왜냐하면, 조공은 물물교환 형식의 무역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편에서도 "조공이 늘면 답례도 늘었다"고 했다. 이런 경우에 흑자를 본 쪽은 거의 다 신하국이었다. 유목민족이 황제국인 경우는 신하국이 적자를 봤지만, 농경민족이 황제국인 경우는 황제국이 적자를 봤다.
농경문화권의 황제국은 지역 패권을 행사하기 위해 무역적자를 감수했다. 그러므로 중국에 대한 조공은 외형상으로는 굴욕적인 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무역흑자를 얻는 일이었다. 김춘추 시대의 조공도 마찬가지였다. 김춘추는 당나라를 상대로 무역흑자를 얻으면서도, 당나라 군대를 공짜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대주의 외교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김춘추도, 돈을 쓰면서 중국을 끌어들이지는 하지 않았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할 목적으로 비싼 글로벌 호크를 사주는 한국 정부를 보면 김춘추 역시 분개할지 모른다.
김춘추처럼 살면 안 된다. 또 김춘추처럼 살 자신도 없으면서 그를 흉내내서도 안 된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김춘추처럼 살 자신도 없으면서 그를 흉내내는 '짝퉁 김춘추'다. 만약 '진품 김춘추'가 꼭 되고 싶다면, 국민 혈세를 쓰지 않고도 미국과 미군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