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6시 울산의 최저 기온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0.2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이 눈 앞에 보이는 30m 고공은 거센바람이 더해져 체감온도가 훨씬 더 떨어진다. 이곳에서 80일 째 간이천막 하나로 두 평 남짓한 철판위에서 농성중인 사람들이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 이들에게 현재 닥친 두려움은 살을 에는 듯한 혹한이 아니다.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강제진압이다.
울산지방법원 집행관이 전날 결정문이 적힌 간판을 설치했다. 14일까지 농성을 풀지 않으면 15일부터 강제퇴거에 들어간다. 15일부터는 농성자 1인당 매일 30만 원씩의 벌금도 부과된다. 또한 철탑을 지키는 비정규직 조합원의 송전철탑 주변 천막 등도 11일까지 철거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법원이 강제 철거한다.
(관련기사: 울산지법, 철탑농성자에 매일 60만원 지급 판결)이날 법원집행관은 "농성을 풀지 않으면 강제퇴거 한다는 원칙에 따를 것이다. 만약 노조측이 저항 한다면 저항을 뚫고서라도 법 집행을 할 것이다"고 밝혔다.
여기다 철탑농성 이유 중 하나인 현대차의 신규채용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신규채용을 함게 막아줄 것이라고 믿었던 정규직노조도 회사측의 신규채용안에 합의할 뜻을 밝혔다. 신규채용을 반대하던 야당들도 정규직노조의 이런 행보에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진퇴양난을 넘어 절망감에 빠졌다.
이에 비정규직 일부 조합원이 "만일 안철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10월 25일 이곳을 찾은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 문제라던 안철수
대선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던 지난 10월 22일, 두 조합원이 송전철탑에 오른지 6일째 되던 날이었다. 철탑 아래서 고공농성 두 조합원을 지키던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25일쯤 안철수 후보가 철탑농성장을 방문하려는 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당시 비정규직노조는 당장 신규채용을 강행하려는 현대차 회사측의 강경입장에 철탑농성이라는 최후 방법을 선택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야권 후보들이 너도나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부르짓었지만, 안철수 후보의 이같은 제안은 뜻밖이었다. 그래서 흔쾌히 승락했다. 일말의 기대감도 가졌다.
그리고 3일 뒤인 10월 25일 안철수 후보는 울산의 철탑농성장을 방문했다. 안 후보는 최병승씨와 통화하며 건강을 물었다. 또한 안 후보는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법 규정에 허점이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이어 "돌아가서 열심히 언론과 국회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여러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현대차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인 만큼 우리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조그만 더 참아 달라,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0일 뒤인 11월 5일 안 부호가 이메일로 비정규직노조에 보낸 답변서는 더 적극적이었다. 안 후보는 비정규직노조의 질의에 "재벌총수 등 사회적, 경제적 특권층 누구라도 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할 것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엄정한 법 적용을 촉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법원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하고 반드시 이행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은 상식의 문제다. 대법원의 판결대로 조속히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며, 고용노동부는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발휘해 법원의 판결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동안 비정규직노조가 줄기차게 주장하며, 농성 80일 째인 오늘도 요구하고 있는 사항을 안철수 후보는 공감하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대선 본선을 앞두고 안 후보는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선거는 끝나고 회사측 입장과 비슷한 입장을 보인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벼랑끝에 몰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로서는 안철수 후보의 그날 방문과 그가 한 약속이 내심 생각나는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한 조합원은 4일 "10년을 끌어온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이다"며 "10년 동안 싸운 끝에 대법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오히려 절망끝에 몰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꿈꿨던 안철수의 희망과 같은 것이 우리에게서도 날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