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한 동포들에 대해 참으로 애정이 많은 남한 시민이다. 대학 입학 후 북한동포돕기 캠페인을 하는 선배들을 만나 2000년부터 '금요일 점심 굶기'라고 해서 매주 점심을 굶어서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 탁아소 어린이들에게 영양식을 보내는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2008년엔 북한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벗들'(이사장 법륜스님)이라는 단체를 통해 북한인도적지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지금도 북한 어린이 돕기 관련한 캠페인이 눈에 보이면 늘 조금이라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북한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북한동포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누구보다도 그들을 돕고자 하는 활동을 해왔지만, 정작 북한동포들을 만나지도, 그곳에 가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늘 마음 한켠에는 지금 북한동포들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런 나에게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2011년 10월, 2012년 4월과 5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북한 전역을 여행한 내용을 정리해 엮어냈다"는 책 소개 문구에 이끌려 바로 책을 집어들었다. 직접 북한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동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북한 여행.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읽어내려갔다.
책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저자 신은미씨는 재미동포 '아줌마'다. 북한은 오직 한국인만 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재미동포, 미국인의 신분으로 북한을 여행하게 된 것이다. 북한을 여행하려면 국적을 바꿔야 하나 싶어 시작부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신씨는 여행지 곳곳에서 경험했던 일화들과 그 때의 느낌들을 마치 소설을 읽듯이 구체적으로 그려준다. 단순한 느낌 위주의 수필이 아니라 마치 현장에 가 있는 세세한 설명에 글을 읽는 나도 어느덧 같은 여행자가 된다.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을 곳곳에서 가득 채워준다.
여러 해를 보아왔던 사람들처럼 모든 것이 친근하고 익숙했다.(p37)뿔난 도깨비들의 나라인 양 피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이 너무 미안해 울컥 차오르는 눈물마저 부끄럽다.(p76) 신씨가 북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소감들이다. 난생 처음 만나는 북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또 얼마나 반공교육을 받아왔던가 생각하면, 북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긴장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은 여행 속에서 판판이 깨져나간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군인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김일성 광장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뛰놀고 손을 흔들어주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광장'으로 다가온다. 그 과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굳어 있던 긴장감은 봄눈 녹듯이 사르륵 녹아간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여행을 하며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이 모두 올 컬러로 소개되어 있다. 글을 읽다가 그곳의 사진을 보고, 사진을 보다가 그곳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다시 읽게 되어, 더 생생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세상에서 오직 '한국인'만이 갈 수 없는 곳
책 속에는 처음 알게 된 북한의 의외의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북한에 와서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휴대전화다. 이렇게까지 일반화돼 있을 줄은 몰랐다.(p46) 북한에서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운다.(p49)"이제는 '여보'라는 말이 촌스럽다고 해서 잘 쓰지 않는단 말입니다. '철희 엄마', '혜영이 아버지' 하는 식입네다."(p227)이곳 북한에서도 요새 들어 금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단다.(p229) "어머, 여기서도 '날라리'라는 말을 쓰네요."(p248)아마 평양 시내에 한정된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휴대전화를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는 부분이나, 영어는 '철천지 원수 미제국주의자 놈들'의 말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북한에서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모습, '여보'라는 표현은 촌스럽다고 사용하지 않는 모습 등은 참으로 의외였다.
북한의 호텔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넘쳐 난다. 특히 금강산 호텔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한 말은 굉장히 뼈아프게 들렸다.
"요즘은 남조선 관광객들이 전혀 오지를 않습니다. 전에는 남조선 동포들이 수도 없이 왔는데, 그때는 곧 통일이 될 줄 알았어요. 얼마나 흥분했는지."(p58) MB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단절된 후, 북한 사람들 역시 아쉬움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여행지 곳곳에서 남북관계 단절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어디를 가나 볼 수 있고, 또 구입할 수 있는 중국 상품들이다.(p222)북한의 인건비는 월 50달러도 채 되지 않는 듯하다. 한국 돈으로 6만 원도 안 되는 돈이다.(p222)"(라진선봉) 해변을 따라 좋은 자리들은 벌써 많은 곳을 중국사람들이 이미 다 차지했습니다."(p351) 가게 상점마다 진열된 중국 상품들보다 훨씬 품질 좋은 한국 상품들이 진열된다면,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게 될까 생각해본다. 또 낮은 인건비를 찾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중국이나 제3세계로 공장을 이전해 나갈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활성화해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살 길도 열리고 남한의 경제도 살 길이 열리는 것 아닌가. 게다가 북한 주민들은 같은 말을 하기에 언어 소통도 훨씬 쉬울텐데. 신씨도 많이 아쉬워하고 나도 글을 읽으며 함께 속상해했다.
또 북한에서 이뤄지는 많은 건설 공사들을 모두 이집트 회사나 중국 회사에서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현실은 비통하기까지 하다. 남한에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휴대전화 회사, 건설회사들이 즐비한데 분단의 장벽은 남북 모두에게 크나큰 손실을 가져오고 있음을 여행 속 풍경을 통해 보여준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책을 읽으며 약간의 의심도 들었다. 당연히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책 내용을 '온전한' 북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이런 의심은 무장해제된다.
비록 외국인 관광객 신분으로 이곳에 여행왔지만, 신씨가 재미동포, 그러니까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은 북한 안내원들 또한 무장해제시켜 나간다. 신씨는 안내원 김설경씨와 방현수씨를 각각 '내 딸 설경이'와 '조카 방현수'라고 부를 정도로 급속도로 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이 책의 백미다. 아마 북한이 아닌 다른 외국을 여행했다면 절대 느낄 수 없을 그 끈끈한 감정에 눈물 짓게 된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남한에서 보낸 쌀을 지켜보았다는 북한 안내원 설경이의 대답이다.
"오래전 쌀이 남포항에 도착했을 때, 운송 수단이 안 좋다 보니 인민군대 트럭들이 운송을 위해 동원됐습네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남조선 대표단이 몹시 불편해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네다. 군대 트럭이 쌀을 실어 날랐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충분히 리해합네다."(p120)운송 수단이 군대 트럭 외에 마땅한 것이 없었다는 이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록 쌀이 고아원과 탁아소에 간다 할지라도 남한 사람들은 오해할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오히려 북한 안내원이 남한 사람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꼴통 보수'였던 신씨는 세 번에 걸친 북한 여행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해 나간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람들이 북한이란 대체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나는 서슴없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답하곤 한다.(p308) 그러면서 중국 사람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북한 땅을 보면서의 속상한 마음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진정 우리 남쪽의 동포들은 내 나라임에도 자유롭게 와볼 수 없는 이곳을 저네들은 마치 자기네 집 드나들 듯하니 또 속이 상해온다.(p348)신씨가 왜 이번 여행을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라고 했는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북한 동포들의 정겹고 순수한 모습을 만나게 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면서 동시에 분단의 아픔을 절절히 느낀 가장 슬픈 여행이었음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 신은미씨의 북한 여행기는 '통일'에 대한 더욱 간절한 소망을 갖게 해주었다.
덧붙이는 글 |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신은미 씀, 네잎클로바 펴냄, 2012년 11월, 383쪽,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