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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봤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와 이명박 대통령이 나란히 한 화면에 있었다. 2007년 8월, 노종면 YTN 앵커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인터뷰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은 밝았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8년 10월, 노종면 앵커는 해고됐다. 노조위원장으로서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이끌었다는 이유다. 이명박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씨 사장 낙점은 이후 KBS, MBC로 이어진 '낙하산 인사'의 신호탄이었다.

이듬해인 2009년 3월, 노종면 기자는 MB 정부 들어 첫 '구속 언론인'이 된다. 1999년 방송법 파업 이후 10년 만에 벌어진 언론인 구속이었다. 이후 노 기자는 이명박 정부 5년 대부분을 '해직 언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MB 인터뷰에서 '축하드린다', 창피하다"

궁금했다. 2007년 8월 인터뷰 당시, 노종면 기자는 자신에게 닥칠 일을 과연 예상했을까. 지난 4일 서울 신도림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노 기자는 "그 영상을 보면 창피하다"고 말했다. 언론인으로서의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다.

"제가 '축하드린다'고 했거든요. 그때가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날이었는데, 원칙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돼요. 편안하게 대담을 이끌기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이 정도는 용인이 되는데 축하는 제가 하면 안 되는 거죠."

해직 이후 노 기자는 '언론 비평'에 관심을 쏟아왔다. 트위터를 기반으로 한 <용가리 통뼈 뉴스>, 대안방송 <뉴스타파>가 그 결과물이다. 그는 "매체 비평은 제가 감히, 수준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보도 팩트체크를 하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할지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종면 기자를 비롯한 해직 언론인들의 '겨울'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12월 19일 혹시 '멘붕(멘탈붕괴)'이 왔었나"라고 묻자, 그는 "대선 개표 방송을 보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미동도 안 하더라, 그게 우리 집에서 있었던 유일한 멘붕 비슷한 현상"이라면서 "솔직히 멘붕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겪으면서 다혈질이었던 성격이 덤덤해졌단다. 대선 다음 날, 그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아침이 밝았다. 바람이 생겼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백성이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소통과 감시의 무기가 버려지지 않기를… 더 잘 벼려서 고백과 위로와 성찰과 도모의 소도를 일구는 쟁기로 삼기를… 빡시겠지만 시즌2다."

다음은 노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빡시겠지만 시즌2'는 손 놓고 있지 않겠다는 약속"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8대 대선결과에 대해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8대 대선결과에 대해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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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이후 '멘붕'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혹시 '멘붕'이 왔었나. 트위터 보니까 그 날이 결혼기념일이었던데.
"솔직히 그런 건 없었다. 못 느꼈다. 소위 멘붕의 증상들. 얼이 빠진 듯한 표정,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무기력감. 그런 건 없었다. 당일 저희 집사람이 개표방송을 보고 있는데 저는 뒤에 앉아있었고. (아내가) 앞에서 미동을 안 하더라고. 충격이 컸나보다. '이제 그만 봐라.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게 우리 집에서 있었던 유일한 멘붕 비슷한 현상?" 

- 결과를 예상했던 건가?
"대선 전에 이런 저런 예상을 하지만 당일 투표율이 높아지고 이런저런 정보들이 왔다갔다하고. 그것과 다르게 나타나서 놀라기는 했다. 좀 더 강한 예상은, 반대의 예상을 했다. 박 후보가 될 거라고는…, 몰랐다."

- 트위터 프로필에 '빡시겠지만 시즌 2다'라고 썼다. 어떤 의미인가?
"새 정부 언론정책이 어떨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여러가지 우려스러운 점들이 대선기간 내내 보였다. 박근혜 캠프가 언론에 대응하는 방식도 그렇고. 안철수 후보 관련 기사는 보도하지 말라고 언론사에 압력을 가한다든지. 그런 우려에 기초해서 보면 새 정부의 언론정책도 이명박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빡실 거라고 예상을 하는 거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좀 더 길어진다고 해서 다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뭔가를 하겠다는 저와의 약속이었다." 

-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지상파 뉴스의 몰락, 종편의 득세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동의하나.
"종편의 약진은 맞다. 시청률 데이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것이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종편의 평균 시청률이 뭐, 많이 나와야 하루 시청률 1%. 종편이 갖고 있는 편향성·경향성이 이미 확고하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 지지자가 그걸 보고 생각이 바뀌거나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 이미 지지후보가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지지를 강화시키고 결집도를 높이는 정도? 중간층에 있던 사람의 표심을 바꾸는 정도까지 작용을 했을까 라는 의문이 있다.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연히 기성언론의 편향성은 확인된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보면 5년 내내 유지되어온 상수라고 본다. 그런 것들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트위터, 페이스북이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기성언론을 믿지 않게 되고, 트위터에서 얻은 정보를 주변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고. 진중권 교수가 말한 '보병'들의 활약은 어느 때보다 극대화됐다. 할 만큼 했다. 중간 영역을 놓고 다퉜다고 보면 누가 영향을 미쳤을까? 비슷하다고 본다." 

- '국민방송' 움직임은 어떻게 보나.
"이해되는 움직임이다.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 뭔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기대해볼 만도 하고. 그런데 추진하는 주체와 기대하는 분들 사이에 약간의 시각 편차는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자칫 오해를 해서 지나친 기대를 하고 나중에 실망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는 있다. 제가 이해하는 소위 말하는 국민방송 운동의 핵심은 콘텐츠의 확보, 확대 그리고 안정적인 공급이다. 주된 핵심은 콘텐츠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제약된 여러 가지 현실 속에서 그런 것들을 확보해서 기성매체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저는 보는데 기대하시는 분들은 MBC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방송국이 생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 간극은 추진하는 주체들이 빨리 메워줬으면 좋겠다." 

- 처음에는 <뉴스타파><오마이뉴스><한겨레> 등을 모두 아우르는 '국민방송'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도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다양한 지향을 가진 분들이 자신의 특장점을 살려서 콘텐츠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거나, 모여서 하나의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각개약진의 모습으로 가지 않을까."

- <뉴스타파>는 어떻게 되나. 
"우리는 뉴스를 확대해나가고, 가능하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해보되, 재단의 형태를 가져가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이 나와서 그렇게 진행이 될 것 같다. 3월에 시즌3가 시작된다. 후원인이 대선 전에 7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만5000명으로 늘었다."

"윤창중은 두 달짜리... 억지로 그런 생각까지 해본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8대 대선결과에 대해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8대 대선결과에 대해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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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방송의 회생은 가능할까.
"방송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해직자들이 복직하는 게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복직 이후에 사측으로 불리는 경영진도 변화가 있지 않겠나. 그 과정 속에서 언론인들과 경영자들 관계 설정이 새로 되리라고 본다. 거기에 권력이 개입하려고만 안 한다면."

-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기용을 놓고 박근혜 당선인의 언론관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명박과 박근혜, 어떻게 다를 거라고 보나.
"인수위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가장 안 좋은 사례가 윤창중이다. 기자하다가 정치권 갔다가, 다시 기자하다가 정치권 갔다가, 이런 사람을 대변인에 앉힌다는 건 '언론 선전 포고'다. 물론 자신을 지지했던 여러 세력을 끌어안고 가는 권력의 속성상, '두 달만 쓰고 부담스러운 사람은 빼겠다는 취지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도 '윤창중은 두 달짜리다', '어떻게 그런 사람 데리고 가겠나', '그런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이렇게 하고 털어버리는 게 낫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러기를 바란다. 억지로 그런 생각까지 해본다(웃음).

그 사례뿐만이 아니라 채널A 현직기자를 인수위에 참여시켰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가 어때야 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언론인으로 있다가 출마를 하거나 정계로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 이전,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석 달 이전에 사표를 내고 본인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과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이 연계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게 기본적인 윤리다. 어떻게 현직에 있던 사람을 바로 끌어들이나. 본인이 원해도 안 된다고 해야지, 그게 상식이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를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당선인이 그 공부를 빨리 하셨으면 좋겠다."

-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시절에도 그렇고 그동안 언론 관련해서 거의 언급한 적이 없어서 언론관을 알기가 어렵다. 
"MBC 징계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던가? 이명박 대통령처럼은 안 하겠죠. 제가 순진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해서 국민으로부터 저항을 받았기 때문에 조심할 거라고 생각한다."

- YTN 해직이 4년 넘었는데 사측과 뭔가 물밑 접촉은 있나.
"아직 없다. 배석규 사장은 이미 이런 문제를 풀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공인된 사람이다. 제 예상으로는 지금 새 정부도 배석규씨처럼 MB정부가 '정권에 충성스럽다'고 공인한 사람이 YTN과 같은 준공영 방송 채널의 사장으로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을 거다(기자주 : 원충연 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이 2009년 9월 작성한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 문건을 보면, 배석규 당시 사장 직무대행이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고 적혀있다). 민간인사찰조직에서 '충성심 돋보인다'고 평가 받은, 해직사태를 장기화시킨 사람이 '사회통합'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보도채널 사장이다? 이건 넌센스다."

- 배석규 사장이 지난 2일 신년사에서 "해직자들과 노조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면 회사도 원칙을 유지하는 바탕위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는데.
"전향적인 자세가 '전향하라'는 이야기다. 앞에 와서 무릎 꿇으라는 거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 거다. 아니, 민간인 사찰 조직의 충성심 인증을 받은 사람이…, 사찰 부산물을 가지고 몇 년을 살았으면 창피해서라도 입 닫고 있어야지. 박 당선자가 통합, 통합 이야기하니까 '통합의 제스처를 보냈는데 쟤네들이 못돼서 안 받았다'는 모양새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 김재철 MBC 사장은 갑자기 해직자 2명을 복직이 아니라 '특별채용' 했다. 
"둘의 사고방식이 비슷한 것 같다(웃음). 상황을 호도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통합의 흔적 같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박근혜 시대 언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물꼬만 터졌으면"

- 지난 7월, <뉴스타파> 제작에서 물러나 YTN 불법사찰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배석규 경영진, MB 정권과 벌이는 마지막 싸움이라는 일념으로 마무리를 짓겠다. 건곤일척, 지금 심정은 그거다. 다 걸고하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결국 국정조사는 흐지부지됐다.
"이미 사실관계의 상당부분은 드러나 있고, 다른 판단이 있을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호응을 안 해줬다. 새누리당은 '이전 정부 것까지 다같이 국정조사를 해야한다'며 말도 안 되는 물타기를 했고, 그 말도 안 되는 물타기를 민주통합당이 돌파해내지 못한 책임도 있다.

물론 민주당 정치인들이 사찰문제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한 것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민주당 내에 분명히 존재했다. YTN 사찰문제가 여야 협상 과정에 걸림돌이 될까봐 노심초사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특정한 국정조사가 아니더라도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라든가, 이런 노력들이 가능했다고 보는데 민주당의 의지가 약했다. 겨우 한 것이 제가 문방위 국감 때 참고인으로 나가서 발언한 것. 배석규 사장이 증인 채택 됐음에도 외국으로 도망친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 이 정도 성과가 있었다."

- 이 사안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건가. 
"배석규씨는 여전히 당장 나가야 할 사람이다. 정치권이 제대로 못하는 게 안타깝다. 인수위에서 새 정부 밑그림 그리면서 이 부분을 어떻게 다룰지 주목해서 보려고 한다. 저희들이 추가로 확보한 사찰문건도 적절한 시점에 밝히고, 인수위에도 전달할 예정이다."

- 지난 5년 동안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 
"다혈질이었던 게 누그러진 것 같다(웃음). 많이 알게 됐다. 모르던 걸. 지식수준이 높아졌다는 게 아니라, 뭘 관심을 둬야 언론인의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 마지막으로, 박 당선인에게 언론문제와 관련해 바라는 게 있다면
"언론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줬으면 좋겠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니, 관심 갖고 들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언론도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 권력을 견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권력자가 내버려두지 않으면 지난 5년의 반복이 된다. 이건 너무 필연적이다. 권력이 손을 대면 언론인은 저항한다. 전두환 정권처럼 숙청의 수준으로 한다면 숨죽일 수 있지만 그런 언론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둬야 한다.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그런 물꼬만 터졌으면 좋겠다."


태그:#노종면, #YTN, #국민방송, #윤창중,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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